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빨리 오고 길어지는 것을 반기는 곳이 있다. 평양냉면 면옥(麵屋)이다. 날이 더워지면서 입맛을 당기는 음식이 냉면이다. 말 그대로 찰 냉(冷)이 들어간 면이다 보니 여름에 찾는 게 당연하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엔 겨울 음식이었는데, 과학의 발달이 식문화에 영향을 끼친 대표적 음식이 아닐까 싶다.
겨울음식이던 냉면, 여름별미로 환골탈태

우래옥
평양냉면은 한국전쟁과 함께 남하했다. 남하보다는 월남했다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리고 피란(避亂) 왔다고 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북쪽에 살다가 한국전쟁 와중에 서울을 비롯해 휴전선과 가까운 인천지역, 경기, 강원지역으로 피란 온 실향민들이 생계형으로 평양냉면 집을 차렸다. 지금껏 길이 열리지 않아 눌러앉은 것이 남쪽의 평양냉면이다.
하루에 서너 곳 투어 하면 냉면 맛 기준 알 수 있어

필동면옥

남포면옥
소위 평양냉면으로 한 가닥 한다는 면옥들이다. 역사가 70년이 훌쩍 넘은 곳부터 10년이 채 안된 곳도 있다. 역사는 식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맛은 역사와 반드시 비례하진 않는다. 맛과 역사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면 여러 사람들이 찾는 좋은 문화가 되는 것이다.
서울의 면옥들은 저마다 평양냉면의 정통성을 선보이면서 나름의 맛을 추구하고 있다. 맛은 개인적 기호에 크게 좌우된다. 그렇게 때문에 우열을 공개적으로 논하기는 조심스럽다. 다만 여러 곳을 다니면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평양냉면 맛을 알 수 있다. 그 맛의 범주를 벗어나는 곳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럴 때 일종의 서열이 매겨진다.
한국전쟁 때 월남한 실향민들의 소울푸드

봉피양

서경도락
우래옥이 강북을 호령한다면 봉피양은 강남 쪽 평양냉면의 자존심이다. 송파구 방이동은 봉피양 타운이 만들어지고 있다. 본관을 중심으로 주변 건물을 사들여 별관을 늘려가고 있다. 그만큼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는 반증이다. 진미평양냉면도 어느새 별관을 얻어 영업 중이다. 간판 내건 것은 후발주자지만 면장 경력 20년의 내공이 있는 곳이다.
최근 젊은 층에 호평받고 있는 곳은 정인면옥과 서경도락이다. 맛의 밸런스가 가장 잘 잡혔고 흔들림 없이 견고하단 이유다. 특히 두 곳은 메밀 100% 순면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진미평양면옥
정인면옥ㆍ서경도락 마니아들에게 인기
평양냉면 입문자들이 많이 찾는 필동면옥과 을밀대는 완전히 다른 면발이다. 때문에 입문을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평양냉면의 기준이 달라진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면스플레인이다. 면과 익스플레인의 합성어인데, 자기 기준을 남에게 설명하는 일종의 ‘전지적 참견시점’이다. 이는 기호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일종의 오만으로 지적된다.
능라도는 경기도 판교에서 생겨 서울로 올라 온 케이스다. 최근 같은 이름 간판이 서울 시내에서 눈에 많이 띈다. 브랜드가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남포면옥은 고대광실 커다란 한옥채를 이어서 만든 널찍함을 자랑한다. 밖에서는 덩치가 작아 보이지만 내부가 의외로 넓다. 육수에서 색다른 향이 올라와 호불호가 강한 곳이다.

을밀대
본격적인 여름 초입으로 들어서는 계절이다. 냉면은 한국인의 소울 푸드 중 하나다. 특히 분단의 아픔을 안고 그것을 치유하는 힐링 푸드이기도 하다. 또 세계 속에 자랑하고 내세울 만한 한식 중 하나가 됐다. 이미 유명 면옥 집은 점심에 대기 줄이 늘어선다. 한국인의 면식 사랑은 나날이 깊어가는 듯하다.
냉면이 겨울 음식인 이유는 찬 성질 때문

정인면옥
평양냉면은 고기육수 육향과 중후한 맛에 시원함을 더해 여름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오죽했으면 을밀대 외벽에는 ‘겨울에도 합니다’라고 써 붙여 놓았을까. 날이 더워질수록 시원한 고기 육수가 그리워진다. 선주후면, 선육후면의 유혹이 강해진다. 어디로 갈까, 고민의 계절이다.
유성호 한경닷컴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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