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하나)




오랜만에 무궁화호 기차를 탔습니다. 4시간 이상 달리는 완행열차는, 좀 불편하지만 그런대로 재미있었습니다.




책도 읽으면서, 무릎 위에 PC를 꺼내 놓고 이런 글도 쓰면서 그런대로 “혼자만의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한 칸에 72명이 탔는데, 40명 정도는 잠을 자고, 20명 정도는 이야기를 합니다. 눈에 띄는 중년의 아저씨 서너 분이 있었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책을 읽으며, 뭔가 메모를 하며,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사업을 하는지 직장을 다니는지 모르지만, 촌음을 아끼며 “탐구하고 사색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어느 분은 어두운 걸 모른 채 영자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머리 위의 작은 독서등을 켜 드렸습니다.






몇몇 청소년들은 자리를 두고도 통로에 나와 창 밖을 바라 보며 떠들고 있습니다. 차량간 이음 통로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고개를 수그리고 앉아 졸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아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또 다른 젊은이는 뒷자리에서 휴대폰을 두드리면서, 게임을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소리가 한참 동안 귀를 거슬리게 합니다만, 아무도 말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기도 며칠 전에 본 지하철의 그 아저씨와 유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바라 보며 잠시 생각했습니다.






이 칸에 탄 사람들 중에 30%정도 되는 젊은이들은 왜 책을 읽지 않고, 마냥 잠을 자고 있을까? 아직 조직사회의 쓴 맛을 몰라서 그럴까? 지식을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는 걸까?






서너 시간을 지루하게 여행하면서 유용하게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습관이라면, 평생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탈 시간이 얼마나 많을 텐데, 그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살아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른들은 잠시도 그냥 흘려 보낼 수 없어 공부를 하는 모양입니다.






화장실엔 누군가 음식을 토해 놓은 게 말라 붙어 있으며, 비좁은 의자는 차량이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며 소리를 냈습니다. 아무리 싸구려 기차지만, 장시간 장거리를 운행하는 차량을 어떻게 이런 수준으로 관리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비싼 새마을호나 고속철도 차량만 깨끗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풍경 둘)




어느 기업체에서 강의를 시작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맨 뒤에 앉아 있는 한 분이 두꺼운 책을 펴 놓고 열심히 밑줄을 긋고 있었습니다. 강의가 시작되면 책 읽는 것을 그만 두겠거니 하면서, 기분이 나빴지만 참았습니다. 강의를 시작한지 10분, 30분, 한 시간이 지나도 그 분은 강의는 안중에도 없이 자기만의 공부에 열중이었습니다. 아마도 다음 달에 사법고시를 보거나 회사 승진고시가 있는 모양입니다.




강의 1교시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서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하거나 피곤해서 책상에 엎드려 있는데, 그 분은 아마 잠시라도 공부를 하기 위해 조용한 곳으로 피했나 봅니다. 물론, 다음 시간에 5분 늦게 나타나셨습니다. 왜 나타났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분은 회사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교육진행자 분께 여쭤 보고 싶었지만, 저 자신도 관심을 갖고 싶지 않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요.




그 분이 10년 후, 20년 이후에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 갈지, 그런 것도 궁금했습니다.








(풍경 셋)






그 분은 잊을 만 하면 제게 전화를 합니다. 아주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하시지만, 진실로 반갑지 않다는 걸 저는 느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별로 반갑지 않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자신의 사업에 협조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웃으면서 던지는 눈빛은 “뭔가 애절하게 원하는, 그러면서 상대방의 상황이 자신보다 못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득 찬” 그런 모습입니다. 비비 꼬일듯한 손놀림과 떨리는 목소리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얼굴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선뜻 들어 줄 수 없는 일인지라,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 식사를 하러 갑니다.




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 역시, 즐거운 화제거리가 있거나 서로 공감이 가는 내용은 없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 날 때쯤엔 꼭 화장실엘 갑니다. 하는 수 없이 식사비를 먼저 내고 나오면서 웃음을 지으며 커피 한 잔을 제안하면 거절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커피값도 저의 부담입니다. 만나자는 전화에 거절하지 못한 걸 후회하고, 딱 부러지게 의사를 표명하지 못하는 제가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저냥 만나면서, 이렇게 서운한 표현을 하는 저 자신이 더욱 나쁘다는 걸 모른 바 아닙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돈이 들더라도 제가 술 한잔 사면서 그분의 못된 버릇을 따끔하게 일깨워 줘야겠다고 말입니다. 몇 주일 후, 바로 그날이 왔습니다. 강한 어조로 따끔한 충고를 하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지만,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못하면서 그냥 웃으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식사가 끝날 때 즈음, 가고 싶지도 않은 화장실에 먼저 갔습니다. 냄새 나는 화장실에 3분이나 머물다가 나왔습니다. 저에게 어디가 아픈지를 물으며 걱정을 하더군요. 모른 척하고 문을 열고 나오려니 식당 주인이 식사비를 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아까 그 분이 내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