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호 칼럼] 대한민국 OECD 국가 중 1위?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 항상 1~2위를 차지하는 분야가 있다. 자살률이다. 2003년 이후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15년째 유지하고 있다. 40분에 한 명, 하루에 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2018년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2016년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OECD 국가 평균 11.6명보다 훨씬 높은 수치인 25.8명에 달한다. 물론 자살 증가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등 동아시아에 있는 다른 나라들은 물론이고 미국 등 서구권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증가되는 자살자 수에 비해 그 심각성은 그리 높지 않다. 전쟁이나 테러로 죽는 사람과 범죄로 죽는 사람의 수를 합한 것보다 자살자의 수가 많다. 게다가 그 수치는 매년 갱신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다. 전보다 풍요로워지고 생활환경이 나아지면 삶의 행복이나 만족도는 높아져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 유독 대한민국은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사는 걸까?

그 이유는 인간의 행복이란 많은 돈, 높은 평수의 아파트, 다량의 식량 보유 등과 같은 객관적 지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기대치에 좌우된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그 기대가 충족되면 행복하다고 느끼고 반대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여긴다. 문제는 대한민국은 아파트 평수, 월 급여, 자동차 소유, 예금액 잔고 등과 같은 객관적 지표의 기대치에 행복을 느낀다.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좋은 것을 먹고 누리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참고로 미국이나 유럽 국가는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갖고, 사회적 약자를 도우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주관적 지표에 행복의 기준을 적용한다.

불과 2~3년 전만해도 인천국제공항에 가면 여행객들 속에서 유난히 알록달록한 등산복이 눈이 띈다. 특히 단체 여행객들은 마치 서로 맞춘 듯 등산복 일색이다. 여행지에서 즐겨 입다보니 등산복을 입은 건 한국인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들이 가는 곳은 트레킹 코스가 아닌 다운타운, 미술관, 박물관, 오페라 하우스다. 급기야 한 여행사는 등산복을 자제해 달라는 문자를 고객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등산복일까? 등산복은 원래 선진국에서 수요가 집중되는 품목이다. 고기능성의 첨단소재로 생산되기 때문에 일반의류보다 고가다. 고가의 여가장비를 구입하는 것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효과적 수단이므로 여기서 비교우위에서 지면 불행해진다. 여행을 마친 후 여행객들은 오르세 미술관의 그림 이야기보다는 옆집 엄마가 입은 옷에 대해 반응한다. “내 옷보다 천이 한결 부드러웠어, 썩을 년!”

지금 대한민국은 과거에 비해 수천 배 이상의 경제적 힘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수천 배만큼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수천 배 이상의 힘을 얻는 데 뛰어난 소질이 있으나, 그 힘을 행복으로 전환할 줄 모른다.

얼마 전 로또 1등에 당첨돼 한때 19억 원이라는 거액을 손에 쥐었던 남성이 8개월 만에 돈을 모두 탕진하고 10여 년간 좀도둑 신세로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던 중 최근 또 범행하다 붙잡혔다. 그는 경찰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처벌받고 나오면 반드시 새사람이 되겠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사람이 바뀌지 않음을. 결국 이 사람의 말과 행동이 행복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단상은 아닐까…

글.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 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