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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의 탄생'을 읽고

    얼마전에 김홍철씨가 쓴 “건축의 탄생”을 읽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멋진 스케치와 사진이 잘 어울린 읽기 쉽고 유익한 책이었다. 전세계의 유명한 건축가 15명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었다. 그중에는 가우디도 있고, 우리나라 동대문 근처 쇼핑몰을 설계한 자하 하디드도 있었다. 근대 건축의 3대 거장인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 그리고 플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대한 것도 발견할 수 있다. 위대한 거장들의 발전 과정과 역사를 건축을 통해 발견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승효상, 최문규 선생님이 없는 것은 아쉽지만…. 그런데,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가우디의 후원자 구엘. 미스 반 데어 로에를 도와준 파울 그리고 후원자 알로이드 릴 등이다. 즉, 천하의 가우디도 구엘이 없었다면 결코 그의 뜻을 펼 수 없었을 것이고, 로에도 파울과 릴이 없었다면 평범한 건축가에 머물렀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강태공이 문왕을 만나기 위해 위수에서 미끼 없는 낚시를 하며 기다렸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강태공은 70세에 문왕을 만나 천하를 도모하였으니, 그나마 복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오늘을 사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혹시 마음속에 가득한 야망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가우디나 로에 그리고 강태공의 이야기에서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나를 도와줄 귀인이 나타났을 때, 그 분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실력이 없다면 귀하게 온 기회는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두번째는 기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기회는 쫓아가 잡는 것이 아니고, 낚시처럼 최선을 다한

  • 지식인의 표상... 그 외로움에 대하여

    에드워드 사이트는 그의 책인 “지식인의 표상”에서 지식인은 경계 밖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추방하는 자라고 했다. 그리고 지식인이 되려면 애국적 민주주의와 집단적 사고, 계급과 인종에 관한 의식, 성적인 특권에 의문을 제기하여야 하고, 관습적인 논리에 반응하지 않되 모험적인 용기의 대담성과 변화의 표현을 지향하고, 가만히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며 나아가는 것에 반응하는 자여야 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 사이트의 다른 책인 “오리엔탈리즘”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지식인은 단도직입적이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그러한 말들로 인해 높은 지위에 있는 친구를 사귈 수 없고, 공적인 명예를 얻지 못하며,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탈출할 수도 없다. 이것은 고독한 상황이다” 나는 완전히 궤멸 당하고 말았다. 건축가가 되려면 그래야 했다. 자기 집이 아니라 다른 이의 집을 지어주는 일을 직능으로 가지는 건축가는 자신을 타자화시키고 객관화해야 한다.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의 새로운 땅에 내가 가지고 있는 타성과 관습의 도구를 다시 꺼내어 헌 집을 그리는 것은 건축이 아니라 관성의 제품을 만드는 일이며, 새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의 소망을 배반하는 일이다. 새로움에 반응하고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는 건축가가 경계 안에 머문다는 것은 그 소임을 파기하는 일과 다르지 않으니, 외로움과 두려움은 건축가에게 어쩔 수 없는 친구일 수 밖에 없다. 승효상 선생님의 묵상 중에서 위 글을 읽으며, 컴퓨터를 직능으로 하는 나는 어떤 모습의 지식인인지, 어떤 모습의 지식인으로 살아 가야 하는 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 어쩌다 기억나는 짧은 단상들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그룹의 회장님이 사원들과의 대화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때, 젊은 직원이 회장에게 질문하고 회장이 답변한 내용이다 “회사에 보면 나이든 직원분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 같다. 회사의 입장에서 나이드신 분들에 대해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일단, 열심히 일한다는 기준이 다소 애매한 듯하고, 나이드신 분들이 일하는 스타일이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 다소 늦고 의욕이 적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