窮(다할 궁)

 ‘몸을 구부리고 좁은 동굴에 숨은 사람’을 뜻한다. 숨는다는 것은 가난하거나, 당당하게 나서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보이는 행동으로 “양적인 변화가 극에 달한 상태임을 뜻한다”. 가령 경제 상황이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거나(IMF) 국가 간의 신뢰가 땅에 떨어져 더 이상 회복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을 때(한국과 일본의 현 상황) “극에 달했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런 현상이 궁(窮)이다.

窮(다할 궁)= 穴(구멍 혈) + 躬(몸 궁)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쟁의 예를 들어보자. 등 뒤엔 강이 버티고 있고, 눈 앞엔 적군이 월등한 세를 앞세워 길을 막고 있다. 도망갈 곳이 없다.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강물에 몸을 맡길 것인지, 죽기로 작정하고 눈 앞의 적을 상대할 것인지, 아니면 적에게 항복하여 목숨을 구걸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나 행동을 한다.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한 명의 적이라도 더 죽이겠다는 결사항전의 결의를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권위 또는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적과 내통하는 매국 행위에 앞장서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때문에 진정한 충신과 간신은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실체가 드러났다는 것을 지나온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궁하면 변화를 모색한다(窮則變궁즉변)”

궁(窮)하다는 것은 절실함을 뜻하는 또 하나의 표현이다. 무언가 새로운 상황을 갈구하는 마음이 극에 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국가나 기업은, 역사를 이끄는 주체에서 흔적으로만 기억되는 비운을 맞았다.

궁극적으로 변(變)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은, 궁(窮)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문제 없다는 생각이 상황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변(變)화의 필요를 인정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변화의 싹을 자르거나 외면하는 우매한 결정을 내리곤 한다.

“특허청, 초고순도 불화수소 특허 2011년 접수, 일본산 맞먹는 99.999999999% 기술 특허 통과, 개발자인 중소기업, 여건상 투자 못해 사업화 실패, 대·중소기업 ‘상생 생태계’ 부재가 원인으로 꼽혀(중략) 전직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상생하려 하지 않았던 근본적 한계가 일본의 수출규제라는 사태를 불러온 게 아닌가 싶다”

불화수소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초고순도 불화수소가 개발된 8년 전에 오늘의 사태를 예측한 힘 있는 리더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과적으로 국내 중소기업이 개발한 초고순도 불화수소 기술은 시장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끝내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불화수소로 남아있다. 당시에 불화수소를 사용하는 기업의 리더들 중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도 일본산 불화수소를 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아직 현장에서 검증된 바가 없는 국내산 불화수소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반도체 공정 적합성 테스트도 6개월~1년이나 걸리는 것을, 그럴 바엔 그동안 사용상 문제가 없었고 이미 검증된 일본 산 불화수소를 쓰는 게 현실적이다. 무엇보다 일본이 가까운 나라니까 물류 조달이나 비용 측면에서도 문제가 없고”

가진 것에 취한 정도가 심할수록 변화의 열망은 줄어든다.

현 상황에도 문제가 없는데, 굳이 새로운 위험이 도사라는 칼 날 위에 올라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자칫하면 아무 탈 없이 잘 쓰고 있는 불화수소 공급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국내에서 개발된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외면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아니었을까?

반도체 소재 사건이 터지면서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의 대 전환이 감지되고 있다. 다행인 것은 더 이상은 끌려 다닐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탈 일본화에 대한 필요가 현실적 문제로 대두된 점이다. 궁(窮)의 상황이 초래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물론 여, 야간 현안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로 인한 다툼이 있지만 이 또한 나라를 위한 충정의 표현이라 믿는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경제적 압박 카드를 철회되지 않는 한, 일정 피해는 어쩔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중, 장기적으로 국내 경쟁력이 갖춰질 것이고 이는 일본의 기술 지배력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한쪽 팔을 내어주고 상대의 목숨을 취한다는 사무라이 정신이 이런 것일까? 아니면 가진 자의 일방적 횡포일까? 아무리 곱씹어도 그들의 명분은 빈약하다 못해 억지스럽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일본도 궁((窮)의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상상을 초월하는 국가부채, 연금 외에 2억 원이 넘는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정부 보고서 파문,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무리하는 헌법 개정, 기술 후진국으로 여겼던 한국이 자신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러 분야에서 앞서가는 것에 대한 초조감, G3 경제 강국임에도 국, 내외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리더십을 인정받지 못하는 아베…

지금의 일본은 무언가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궁(窮)의 상황에 놓인 것이 분명하다. 이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베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한국 때리기”를 또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구사한 방법은 너무 위험하다.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역 분쟁 카드를 사용한 때문이다. 일본의 어이없는 선전포고를 접한 한국은 이를 경제 전쟁 상황으로 인식,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일어서는 한민족 특유의 DNA 버튼을 누르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유력 매체들도 세계 보호무역 질서를 흔드는 나쁜 짓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쓰지 말았어야 할 칼을 쓴 것이고, 보여주지 말아야 할 나쁜 패를 들킨 셈이다. 언제든 기회가 되면 칼(왜란), 총(일제강점기), 돈(현재)으로 상대를 침략하는 습성을 지닌 국가, 절대 신뢰할 수 없는 일본의 이미지를 또 한번 세계 만방에 각인시키고 말았다.

“세상은 궁함의 끝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이종범의 셀프리더십] 궁(窮)함의 끝에서 변화의 싹이 튼다
이는 국가, 기업, 개인을 가리지 않는다. 넉넉한 집엔 궁함이 없기 때문에 먹는 문제에 대한 절실함이 없다. 하지만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넉넉해도 그 안에서 궁(窮)을 보고 대비한다. 이는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 중 으뜸이라 할 만하다. 내일의 기회와 위험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리더에게 주어진 최우선적 과제다. 때문에 리더의 행동을 보면 그의 진정한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어떤지 묻고 싶다

“우리의 리더는 닥친 일에 함몰된 리더인가? 닥칠 일을 준비하는 리더인가?”

궁(窮)함의 끝에서 변화의 싹이 트듯, 이번 기회가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종범의 셀프리더십] 궁(窮)함의 끝에서 변화의 싹이 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