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가방 이야기



몇 년이 되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사람이 내 작은 가방이 초라해 보였는지
자기가 가지고 있던 가방인데 쓸 만하다고 주었다
가죽가방은 아니고 비닐가방인데 크기가 꽤 되어 묵직했다

처음부터 새가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낡거나 헌것은 아니었다
고맙게 받아 잘 쓰기 시작했다
가방에 이것 저것 넣고 다닐 것이 많아 늘 가방은 꽉 찬다

몇 년을 가지고 다니니까 이젠 정도 들고 나처럼 낡아졌다
손잡이도 너덜너덜하여 자투리가죽을 대고 기웠다
물건을 많이 넣다보니까 신기하게도 가방이 자꾸 커진다
가방을 털면 20여 킬로그램에 삼사십 가지가 나올 정도이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종로3가 악기점에 들른다
새 하모니카도 사고 수리도 맡기기 위해서이다
이름이 멋진 그 곳 사장님은 늘 구수하고 털털한 사람이다
하루는 가득 찬 가방에 하모니카를 더 넣어야 할 형편이 되었다

이러 저리 짐의 위치를 바꾸어 가며 꾸겨 넣느라고 애를 쓰는 나에게
그 사장님 아주 기막힌 소리를 툭 뱉으셨다
<헌가방이 많이 들어가는 법이어요>
기가 막힌 명언이었다

꾸역꾸역 더 이상 들어갈 것 같지 않던 가방에 하모니카 몇 개가 더 들어갔다
배가 터질 정도로 탱탱해진 가방을 들었다
맞다 만약 이 가방이 헌가방이 아니라 새가방이었다면
이 가방짐의 절반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 헌가방은 조금씩 차츰차츰 짐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바느질 솔기가 야금야금 늘어났고 가방의 전체부피도 조금씩 늘어났다
만약 갑자기 새 가방에 이 헌가방의 짐을 한번에 넣으려 한다면
분명 새가방의 솔기가 튿어지거나 찢어졌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짐이 늘어났고
가방은 조금씩 몸집을 늘려가며 주인의 짐을 다 소화시킨 것이다
비록 하찮은 물건이지만 대견스러웠다
어느 새가방 못지 않게 애착이 가고 소중한 헌가방이 되었다

아주 멋진 말이라고 감탄을 하며 사장님에게 어떻게 그런 좋은 말을 아시냐니까
항간에 많이 떠도는 속담인데 왜 모르냐고 하신다
왜 나는 그런 좋은 말을 이제야 알았을꼬?
곰곰 생각해 보니 나는 여태까지 내가 새가방인 줄만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오늘도 이미 배가 부른 헌가방에 이것 저것 더 구겨넣는 나를 보고
그 사장님은 더 기가 막힌 이야기를 툭 뱉어 놓는다
김선생도 이젠 헌가방이 되었구려
아니 세상에 이럴수가

어찌 말 한마디가 책 한권보다 더 정확할 수 있단 말인가
결코 쓸쓸하지 않은 저녁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생
헌가방을 어깨에 비껴 메고 악기점 문을 열고 나오며
사장님에게 엄지손가락을 힘차게 펴 보였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