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계란을 생각하며, 유안진

계란을 생각하며



유안진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다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남이 터뜨려 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환골탈태(換骨奪胎)는 그런 거겠지



【태헌의 한역】


思鷄卵(사계란)



夜起佇坐顧形影(야기저좌고형영)


他人料吾是批判(타인료오시비판)


吾人料吾卽察省(오인료오즉찰성)



他人破卵爲煎蛋(타인파란위전단)


吾人自啐作鷄雛(오인자줄작계추)


換骨奪胎也應然(환골탈태야응연)



[주석]


* 思鷄卵(사계란) : 계란을 생각하다.


夜起(야기) : 밤에 일어나다. / 佇坐(저좌) : 우두커니 앉다, 멍하니 앉다. / 顧形影(고형영) : 내 몸을 돌아보다. ‘形影’은 형체(形體)와 그림자, 곧 내 몸이라는 뜻이다.


他人(타인) : 다른 사람. / 料吾(요오) : 나를 헤아리다. / 是(시) : ~이다. / 批判(비판) : 비판하다, 비판.


吾人(오인) : 나. / 卽(즉) : 즉, 곧, 바로 ~이다. / 察省(찰성) : 성찰(省察).


破卵(파란) : 알을 깨다, 계란을 깨다. / 爲(위) : ~이 되다, ~이다. / 煎蛋(전단) : 계란 프라이.


自啐(자줄) : 스스로 (껍질을) 빨다, 스스로 깨뜨리다. ‘啐’자와 관련해서는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사자 성어를 찾아보기 바람.  / 作(작) : ~이 되다, ~이다. / 鷄雛(계추) : 병아리.


換骨奪胎(환골탈태) : 뼈대를 바꾸어 끼고 태를 바꾸어 쓴다는 뜻으로, 고인(古人)의 시문의 형식을 바꾸어서 그 짜임새와 수법이 먼저 것보다 잘되게 함을 이르는 말이다. 남송(南宋)의 승려 혜홍(惠洪)의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얼굴이 변해 전보다 아름답게 되었거나, 사람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하여 전혀 딴사람처럼 되었을 때 쓰기도 한다. / 也(야) : 주어나 목적어[빈어] 뒤에 쓰여 앞말을 강조하는 조사(助詞). / 應(응) : 응당. / 然(연) : 그러하다, 그렇다.



[직역]


계란을 생각하며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 내 몸 돌아보나니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남이 계란을 깨면 계란 프라이가 되지만


나 스스로가 깨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환골탈태(換骨奪胎)는 응당 그런 거겠지



[漢譯 노트]


원숙한 통찰과 명징(明澄)한 혜안을 보여주는 유안진 선생의 이 시는 제1연이 1행, 제2연과 제3연이 각각 2행, 그리고 제4연이 1행으로 구성된 6행시이지만, 역자는 한역(漢譯)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두 단락 각 3구로 재구성하였다.


지난번에 얘기한 <대풍가(大風歌)>와 같은 3구시의 예로는 전문가들에게도 생소한 <화산기(華山畿)>라는 제목의 25수로 구성된 연작시를 들 수 있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가운데 두 수는 3구시가 아니다. 이 연작시를 보면 3구시의 압운법은 두 가지가 일반적임을 알 수 있다. 곧 <대풍가>처럼 매구에 압운하는 방식과 홀수 구인 제1구와 제3구에 압운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역자는 이 시를 한역하면서 홀수 구인 제1구와 제3구에 압운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의 압운자는 첫 째 단락의 ‘影(영)’과 ‘省(성)’, 둘 째 단락의 ‘蛋(단)’과 ‘然(연)’이 된다. 한역시의 ‘顧形影(고형영)’은 ‘내 몸을 돌아본다’는 뜻인데 시의 내용과 압운을 고려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역자는 이럴 때가 원시를 쓴 시인에게 가장 송구스럽다. 모쪼록 군더더기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더없이 간절하다.


2019. 8. 6.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