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면 불행해지고, 비전을 품으면 행복해진다”

 유영만 교수의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에 나오는 말이다. 살다 보면 수많은 것들을 비교(比較)하고 평가(平價)하는 일상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개념은 ‘어떤 기준’을 설정해 두고 그 보다 나음과 못함을 구분 짓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때 ‘어떤 기준’이 모호하거나 해당 개체를 수용할 수 없는 경우,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후유증이 수반되기 때문에 <비교와 평가>는 필요하지만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비(比 견줄 비)라는 글자가 있다. 이는 “나란히 선 두 사람이 견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작은 칼의 의미도 있는 만큼 서로 칼(匕 비수 비)을 겨누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하고 싶다

(견줄 비) = +

이처럼 날이 선 칼을 서로 겨누고 있는 형국에서는, 둘 중 하나 또는 둘 모두 다치거나 죽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때문에 비교의 칼을 사용할 때는 자신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 왜냐하면~”로 시작하는 논쟁은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정치를 보면 수 없이 많은 표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범의 셀프리더십] 비교의(比) 칼은 상처만 남긴다
요즘 말의 칼을 휘두르는 정치인이 넘쳐난다. 막말로 대표되는 이런 현상이 올바른 정치를 추구하는 자세라고 말하는 국민이 있을까? 상생의 정치를 말하면서 충돌의 정치를 일삼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그런 모습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봉사이고, 그런 과정을 이끄는 리더의 모습이 자기 자랑으로 치부되는 현상이 올바른 것일까?

상생은 없고 자기 중심적 사고에 기반한 비교와 평가의 칼을 휘두르는 일이 일상처럼 벌어지는 정치 판을 보면 여, 야 가릴 것 없이 전가의 보도처럼 덧붙이는 말이 있다.

“국민의 뜻이다”

우스개 소리지만 필자에게 단 한 번도 자신들의 정책에 대한 견해를 물은 적이 없다. 필자는 우매해서 그렇다 치고, 이 글을 접하는 독자는 그들이 당의 정책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 온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당을 지지하는 당원들의 뜻이다”, 그도 아니라면 “내 생각이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비교는 피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이나 갖다 붙이는 무책임한 비교의 칼은 자신의 무능함을 만방에 알리는데 일조할 뿐이다. 이는 비단 정치인 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반 조직의 리더나 한 가정을 책임지는 부모의 역할도 다르지 않다. 비교의 칼과 평가의 잣대는 잘 사용되면 강력한 시너지가 발현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희망의 싹까지 자르는 위험을 초래한다. 때문에 비교의 칼과 평가의 잣대를 쥐고 있는 리더는, 그만큼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비교하고 평가해야 한다면 두 가지 요소는 주의해야 한다. 선입견과 편견이다. 물론 쉽지 않은 주문이다. 나이, 경험, 학벌, 사회적 지위 등과 같은 것으로 상대를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온전체”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크고 작음을 떠나 한 집단을 이끄는 리더라면, 적어도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단점보다는 장점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더하여 지적보다는 칭찬에 인색하지 않으며, 하라고 명령하기 전에, 먼저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리더의 모범이 망가지면, 모범을 보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서 자신을 따르라고 한다면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모범이 사라진 국가, 사회, 가정에서는 올바른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모범이 망가진 곳엔, 모범을 보이고 싶은 사람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종범의 셀프리더십] 비교의(比) 칼은 상처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