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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
조성권
The Lif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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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약력
우리은행 홍보실장, 서여의도지점장
예쓰저축은행장/대표이사
국민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이투데이 선임연구위원
현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소개 글
2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만큼 살다 보니 그때는 듣기 싫던 잔소리가 나를 이만큼이나 키워준 거란 걸 알았습니다.
그 지겹던 잔소리들이 모두 고사성어에서 나온 거란 걸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부모 등을 보고 배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불초(不肖)‘라는 고사성어에도 나오듯 아버지를 닮지 못합니다.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인성이 더없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시집간 딸이 딸을 낳고 장가든 아들이 아들을 낳아 손주가 생기고 나니 손주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고사성어를 100여 개 추려 잔소리를 회억해냈습니다.
  • 갈등 해결의 열쇠는 공감력이다

    결혼 전날 밤 아버지가 시부모와 같이 살겠다고 한 내 아내를 칭찬한 뒤 한 얘기다. 들려준 옛 얘기는 이렇다. 아내가 남편한테 늙은 시어머니를 느닷없이 장에 내다 팔라고 했다. 기가 막혔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지게에 업고 장날에 팔러 갔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고운 반지와 맛있는 국밥을 사드리며 “집에 어미가 사드리라고 했어요”라고 했다. 못 팔고 돌아오자 성화를 부리는 아내에게는 “몸이 야위어서 거들떠보지 않더라. 몇 가지 보신 될 만한 걸 사 왔으니 살찌워 다음 장날에 팔겠다”라고 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 살을 찌우기 위해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해 받쳤다. 다음 장에도 팔지 못하고 온 남편은 아내에게 “아직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며느리가 해준 음식이며 아들이 대신 사준 반지 등을 자랑했다. 모두 며느리가 해준 거라며. 동네에 며느리 칭송이 자자했다. 칭찬을 여럿한테 들은 아내는 더욱 정성으로 시어머니를 모셨다. 볼살까지 오른 어머니를 장날에 팔러 나가려 하자 아내가 남편에게 “잘못했다. 팔지 말라”며 울며 매달렸다. 아버지는 “민간에 오래 전해지긴 하지만, 비현실적인 중재법이다”라면서 그래도 오래 입에 올려진 이유를 고부간 갈등에서 아들이자 남편인 중간자 역할의 중요성 때문으로 해석했다. 아버지는 “이제 며느리가 이 집에 들어와 같이 살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로 다른 문화, 가치관, 경험이 있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게 걱정이다. 네가 중재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이쪽에 얘기할 땐 이편이 돼야 하고 저쪽에 얘기할 땐 그쪽 편이 돼야 한다. 너는 마중물이다. 남편은 내 편이고 아

    2023-07-18 16:54
  • 책은 숨 쉬듯 읽고 또 읽어라

    아버지 앞으로 책이 우편으로 왔다. 펴보지 않고 만지기만 하다 책상에 올려놓았다. 아버지는 봉투를 건네주며 책값을 우편환으로 끊어 보내라고 했다. 때로 선물이 들어오면 아버지는 같은 품목으로 사서 꼭 보냈다. 그러나 책 선물은 처음이었다. 며칠 지나도 책상 위의 책은 펴보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한 달쯤 지나 책을 보니 물에 불은 듯 두꺼웠다. 선물 받은 책은 군데군데 볼펜으로 끝도 없이 메모가 되어 있었다. 여백이 없는 데는 메모한 종이를 덧대 여러 장을 겹쳐 붙여 본래 보다 두 배는 두꺼웠다. 책값을 보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책을 만지는 걸 본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읽기 전에 생각하고, 읽으면서 생각하고, 읽고 나서도 생각해라. 쉽게 읽은 책은 쉽게 빠져나간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여러 번 읽을 책을 찾아 읽어라.” 아버지는 철저하게 발췌독(拔萃讀)했다. 닥치는 대로 읽는 남독(濫讀)이지만, 따로 읽어야 할 책은 바로 펼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제목으로 책을 쓴다면 어떻게 쓸까를 먼저 생각해본다고 했다. ‘다리’를 예로 들어가며 설명했다. “소재의 일반성을 먼저 생각해본다. 집 앞의 징검다리부터 금문교, 오작교까지를 떠올린다. 그런 다음 다리의 원관념, 즉 ‘건네준다’를 생각하면 우체부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님까지를 떠올 릴 수 있다. 다리를 ‘이편에서 저편의 더 너른 공간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빚은 산물’로 보고 내가 겪었든 겪지 않았든 상상해보며 저자만이 경험한 ‘특수성’을 염두에 둔다.” 아버지는 내가 이미 알고 있거나 생각한 부분은 빠르게 읽고 미처 알지 못한 부분은 정독하며 생각을 메모했다. 반드시 완독(完讀)

    2023-07-11 18:01
  • 연습이 손맛을 만든다

    서울 종로1가에 있는 음식점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고입 재수 시절 때다. 물 퍼 나르고 쓰레기 버리고, 그릇 닦고 바닥 청소하는 아르바이트였다. 주방 일 배우는 이들에겐 가혹한 환경이지만, 막일하는 주방 막내에겐 배불리 먹는 밥만큼이나 기분 좋은 곳이었다. 마지막 주문받은 음식이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손님상에 나갈 즈음에 서울에 일 보러 온 아버지가 음식점에 예고 없이 들렀다. 마침 그 시간에 한 달 전에 예고된 새 주방장을 뽑는 시험이 시작됐다. 시험에는 두 보조주방장이 응시했다. 과제는 콩나물국을 정해진 시간에 끓여내는 거였다. 제시한 재료는 콩나물과 소금 그리고 물, 세 가지. 둘은 고개를 끄덕이는 주방장의 시작 신호에 맞춰 음식을 장만했다. 둘만 바삐 움직이고 지켜보는 이들은 모두 정지한 긴장된 순간이었다. 두 응시생의 음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방장 앞에 놓이자 고개를 다시 끄덕이는 신호에 따라 경쟁이 끝났다. 주방장이 콩나물국을 두 번 번갈아 맛보고 난 뒤 그중 나이가 더 든 남(南)씨 성을 가진 보조에게 칼을 내주면서 시험은 끝났다. 주방장을 만난 아버지는 “철없는 아이를 맡아줘 고맙다”라는 말과 함께 “호되게 야단쳐주세요”라고 부탁하며 인사했다. 광화문을 거쳐 현저동 집까지 걸어올 때 시험을 모두 지켜본 아버지가 “나는 남 씨가 이길 줄 알았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소금을 볶았다. 그는 한 번에 소금을 집어넣는데 다른 응시자는 두 번 나눠 넣더라. 거기서 실력 차가 나겠구나 했다”라면서 “사람 기억 중에 맛에 대한 기억이 가장 오래간다. 남 씨는 주방장의 맛을 그려낸 거다. 아마 지금 다시 해도 집어넣는 소금의 양이 같을 거

    2023-07-04 17:40
  • 기억하지 못하는 날은 삶이 아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다. 저녁 먹다 아버지가 느닷없이 “며칠 전 종로2가에는 왜 갔느냐?”고 물었다. 찔끔했다. 당시에 여러 명이 제과점과 음악감상실을 들르며 무교동, 명동 일대를 늦게까지 우르르 쏘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갔던 거는 분명하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지금 돌이켜봐도 모르겠다. 아버지에게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숟가락을 소리 내 탁자에 내려놓고 나를 꿇어 앉혔다. “기억하지 못하는 날은 삶이 아니다”고 말문을 연 아버지는 오래 나무랐다. “그날 예닐곱 명이 교복 입고 크라운제과점에 들어가는 걸 내 눈으로 봤다. 멀리서 봤지만, 내 자식이어서 얼른 눈에 들어왔다. 거짓말이야 그렇다 치고 기억도 못 하는 날을 보내는 네가 한심하다. 주는 밥 먹고 아무 데나 뒹굴다 잠이나 자는 개나 돼지와 다를 게 뭐냐?”며 질타했다. “그건 다만 살아있는 거지 사는 게 아니다. 의미 없이 보낸 날은 삶이 아니다. 생존이지 인생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의미’를 먼저 설명했다. “‘뜻 의(意)’자는 ‘소리 음(音)’ 자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다. ‘뜻’이나 ‘의미’, ‘생각’이라는 뜻을 가졌다. 곧 ‘마음의 소리’라는 뜻이다. 생각은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나온다. ‘의미 없는 날’은 네 삶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보낸 날이다. 뜻이 있으면 훗날에 반드시 기억나야 한다. 의(意)자는 훗날 기억, 회억이란 말에도 고루 쓰여 그 뜻을 확실하게 해준다. 의미 없이 보낸 날은 무기력하고, 지루하고, 낭비된 거다”라고 정의했다. 아버지는 이어 “매년 오는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네가 의미를 주지 않으면 그

    2023-06-27 10:42
  • 남을 이롭게 하는 게 나를 이롭게 한다

    이삿짐 실은 차량을 떠나보내고 그리 멀지 않은 새로 산 집까지는 아버지와 함께 걸었다. 골목을 빠져나올 즈음에 아버지가 봉투를 꺼내주며 방금 떠난 집 마루에 놓고 오라고 했다. 겉봉에는 ‘이사 오시는 분께’라고 수신인을 적었지만, 봉투는 열려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궁금해 열어봤다. ‘이 집에 살며 느낀 것들입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두 장이나 됐다. 만년필과 볼펜을 번갈아 쓴 아버지 필체는 정갈해 며칠에 걸쳐 쓴 것 같았다. 살던 집 얘기라 한 눈에 들어왔지만 몇 가지는 살펴보지 않으면 모를 것들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몇 가지다. ‘안방 뒤 벽지가 축축한 거로 보아 누수가 있는 거 같은데 지붕에서 스며든 거로 보입니다. 누수 지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안방에서 나오는 마루 세 번째와 다섯 번째 나무는 상해 교체해야 할 겁니다. 마루 바깥 유리문은 집이 오른쪽으로 기울어 꼭 닫히질 않습니다. 건넌방 구들 위쪽은 막힌 듯합니다. 겨울에는 불길이 들어가지 않아 냉골입니다. 볕이 잘 들긴 하지만 창문 역시 집이 기울어 틈이 벌어져 외풍이 심합니다. 마당의 벽오동은 무성해 채소밭으로 난 가지는 쳐줘야 합니다. 마당 수도는 도드라져 겨울에는 동파한 일이 있습니다.’ 마루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자리에 편지를 넣어놓고 돌아와 길을 걸으며 아버지께 그런 글까지 남기셨다고 하자 웃으며 하신 말씀이다. “‘까마귀가 덫에 걸린 개를 발견했다. 까마귀는 개가 덫에 걸린 것을 보고 안타까워 개 꼬리를 물고 덫을 풀어준 뒤 땅을 파 묻어주었다’라는 옛이야기가 있다. 유향(劉向)이 쓴 전국책(戰國策)에서 읽었다.” 훗날 원전을 찾은 아버지는 시경(詩經)에서 인용

    2023-06-20 14:55
  • 책상이 없으면 혼수가 아니다

    동생들이 먼저 결혼한 뒤 서른여섯에 늦장가를 가게 됐다. 혼인날이 잡히고 아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겠다고 할 때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집안에 온통 기쁨만 가득했다. 일주일 전에 혼수품을 실은 차량이 들어오자 온 집안이 들썩였다. 그때 아버지가 혼수품 가구들을 둘러본 뒤 짐을 내리지 말라며 한 말이다. “책상이 없는 혼수품은 혼수품이 아니다.” 아버지를 방으로 따라 들어가자 저 말을 두어 번 더 소리쳤다.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나이 들어가며 야단 맞는 횟수는 줄었지만 강도는 더 세졌다. 매장에 전화해 바로 준비해 가지고 오라고 해 수습했다. 책상과 의자를 갖춘 혼수품을 들여오고 나서 아버지가 말씀 중에 인용한 고사성어가 ‘망양지탄(望洋之歎)’이다. ‘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감탄한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위대함을 보고 자신의 미흡함을 부끄러워한다는 뜻으로 쓴다. 장자(莊子) 외편 추수(秋水)에 나오는 말이다. 옛날 황허(黃河)에 하백(河伯)이라는 신이 살았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사는 강을 보면서 그 넓고 풍부함에 감탄했다. 가을 홍수가 져 모든 개울물이 황허로 흘러든 가을날 강의 폭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불었다. 흐름이 너무나 커서 양쪽 기슭이나 언덕의 소와 말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백은 천하의 아름다움이 모두 자기에게 있다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강의 끝을 보려고 동쪽으로 따라 내려갔다. 한참을 흘러내려 간 뒤 마침내 북해(北海)에 이르자 그곳의 신인 약(若)이 반가이 맞았다. 하백이 약의 안내로 주위를 돌아보니, 천하가 모두 물로 그득 차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백이 그 너른 바다를 보고 감탄하며[望洋而歎] 한 말이다. “속

    2023-06-13 17:32
  •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들은 야단이 ‘생각이 없다’였다. 조금 약한 핀잔은 ‘생각이 짧다’나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였다. 가장 심한 욕은 ‘생각 없는 놈 같으니라고’였다. 야단칠 때는 언제나 “사람은 딱 생각한 만큼만 행동한다. 생각 좀 하고 살아라”라고 마무리 지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듣고 자라 토씨까지 외운다. 말귀를 알아듣기 전부터도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나 “그렇게 생각해서 행동하는 거다”라는 최고의 칭찬을 듣고부터 ‘생각’이 비로소 내 귀에 들어왔다. 원주에 사시는 친척 집에 아버지 편지 심부름을 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잘 찾아가 전달했다. 문제는 오는 길에 생겼다. 원주에서 제천역에 내려 기차를 갈아탈 때 시간이 남아 역 승차장에서 파는 가락국수를 사 먹느라 기차를 놓쳐버렸다. 마지막 기차를 눈앞에서 떠나보내고 한참을 울었다. 역에 불이 들어올 때 집 쪽으로 가는 홈에 낯익은 화물열차가 정차해 있는 걸 보고 몰래 올라탔다. 내가 내릴 역을 통과한 화물열차는 터널 입구 언덕에서는 힘이 부쳐 걷듯 달렸다. 전에 아이들이 타고 내리는 걸 봤던 대로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넘어지긴 했지만, 무릎에 상처가 났을 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눈을 흘기며 나를 반겼다. 꿇어앉아 그날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자 아버지가 “잘 생각해서 잘했다”라고 칭찬했다. 아버지는 “넘어졌을 땐 바로 일어나지 말고 왜 넘어졌는지를 반성하고, 어떻게 일어날지를 먼저 생각해라”라며 “누구나 넘어진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도움 안 되는 걱정하지만 말고 방

    2023-06-05 17:00
  • 집중하면 이룰 수 있다

    아버지가 두 동강 난 지팡이를 든 채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변호사 사무실에 들른다고 외출했던 아버지는 화가 많이 난 채 귀가해 방문을 굳게 잠갔다. 이튿날 휴일 새벽에 어머니가 깨워 일어나자 아버지가 같이 가자고 했다. 차에 탄 아버지가 수주면(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지금은 무릉도원 면으로 바뀌었다)으로 가자고 했다. 구룡산 쪽으로 길을 들어서라고 할 때에서야 십수 년 전에 아버지가 경영하던 채석 회사 현장임을 알았다. 험준한 임도(林道)를 한참 따라 오르자 차를 세우라고 했다. 차에서 내린 아버지가 멀리 큰 바위 옆을 가리키며 장비를 챙겨 올라가라 했다. 아버지 말이 들릴 만큼 떨어진 산길을 힘겹게 올라 바위에 다다르자 “벼락 맞은 감태나무가 보이냐?”고 물었다. 줄기에 검은 때가 끼었다고 해 그 이름을 얻었다는 감태나무는 나무가 단단해 도리깨로 쓰였다. 아버지가 지적한 감태나무는 쉽게 찾았다. 벼락을 맞으면 목숨을 연장해준다는 뜻의 연수목(延壽木)이다. 벼락 맞아 나무가 터진 부위가 용의 눈과 비슷하다고 해 용안목(龍眼木)이란 별명이 붙어 매우 길하게 여기는 나무라는 설명은 아버지가 돌아오는 길에 알려줬다. 아버지는 그 나무를 뿌리째 캐내라고 했다. 오래전에 봐둔 나무였다. 내가 한참 만에 캐온 감태나무를 꼼꼼하게 살핀 아버지는 절벽 아래로 가 물에 깨끗하게 씻었다. 어머니가 싸준 김밥 도시락을 먹을 때 아버지가 불쑥 “밖에 나와 먹는 밥이 왜 맛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네 어머니 정성도 있을 테고, 자연과 벗하니 분위기도 색다르고 상쾌한 것도 있어서일 게다. 밖에서는 음식 맛과 냄새가 잘 전

    2023-05-30 13:22
  • 전달되지 못한 말은 소리일 뿐이다

    아버지는 필기구를 셔츠 주머니에 꽂았다. 양복주머니에서 꺼내면 늦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메모는 생각이 퍼뜩 날 때 바로 적어야 한다고 했다. 때로 거꾸로 꽂은 볼펜에서 새 나온 잉크로 옷을 망치기도 해 어머니 잔소리를 들어도 고치지 못했다. 필기구 꽂은 셔츠 주머니가 해져 덧대기도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필기구도 그렇지만 메모지도 닥치는 대로 썼다. 잠에서 깨면 주머니마다 구겨 넣은 메모지를 꺼내 다급하게 휘갈겨 쓴 난필을 해독하며 잡기장에 옮겨적는 게 아버지의 평생 중요한 아침일과였다. 휴가 나왔다가 귀대 인사하러 회사로 찾아갔을 때 아버지는 회의 주재 중이었다. 비서가 중간에 보고하자 회의실에 들어오라 했다. 직원들 발언을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듯이 메모했다. 30분 정도 더 지나 회의가 끝날 무렵 아버지는 그날 회의 결론을 지었다. 아버지는 쓰던 메모지를 참석자에게 돌려 모두 자기 이름을 쓰고 서명하라고 했다. 내가 의아해하자 전무가 “사장님은 중요한 회의 때는 꼭 저렇게 메모하고 참석자 사인을 받아 바로 품의하라”고 지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더 고칠 것도 없어요. 저걸 결재판에 끼우고 정서해서 올리면 바로 결재 나고 시행에 들어가니까요”라고 보충설명도 했다. 모두 나가자 아버지가 덧붙인 말이다. “전달되어야 말이다. 전달되지 못한 말은 소리일 뿐이다. 전달되지 못한 말은 말한 사람의 책임이 더 크다. 말 잘한다는 건 내용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다 알아듣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젊은 시절부터 훈련받아 대중연설에 익숙한 아버지는 “1분 넘어가는 메시지는 메시지가 아니다”라면서 “사람들은 네 말에 1분 이상 귀 기울이지 않는다.

    2023-05-22 10:54
  • 갈등을 해소하려면 명분을 만들어라

    친구가 차에 깔려 죽는 사고가 터졌다. 초등학교 6학년 때다. 학교에 붙여 지은 새집에 이삿짐을 내린 트럭이 운동장에 주차해 있었다. 점심시간에 같은 반 아이들이 차에 올라가고 매달리며 놀았다. 그중 한 아이가 운전석에 올라가 시동을 걸자 차가 후진했다. 내 친구가 차 밑에 떨어진 검정 고무신을 꺼내러 들어갔다가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집에서 점심 먹다 비보를 듣고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틈으로 죽은 친구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였다. 트럭 바퀴에 머리가 깔리는 참사였다. 가족들이 달려와 혼절하고 학생들은 모두 울었다. 가족과 마을 청년들은 운전한 학생과 담임선생님을 찾으러 동네를 뒤지고 다녔다. 나는 학교와 집을 몇 번이나 오가며 우두망찰했다. 해가 넘어갈 즈음에 아버지가 죽은 아이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했다. 멈칫거리자 아버지는 크게 호통치며 발길을 재촉했다. 사고 현장에 갔을 때 내 친구 시신은 거적에 덮여 그 자리에 있었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흩어졌다. 친구 아버지에게 말씀을 전하자 바로 따라나섰다. 아버지는 친구 아버지를 반갑게 맞아 방에서 낯선 사람들과 한참을 얘기했다. 방문이 열리며 “조 선생님 말씀처럼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겁니다”라고 처음 본 사람이 친구 아버지에게 말을 건네며 악수했다. 학교에 다시 갔을 땐 횃불이 밝혀지고 장례절차가 진행됐다. 인척인 담임선생님은 김칫독을 묻어둔 우리집 김치 광에 숨어 하룻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홀연히 잠들었을 때 죽은 친구가 꿈에 나타나 뭐라 말을 해 나는 애써 도망쳤다. 어머니가 흔들어 깨우자 아버지가 잠 덜 깬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친구가 얘기

    2023-05-16 14:50
  • 미국이 강대국인 이유

    미국에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1999년 9월 부모님이 뉴욕 집에 다니러 오셨다. 관광을 안 가겠다는 아버지를 설득해 차로 모시고 워싱턴DC.에 갔다. 국회의사당과 백악관을 본 뒤 아버지가 제퍼슨 기념관은 안 가겠다고 해 의아했다. 링컨 기념관을 서둘러 보고 알링턴 국립묘지에 도착했을 땐 문 닫을 시간이었다. 바리케이드를 치려고 준비하던 병사가 캐딜락 승용차가 다가오자 멈칫했다. 내가 내려서 “한국전 참전한 상이군인이다. 케네디 대통령에게 참배하고 싶어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문 안에 주차하라고 했다. 트렁크를 열고 내가 휠체어를 꺼내자 병사가 달려와 뒷문을 열고 아버지 오른팔을 자신의 목에 두른 뒤 두 팔을 뻗어 엉덩이 밑으로 넣고 아버지를 번쩍 들어 올려 의자에 앉혔다. 절도 있는 동작이었다. 놀란 아버지가 땡큐를 연발하며 병사의 팔을 가볍게 두들겨 줬다. 그 병사는 언덕진 길을 가볍게 휠체어를 밀고 앞장서 올라갔다. 참배한 뒤 아버지는 한참을 머물다 내려왔다. 그 병사는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를 같은 방법으로 들어 올려 차 뒷좌석에 앉혔다. 아버지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그 병사의 주머니에 넣어주며 악수를 청했다. 문을 빠져나와 굽은 길을 돌 때까지 백미러로 본 그 병사는 거수경례하고 있었다. 뉴저지 집으로 돌아오는 4시간 동안 흥분한 아버지는 쉬지 않고 말씀하셨다. “그 병사 너도 봤잖냐? 미국이 강대국인 이유를 아느냐?”고 말문을 연 아버지는 바로 “보훈이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국가부터 설명했다. 나라 국(國)자는 ‘혹시 혹(或)’자에서 파생된 글자다. ‘창 과(戈)’자와 무기로 지켜야 할 도시를 나타내는 ‘입 구(口)’

    2023-05-09 16:02
  • 훌륭한 선생은 혼자 가르치지 않는다

    산수 문제를 칠판에 풀던 선생님이 분필을 들고 머뭇거릴 때 끝나는 종이 울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선생님이 “이 문제는 다음 시간에···”라며 칠판에 풀다 만 문제를 지우고 수업을 끝냈다. ‘선생님이 풀지 못한 문제’는 저녁때 집에 다니러 온 작은아버지가 바로 풀어줬다. 밤새 문제 풀이를 외웠다. 다음날 선생님이 지난 시간에 이어 한 사람씩 나와 다음 문제를 풀라고 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풀지 못한 문제는 넘어가고 그다음 문제부터 풀라고 시켰다. 학생들이 나와 칠판에 맡은 문제를 풀지 못하면 선생님이 풀어줬다. 다음 문제로 또 넘어가려 할 때 지난 시간에 풀다 만 문제가 있다고 내가 말하자 선생님이 풀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내가 손들고 풀겠다고 해 앞으로 나갔다. 외운 대로 풀다가 막혔다.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외워서 한 일은 언제나 막힌다. 선생님은 내가 채 풀지 못한 문제를 다 풀어주고 지우개로 지웠다. 분필을 건네주며 선생님은 내게 다시 풀어보라고 해 이해한 대로 제대로 문제를 다 풀었다. 선생님이 다른 일로 아버지를 만나고 가신 뒤 아버지가 찾았다. 아버지는 “선생님이 자기도 풀지 못한 문제를 네가 풀었다더라”라며 칭찬했다고 했다. 작은아버지가 가르쳐 준 거라고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학문이 높은 선비도 집 가(家) 자가 막힐 때가 있다”라고 전제한 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배움이 깊을수록 겸허해진다는 뜻이다. 네가 공부해 깨달아 푼 문제도 아니고 작은아버지가 가르쳐 준 걸 선생님에게 뽐내려 한 일은 잘못이다”라고 지적했다. 아버지는 “학문이 아무리 깊다고 해도 가르쳐 보면, 자신

    2023-05-02 15:15
  • 똑바로 걸어라

    평생 걸을 때마다 떠오르는 아버지의 지적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다. 윗동네 사는 어른께 아버지가 편지 심부름을 시켰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요즘 말로 손편지가 소통꾼이었다. 걸음이 불편한 아버지는 내게 편지 심부름을 많이 시켰다. 편지를 써서 들려주며 아버지는 “답을 받아와야 한다”거나 “전해드리기만 하면 된다”는 말씀을 꼭 했다. 그날은 답을 받아오는 거였다. 그 어른이 답장을 쓰시는 동안 내준 떡을 먹느라 오래 걸렸다. 답장을 받아들고 집이 보이는 언덕으로 뛰어올 때 아버지를 만났다. 돌아올 시간을 넘기자 아버지는 해가 넘어가는 눈 덮인 언덕길을 올라와 기다렸다. 받아든 편지를 다 읽은 아버지는 한참을 서 있다 느닷없이 언덕길을 지팡이로 가리켰다. 둘이 서서 내려다본 눈 덮인 언덕길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백여 미터 언덕에 찍힌 큰 발자국은 오른쪽에 아버지 지팡이 자국과 함께 일직선으로 곧바로 언덕을 올라왔다. 왼쪽의 작은 발자국은 내 발자국이었다. 발자국이 어느 하나도 모양새 좋게 찍히질 않았다. 삐뚤빼뚤대다가 미끄러지기도 한 발자국은 내가 어떻게 언덕길을 걸어 올랐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똑바로 걸어라”라고 운을 뗀 아버지는 “아무렇게나 걸어서는 안 된다. 네가 한 일은 저 발자국처럼 고스란히 남는다. 앞 발자국만 찍힌 건 성급함을 뒷 발자국만 찍힌 건 오만함을 말해준다. 어떻게 걸어왔는지 뿐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걸어갈 건지를 알 수 있다. 남들도 네 걸음을 다 본다”고 했다. 이어 “먼 데서 봐도 네 걸음인 걸 알 수 있게 걸어라. 앞을 똑바로 보고 보폭을 일정하게 해 속도를 똑같

    2023-04-25 17:44
  • 최고 제품은 시장을 새로 만든다

    아버지는 평생 집을 직접 두 번 지었다. 두 번째 지은 집이 완성되자 바로 이발소를 개업했다. 1966년이다. 우리집에서 백여 미터 앞에 있는 아세아시멘트 공장 준공을 앞두고서다. 개업하기 전에 ‘일성(一盛) 이발관’ 간판을 먼저 달았다. 간판을 단 이튿날 어머니가 잠을 깨워 일어나자 아버지는 이미 어둑한 새벽에 양복을 차려입고 기다렸다.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충북 진천에 갔다. 지팡이를 짚는 아버지는 물건을 가지고 가야 할 일이 있으면 동행에 들려 갔다. 그날은 내가 보자기에 싼 선물을 든 동행으로 따라갔다. 군청 옆 다방에 들어가 좀 기다리자 젊은이가 부리나케 들어와 바닥에 엎드려 아버지에게 큰절했다. 아버지가 양팔을 잡아 일으켜 자리에 앉히자 그는 의자 끝에 앉았다.  지금 이름은 잊었지만, 며칠 지나 진천에서 만났던 분이 그분보다 더 젊은 남자와 여성 두 분과 함께 집에 왔다. 이튿날 개업식을 했다. 이발용 의자 5개를 갖추고 이발사 세 명, 면도사 세 명, 머리 감겨주는 사람까지 직원이 7명인 대형 이발소였다. 꽤 넓은 이발소 안은 사람들이 가득 찼다. 하객들은 서서 떡을 먹고 술을 마셨다. 의자 셋에는 이발하는 성급한 사람도 있었다. 처음 보는 풍경이어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가 소파에서 일어서자 모두 손뼉 쳤다.  아버지는 “그동안 고심 많이 했다. 작은 동네에 이미 이발소가 세 개나 있는데 또 문을 열어야 하느냐는 고민이었다. 당장 구내이발소를 열 형편이 못 되는 공장 측에서 요청도 있어 생고민을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서 “사람의 첫인상은 머리에서 60%가 결정된다. 외지에서 온 공장 사람들의 고급 머리를 위해

    2023-04-18 18:06
  • 어제보다 더 나아지지 않은 날은 삶이 아니다

    고등학교 입시에 합격한 날. 합격증을 받으러 본관에 함께 들어서던 아버지가 “아!”하는 비명 같은 탄성을 질렀다. 나도 놀랐지만 주위에 있던 이들도 모두 놀랐다. 이어서 아버지는 큰소리로 “참 좋은 학교에 합격했다. 내가 가르치고 싶었던 게 저거다. 저렇게 현관에 떠억 하니 내건 창학정신을 봐라. 일류학교답다”라고 했다. 아버지가 지팡이를 들어 가리킨 편액에 모두 눈길을 줬다. 그날 본 고사성어가 ‘극기복례(克己復禮)’다. 나중에 알았다. 그 액자는 국어교사로 재직했던 당대 최고의 서예가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선생이 제자(題字)한 작품이었다. ‘극기복례’는 ‘욕망이나 삿(詐)된 마음 등을 자신의 의지력으로 억제하고 예의에 어그러지지 않도록 한다’는 말이다.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말씀에서 유래했다. 제자 안연(顔淵)이 공자에게 인(仁)에 관해 묻자 가르친 말이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오는 것이 인이다[克己復禮爲仁]. 만일 사람이 하루라도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온다면, 그 영향으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인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이 인은 제 힘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 남의 힘을 기다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안연이 다시 인을 실천하는 조목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하자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말라는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자기의 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따름’을 뜻하는 ‘극복(克復)’은 ‘극기복례’의 줄임말이자 동의어다. 국어 시험에 저렇게 썼다가 틀렸다. 표준 국어 대

    2023-04-11 16:49
  •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재주가 있다

    사직서를 아버지께 들켰다. 신혼 시절 부모님과 한집에 살 때다. 입사 동기 중 하나가 불러 “입행 동기지만 난 대리다. 다른 대리들이 뭐라 한다. 존댓말을 써라”라고 했다. 아래 직급인 계장 중에서는 내가 선임이라 그동안 언행에 각별히 신경 써왔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뜻밖이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선임부서의 대리 수준이 이 정도냐는 생각에 이르자 난생 처음으로 사직서를 써 양복 안 주머니에 넣었다. 비로소 진정이 돼 그날 일을 마쳤지만 여러 집을 오가며 혼자 술을 마셨다. 밤이 이슥하도록 마셔 집에 돌아온 건 열두 시가 넘어서였다. 평소 집에 돌아오면 그날 입었던 옷 주머니에 든 소지품을 모두 꺼내 놓는다. 양복은 분무기로 물을 뿌려 걸어두고 다음 날은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버릇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그러나 술에 취해 안방인 줄 착각하고 소지품을 거실 탁자 위에 놓았었다. 새벽잠 없는 아버지가 거실에 나와 그 사직서를 먼저 봤던 거다. 출근하는 나를 앉히고 연유를 물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은행장과 의견이 맞지 않아 사직서를 낸다면 몰라도 겨우 대리에게 한 소리 들었다고 사표를 내냐? 사나이 배포가 그 정도면 뭔 큰일을 하겠느냐.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냐”며 나무랐다. 영문을 모르는 어머니와 아내가 합석하자 아버지는 더 큰소리로 야단쳤고 말씀은 더 길어졌다. “모름지기 직장에서는 상사 만족이 우선이다. 상사는 화투 쳐서 딴 직위가 아니다. 그도 노력해서 얻은 자리다. 앉아서 볼 때와 일어서면 달리 보이듯 한 계단 높은 데서 보면 보는 게 다르다. 그걸 인정 않

    2023-04-04 13:36
  • 정답만 고집하지 말고 해답을 찾아라

    숙제는 ‘일부터 천까지’ 써오는 거였다.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다. 학생 사이를 돌며 숙제를 검사하던 선생님이 내 숙제를 보자마자 앞으로 나가라고 했다. 하나 틀린 거에 한 대씩 손바닥을 내밀게 해 회초리로 때리던 선생님이 앞으로 나와 멀뚱거리게 서 있는 내 뺨을 세게 후려쳤다. 뭐라고 말씀은 했으나 기억나지는 않는다. 넘어졌다가 일어서자 다른 뺨도 세게 쳤다. 선생님은 “넌 앞으로 숙제해오지 마!”라며 뒤에 가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손들고 서 있는 벌을 내렸다. 그렇게 나는 ‘숙제를 면제 당한 아이’가 됐다. 벌 설 때가 돼서야 내 숙제가 잘못된 걸 알았다. 영문도 모른 채 뺨부터 맞은 꼴이었다. 나는 일부터 백을 열 번 쓰고 맨 마지막에 아라비아 숫자 천을 써 숙제를 냈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날 밤 잠이 막 들었을 때 술에 취해 돌아온 아버지가 깨웠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들과 저녁을 하면서 숙제 얘기를 들었다.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숙제 얘기를 할 때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심정이었다. 뜻밖에도 아버지는 느닷없이 크게 웃으면서 “잘했다 잘했어. 숙제는 그렇게 하는 거다”라고 칭찬했다.  그날 밤이 이슥할 때까지 말씀하신 내용은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며칠 전 어머니께 여쭸다. “그걸 왜 기억 못 하겠냐? 온 동네 소문 다 난 얘기를. 난 그때 이미 얘기를 전해 듣고 가슴 졸이고 있었다. 그런데 네 아버지가 그렇게 호방하게 웃으며 아들 칭찬하는 걸 처음 봤고 의아했다. 술도 못 하시는 분이 그날처럼 취한 건 처음 봤다”라고 똑똑하게 기억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날 선

    2023-03-28 17:53
  • 너를 위해 살아라

    이제껏 아버지만큼 삼국지(三國志)를 탐독한 이를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가 쓴 삼국지 번역본을 읽었다. 가끔 보면 밑줄을 긋기도 하고 여백에 메모를 깨알같이 했다. 결혼해서 한집에 살 때다. 출근 인사를 드리자 갑자기 삼국지 일본어판을 구해오라고 했다. 동경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며칠 걸려 구해드렸다. 그러고 얼마쯤 지나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연의(三國演義) 중국어본을 대만에 있는 지인을 통해 구해드렸다. 그때 아버지는 책 심부름시키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삼국지를 읽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으냐”고 했다. 월탄(月灘) 박종화(朴鐘和)의 월탄삼국지(月灘三國志)를 구해드리자 비로소 만족해했다.  아버지 방을 청소하다 깜짝 놀랐다. 책 네 권을 펴놓고 노트에 삼국지를 만년필로 새로 쓰시고 있었다. 이미 다른 노트에는 등장인물별로 발언록을 따로 만들어 놓은 걸 보고 많이 놀랐다. 책에 다 적지 못한 번역 오류 등을 바로잡은 노트도 있었다. 적어도 몇 달은 족히 걸렸을 작업량이었다. 심하게 놀란 건 달력 뒷면을 이어붙여 삼국지에 나오는 모든 전투상황도를 그린 지도를 보고서였다. 외출했다 돌아온 아버지에게 “대단하십니다”라며 삼국지를 여쭙자 밤을 밝히며 하신 말씀이다. “번역서로는 월탄의 글이 좋다. 요시카와는 독자를 너무 많이 가르치려 한다. 그래서 내가 삼국지를 새로 쓰고 있다. 나관중이 저지른 실수도 여럿 있다. 특히 역사는 당시 인물이 겪은 바를 독자가 따라 해보는 방식의 추체험적(追體驗的) 기술을 해야는 데 소설적 가미가 너무 심하다”

    2023-03-21 16:24
  • 하늘은 모두 알고 있다

    같은 반 아이가 학용품을 잃어버렸다고 울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다. 교실에서 잃어버렸으니 같은 반 누군가가 훔쳐간 거라고 다들 단정지었다. 담임선생님은 “모두 눈을 감아라. 가져간 사람은 조용히 손만 들면 용서해주겠다”고 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말해도 마찬가지였다. 화난 선생님이 부리나케 교실 밖으로 나갔다가 한참 만에 양동이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친구 도움을 받아 모자란 기억을 되살린다. 선생님이 “앞에서부터 한 명씩 나와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빨간색 물감에 손을 담가라. 물감은 닦으면 괜찮지만, 거짓말한 사람은 손이 썩어들어갈 것이다”라고 했다. 손이 썩어들어간다는 말이 두려웠다. 아무도 나가려 하지 않았다. 몇 번을 나오라고 해도 나오지 않자 선생님이 맨 앞줄에 앉은 학생을 끌어내려 했다. 책상을 끌어안으며 버티던 여자아이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자 모두 따라 울었다. 뒷자리에 앉았던 나는 무서워 뒷문으로 도망쳐 집으로 왔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울며 집에 돌아온 아들을 본 어머니는 학용품 도난사건을 듣고 “네가 훔쳤느냐?”고 물었다. 훔치지 않았다고 하자 밖에 있던 아버지를 찾아 사정을 설명했다. 아버지는 “벌 받는 중간에 도망치면 네가 훔쳐간 게 된다”며 아직도 두려워 이빨을 부딪치며 떨고 서 있는 나를 학교로 돌려보냈다.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교실이 보이는 담장 뒤에서 울고 있는 나를 뒤쫓아온 어머니가 교실로 떠밀어 들여보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 교실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선생님이 우리집에 다녀가신 그날 밤 아버지가 나를 꿇어 앉혀놓고 하신 말씀이다. &ldquo

    2023-03-14 13:33
  • 마음에 없는 인사치레는 하지 마라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아버지가 느닷없이 물었다. 은행에 다닐 때다. 점심을 먹고 아버지가 담배 피우는 동안 길에서 지나치는 직장 동료들에게 내가 두어 번 한 말이었다. “별일 없지? 언제 밥 한 번 같이 하자구”라는 말을 아버지가 지켜보다 지적했다. 점심시간에 만나는 직장 동료들인데 딱히 할 얘기는 없어 인사치레로 하는 거라고 강변했다. 아버지는 바로 “정신 나간 놈 같으니라고”라며 역정을 냈다. 가까운 다방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여전히 큰소리로 ‘익은 밥 먹고 선소리한다’라면서 야단쳤다. 아버지는 실없는 말을 하는 언행을 크게 나무랐다. 또 지킬 마음도 없이 약속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상대편도 어차피 약속으로 제 말을 받아들이지는 않는 동료 간의 통상인사법이라고 재차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그중에는 네 말을 곧이들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지킬 생각도 없는 약속을 하는 가벼운 언행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앞으로 상대편이 네가 하는 말을 그 정도로만 여기는 게 더 큰 문제다”라고 질책했다. 아버지는 “지금껏 자라며 아버지와 어머니 둘 중에 누가 너를 더 많이 때렸는지 아느냐? 어머니가 너를 더 많이 때렸다. 그러나 너는 내가 때린 것만 기억날 것이다. 동물은 먹이를 주는 이에겐 적의(敵意)를 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시간을 내 식사비즈니스를 하는 건데 그 중요한 일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아버지는 못마땅해했다. 그때 일러준 고사성어가 ‘식언(食言)’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고사에서 비롯된 건 그날 처음 알았다.  아버지는 식언은 ‘춘추좌씨전(春秋

    2023-03-07 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