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근영의 블록체인 알쓸신잡] 제자 탓하는 스승, 규제 탓하는 사업가
폴란드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많은 것을 얻었다.

1983년 4강 신화를 넘어 남자 대표팀 사상 첫 FIFA 주관 대회 준우승과 이강인(발렌시아)이라는 향후 10년 이상을 책임질 축구 천재의 등장 역시 커다란 소득 중 하나다.

그러나 필자가 꼽는 가장 큰 소득은 정정용 감독이라는 뛰어난 지도자의 발견이다.

정 감독은 축구 선수로 1997년부터 6년간, 지금은 사라진 ‘이랜드 퓨마’팀에서 중앙 수비수로 뛰었으며 연습경기에서 눈 부위가 골절되는 큰 부상에 30세도 안 돼 은퇴했다.

정감독은 이후 용인 태성 중학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로 입문하여 유소년들과 연을 맺었고 2006년부터 각급 대표팀에서 코치, 감독을 맡으며 어린 선수들과 함께 성장해왔다고 한다.

감독 대행, 임시 감독 등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 각종 연령대의 대표팀에 공백이 생길 때면 대한축구협회는 정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그 어떤 연령대에 배치되어도 정 감독은 제 몫을 해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수 시절 명지대 대학원을 다닌 정 감독은 은퇴 후 한양대 대학원에서 스포츠생리학 박사과정을 이수했을 정도로 스스로를 갈고닦는 공부에도 열심이다.

그는 지난 2016년 대한축구협회와 인터뷰에서 “내 꿈은 U-17, U-20 월드컵 같은 메이저대회에 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하는 것이다. ‘모든 게 완성된 선수에게는 흥미 없다’ 아직 덜 완성된 유소년 선수들을 만들어내 메이저대회 성적을 내고 싶다”라고 했던 그가 3년 만에 목표를 이뤄냈다.

이런 여러 가지 면들을 살펴보며 필자가 정감독을 높이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완성된 선수에게는 흥미가 없다”는 말이다.

세상 모든 감독이 뛰어난 선수들로 구성된 명문 축구클럽에서 활약하는 것이 꿈이며 정상권에 다가가는 쉬운 방법임을 안다.

하지만 미완의 대기를 알아보고 이들을 갈고닦아 최고의 선수로 키워내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능력이다.

거기에 더해서 결승에서 패한 후 정감독은 “모든 패배의 원인은 감독인 내 잘못이다. 선수들은 너무도 잘 뛰었다”라는 말로써 선수들을 감쌌다.

필자는 이렇게 지도자로서의 큰 그릇을 가지고 있는 정감독을 발견해 낸 것이 이번 U-20 월드컵 대회에서 우리가 얻은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라고 얘기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2002년 월드컵에서의 ‘거스 히딩크’ 감독 역시 동방의 변방국가인 우리나라 대표팀을 맡아 선수들의 체력을 극대화 시키며 월드컵 4강이라는 역사에 남을 기록을 일궈냈고,

박항서 감독 역시 만년 하위권인 베트남 대표팀을 맡아 ‘박항서 매직’을 만들어내며 위대한 지도자 자질을 보여 주었다.

이렇게 뛰어난 스승은 능력 없는 제자를 탓하지 않고 그들의 잠재력을 발굴해내고 키우고 발전시켜 세계적인 선수로 만들어 간다.

한참 전의 일이다.

우리 회사 임원이 필자를 대신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많은 교수들이 모인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와 얼굴을 붉히며 씩씩대며 한마디를 한다.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모 지방대학 교수가 술 한잔의 힘인지는 몰라도 둘러앉은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같이 뛰어난 교수가 실력이 형편없는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힘들어 죽겠다는 얘기를 하면서,

제자들의 무능력과 실력 없음을 비난하는 발언을 거리낌 없이 했다면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교수라고 스스로 칭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이런 교수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를 하고 있는 그 학교 학생들이 참으로 불쌍하다고 이야기했다.

필자는 이 말을 들으며 이단공단(以短攻短)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이 사자성어(四字成語)는 중국 명나라 말기 홍자성(洪自誠)이 편찬한 채근담(菜根譚)에 수록되어 있는데, 자신의 결점(缺點)을 고려하지 않고 남의 잘못을 들춰내 비난(非難)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라는 속담과 일맥상통한다.

최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암호화폐 규제에 관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 FATF의 권고안에는 여행 규칙(travel rule)을 포함해 암호화폐 거래소 등 ‘가상자산 서비스제공자(VASPs, virtual asset service providers)’가 지켜야 하는 논란이 많았던 의무사항까지 대부분 포함됐다.

이 권고안이 발표되자 많은 암호화폐 사업자들은 FATF를 성토하며 비난하고 있는데, 냉정하게 바라볼 때 사업이란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생존해 나가는 것이 사업의 본질이며 사업가의 의무다.

거침없는 탄탄대로가 깔려있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란 재벌을 부모 태어나 내부자 불법 거래로 (이제는 이런 것도 절대 쉽지 않은 세상이다) 손쉽게 자리 잡는 회사 외에는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없다.

자신은 여기 후진 지방 대에 있어서는 안 되는 능력 있는 스승인데 배움이 짧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이 짜증 난다는 그 교수는 국내 최고의 수준 높은 대학생을 가르치더라도 또 다른 핑계를 댈 게 뻔하고 모든 잘못된 일을 남 탓으로 돌릴 것이 뻔하기에 누구를 가르치거나 정부의 관직을 맡아서는 안될 사람이기에 이 교수에게는 “弟罪問師不師” 라는 말을 건네주고 싶다.

그리고 FATF의 권고안을 예상하지 못하고 사업을 해온 암호화폐 사업가라면 사업을 접을 것을 권하고 싶다.

어차피 사업이란 어린 학생을 돌봐주며 키워주는 캠퍼스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페이스북 암호화폐 ‘리브라’의 등장과 FATF의 권고안이 ‘쓰나미’처럼 몰려드는 현재 이 시간은 본격적으로 암호화폐 월드컵 본 게임이 열리는 전쟁터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공부 못하는 학생을 탓하는 스승이랄 수 없는 교수와 세상의 온갖 규제 때문에 사업하기 어렵다는 사업가는 똑같다.

스타트업이라는 능력 없는 학생을 가르치고 키워 뛰어난 제자로 성장시키는 것이 위대한 사업가의 덕목이고 능력이다.

사업가는 남 탓할 시간이 없다.



신근영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