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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뢰(天籟), 오수록

    천뢰(天籟) 오수록 벼락처럼모든 벽을 뚫고 난관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내 귀에 와 닿는다 [태헌의 한역]天籟(천뢰) 如霹透壁墻(여벽투벽장)盡破諸難關(진파제난관)始到吾耳傍(시도오이방) [주석]天籟(천뢰) : 하늘에서 나는 소리. 곧 바람소리, 천둥소리, 빗소리 따위.如霹(여벽) : 벼락처럼. / 透壁墻(투벽장) : 벽과 담을 투과하다, 벽과 담을 뚫다. ‘墻’은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盡(진) : 모두, 다. / 破(파) : ~을 깨다, ~을 무너뜨리다. / 諸難關(제난관) : 여러 난관, 모든 난관.始(시) : 비로소, 바야흐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到(도) : ~에 이르다, / 吾耳傍(오이방) : 나의 귓가. [한역의 직역]천뢰 벼락처럼 벽과 담을 뚫고모든 난관 다 무너뜨리고비로소 내 귓가에 닿는다 [한역노트]이 시를 오늘 처음으로 마주하였을 독자들 대부분은 제목에서 멈칫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자가 작성한 주석을 미리 보지 않았다면, 한문이나 동양문화에 웬만큼 관심이 있고 어지간히 공부했다 하더라도 ‘籟’의 뜻을 바로 알아채지 못한 독자들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시의 제목으로 쓰인 “천뢰”는 간단히 말해 ‘하늘에서 나는 소리’라는 뜻이다. 이 천뢰는 ‘지뢰(地籟)’, ‘인뢰(人籟)’와 함께 『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 첫머리에 보이는 삼뢰(三籟) 가운데 하나이다. 장자에 의하면 ‘지뢰’는, 땅 위에 있는 모든 구멍들[사물들]이 바람에 부딪혀 만들어내는 각종의 소리이다. 간단히 말해 ‘땅에서 나는 소리&rsquo

  • 역사(驛舍) 앞에는 흰 눈이 펄펄 내린다, 이중열

    역사(驛舍) 앞에는 흰 눈이 펄펄 내린다   이중열   ‘커피 한잔 사주세요’ 노숙인의 목소리가 눈 사이로 들려온다   때마침 신사가 있어 외투를 입혀준다 장갑도 벗어 건네준다   ‘따뜻한 거 사드세요’ 지갑을 열어 오만원을 준다   총총히 길을 가는 그 사람 역사 앞에는 흰 눈이 펄펄 내린다   [태헌의 한역] 玉屑飄飄驛舍前(옥설표표역사전)   請君向我惠咖啡(청군향아혜가배) 行旅聲音聞雪邊(행려성음문설변) 適有紳士解袍授(적유신사해포수) 手帶掌甲脫而傳(수대장갑탈이전) 却曰須賣溫暖食(각왈수매온난식) 開匣還贈五萬圓(개갑환증오만원) 斯人匆匆行己路(사인총총행기로) 玉屑飄飄驛舍前(옥설표표역사전)   [주석] 玉屑(옥설) : 옥의 가루. 여기서는 눈(雪)을 아름답게 칭하는 말로 쓰였다. / 飄飄(표표) : 바람에 날리는 모양, 나부끼는 모양, 펄펄. / 驛舍前(역사전) : 역사(驛舍) 앞. 여기서는 서울역 앞 광장을 가리킨다. 請君(청군) : 그대에게 청하다, 그대에게 부탁하다. / 向我(향아) : 나에게. / 惠(혜) : ~을 내려주다, ~을 보내주다. / 咖啡(가배) : 커피(coffee). 行旅(행려) : 나그네, 길손. 역자는 여기서 노숙인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 聲音(성음) : 소리, 목소리. / 聞雪邊(문설변) : <내리는> 눈 가운데서 들리다. ‘邊’에는 어떤 범위의 안이나 속이라는 뜻이 있다. 適(적) : 마침, 때마침. / 有(유) : ~이 있다. / 紳士(신사) : 신사. / 解袍授(해포수) : 외투를 벗어 주다. ‘袍’는 보통 도포라는 뜻으로 쓰나 여기서는 외투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手帶掌甲(수대장갑) : 손에 끼고 있는 장갑. ‘掌甲’은 현대 중국어의 ‘手套(수투)’에 해당되

  • <특집 - 생활 속의 시> 석 줄의 잠언, 오수록

    <사진제공 : 오수록님> 석 줄의 잠언   오수록   빗방울에도 젖지 않는 연잎처럼 살라   사물을 비추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거울처럼 살라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을 벗어난 은자처럼 살라   [태헌의 漢譯] 三行箴言(삼행잠언)   願君生如蓮(원군생여련) 雨滴終不潤(우적종불윤) 願君生如鏡(원군생여경) 照物不留痕(조물불류흔) 願君生如隱(원군생여은) 在世猶出塵(재세유출진)   [주석] * 三行(삼행) : 석 줄. / 箴言(잠언) : 잠언. 願君(원군) : 그대에게 원하노니. / 生如蓮(생여련) : 연꽃[연잎]처럼 살다. 雨滴(우적) : 보통은 빗방울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비가 방울지다.’는 의미로 쓰였다. / 終不潤(종불윤) : 끝내 젖지 않다. 生如鏡(생여경) : 거울처럼 살다. 照物(조물) : 사물을 비추다. / 不留痕(불류흔) : 흔적 남기지 않다. 生如隱(생여은) : 은자처럼 살다. ‘隱’은 단독으로 쓰여도 ‘隱者(은자)’의 뜻이 되기도 한다. 在世(재세) : 세상에 있다. / 猶出塵(유출진) : 세속을 벗어난 것과 같다.   [직역] 석 줄의 잠언   원하노니 그대, 비가 방울져도 끝내 젖지 않는 연잎처럼 살라   원하노니 그대, 사물 비추되 흔적 남기지 않는 거울처럼 살라   원하노니 그대, 세상에 있어도 세속을 벗어난 은자처럼 살라   [한역(漢譯) 노트] 이 시는 야은(野隱) 오수록(吳壽祿) 시인이 개불(介弗) 김동철(金東哲) 선생의 정년퇴임[서울 문일고]을 축하하기 위하여 지은 시이다. 두 분은 현재 역자가 좌장(座長)으로 있는 시회(詩會)의 멤버이다. 작년 연말 어느 날, 개불 선생에게 정년퇴임 축시를 지어드리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

  • 섬진강 여울물, 오수록

    섬진강 여울물   오수록   산책 삼아 하늘을 날던 물새들 일제히 날아 내려와 모래톱을 원고지 삼아 발로 새 시를 쓴다 섬진강 여울물은 온종일 소리 내어 읽는다 그 소리 유장하여 바다에서도 들린다   【태헌의 한역】 蟾津灘水(섬진탄수)   水鳥飛天做散步(수조비천주산보) 一齊落下作新賦(일제락하작신부) 以沙爲紙以足錄(이사위지이족록) 蟾津灘水盡日讀(섬진탄수진일독) 讀聲也悠長(독성야유장) 海畔亦可聽(해반역가청)   [주석] * 蟾津(섬진) : 섬진강. / 灘水(탄수) : 여울물. 水鳥(수조) : 물새. / 飛天(비천) : 하늘을 날다. / 做散步(주산보) : 산보로 삼다. 一齊(일제) : 일제히. / 落下(낙하) : 낙하하다. / 作新賦(작신부) : 새로운 시를 짓다. 以沙爲紙(이사위지) : 모래톱을 종이로 삼다. / 以足錄(이족록) : 발로 기록하다. 盡日(진일) : 진종일, 온종일. / 讀(독) : 읽다. 讀聲(독성) : 읽는 소리. / 也(야) : 주어나 목적어[빈어] 뒤에 쓰여 앞말을 강조하는 조사(助詞). / 悠長(유장) : 유장하다, 길고 오래다. 海畔(해반) : 바닷가. / 亦(역) : 또, 또한. / 可聽(가청) : 들을 수 있다, 들린다.   [직역] 섬진강 여울물   물새들이 산책삼아 하늘 날다가 일제히 내려와 새 시를 짓는다 모래톱을 종이 삼아 발로 적자 섬진강 여울물이 온종일 읽는다 읽는 소리 유장하여 바닷가에서도 들린다   [한역 노트] 눈이 시리도록 맑은 서정시를 대하면 역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소년이 된다. 그 옛날 청담(淸談)이 권력(權力)과 금력(金力)의 얘기가 빠진 얘기였다면, 요즘에는 이런 서정시가 바로 청담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