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칼럼] "눈이 부시게!"
며칠 전 지인들과 나눈 대화다.

“나는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여고시절로 가고 싶어!”

“왜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그 때로 돌아가면 정말 열심히 공부할 것 같아!”

“호호호.”

 나이에 따라 대화가 많이 달라진다. 20대엔 직업이나 직장 그리고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 30대에는 출산과 육아 이야기를 주로 했다. 40대가 되어 자녀 교육과 자녀 취업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50대가 되면 자녀 결혼과 더러는 손자 이야기가 나오고 거꾸로 자신의 옛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물론 개인차가 있다.

 이쯤 질문 하나를 하겠다. 조금 상황을 바꾸어서 과연 2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이 모임에서 주로 나누는 대화 내용은 무엇일까? 대부분 자녀 취업과 결혼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녀 이야기는 생각보다 짧게 나눌 뿐. “우리는 늙어서 어떻게 될까!”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온다.

“우리 어머니가 갈수록 이상해요.”

“왜요?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 말을 이상하게 해서 가족들이 마음 상하게 해요.”

“?”

 사연인즉 이렇다. 시어머니 생신 전 날, 두 며느리가 도착하기 전에 시어머니가 몇 가지 음식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들이 이를 보고 며느리가 요리를 할 텐데 힘들게 음식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게다가 젊은 며느리가 솜씨도 좋고 위생적으로 잘 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마디 더 덧붙였다. 이를 서운하게 여긴 시어머니는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아들이 내가 만든 음식이 더러워서 못 먹겠다고 이제 만들지 말라고 하네요.”

 이 상황을 지켜 본 며느리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아들의 말을 고깝게 여긴 어머니가 너무나 안타깝다고 했다. 또,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부터다. 이 이야기를 들은 후 이 모임의 열기(?)가 더해졌고 ‘너도 나도’ 한 마디씩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대화가 오갔다. 특히 반 백 년을 넘긴 50대 엄마들은 더욱 격하게(?) 공감한다. 남의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50대라는 위치에 있지만 어머니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곧 자신에게 일어날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한 철학자는 “인생은 없고, 없고, 없고, 없고, 없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5가지 <없고>는 ‘어려서는 철이 없고, 젊어서는 정신이 없고, 중년에는 시간이 없고, 늙어서는 형편이 없고 그리고 죽어서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인생을 시간적 주기로만 따져 위치만 보일뿐 인생의 가치를 논하기에 ‘없다!’란 단어는 매우 허무해 보인다.

  인간은 시간적 존재임에 분명하다. 종이 위에 마라톤 코스를 그린 후 자신의 나이에 점을 찍어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그림을 보면 2030세대는 출발점에서 멀지 않아 인생에서도 아직 기회가 많아 보인다. 50대는 마라톤 코스로 치면 하프코스에 해당된다. 하프마라톤은 21.0975km의 거리를 뛰는 도로달리기로 마라톤 거리의 절반이다. 백세인생, 딱 절반을 돈 셈이다.

 며칠 전 50대에 접어든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드라마 ‘눈이 부시게’이야기를 들었다. 드라마가 끝났는데도 그 여운이 가라앉지 않은 것 같았다. 필자에게 드라마 내용을 알려 주었고 한 사람은 자신의 ‘인생 드라마’였다고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다행히 주말에 다시보기 방송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왜, 지인들이 “이제 우리 이야기야!”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 인상 깊이 남는 대화 내용이다. 아들 안내상 씨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엄마 김혜자 씨에게 물었다.

“어머님은 살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하셨어요?”

“대단한 날은 아니구. 나는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어요. 온 동네에 밥 짓는 냄새가 나면 나도 솥에 밥을 안치고 그 때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던 우리 아들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요. 그럼 그 때 저 멀리서 노을이 져요. 그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그 때가!”

 배우 김혜자 씨 말처럼 우리가 사는 매일매일은 ‘아침에 일어나 먹고 낮에 일하고 저녁에 잠자고’를 반복하는 일상이라서 그리 대단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헛되지도 않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젊을 때도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우리가 나이가 들어 ‘그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가장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얼마만큼 소중한지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나이와 환경 그리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 위치만 보지 말고 우리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가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한 인생은 ‘위치’에 있지 않고 ‘가치’에 있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하루는 매일 매일이 소중하고 새로운 기회이며 또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는 새날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살아있는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삶인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눈이 부시게’ 살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봄 햇살이 참 좋다. 올 봄엔 ‘눈이 부시게’ 한번 살아보자! 그러다가 내 눈이 부실 수도 있겠지만…  
[이지수칼럼] "눈이 부시게!"
Ⓒ20190326이지수(jslee308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