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 친구인 상훈 엄마 이야기다. 상훈이 형이 여자 친구를 소개하겠다고 해서 만났단다. 결혼 적령기도 아닌 대학생 커플이라고 생각할 때 상훈 엄마는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지만, 한편 아들 여자 친구가 궁금했다고 한다.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여자 친구가 들고 나온 가방이 눈에 들어오더란다.
'어머 명품 가방인데, 내 것이랑 같은 거구나.'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다. 상훈 엄마는 옷장에 고이 모셔둔 그 가방을 찾았다. 그런데 가방이 있을만한 곳을 다 뒤져도 못 찾았다고 한다. 저녁 늦게 상훈이 형이 들어왔다.
“너 여자 친구 명품 가방 들고 나왔더라!”
“아!”
“내 가방이랑 같더라고. 근데 아무리 찾아도 없네.”
“어, 그거 엄마 껀데. 안 쓰시는 건줄 알고 제가 여자 친구 줬어요.”
이후 이야기는 차마 글로 옮기지 못하겠다. 다만 아들 가진 필자에게 흥분하면서 말한 상훈 엄마의 이 세 마디가 꽂혀 남아 있다.
“내 가방 훔쳐서 여자 친구 갖다 줄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야!”
“너무 화가 나는데. 아들 잘 못 키운 맛을 제대로 봤어!”
“지들이 연애하는데 내가 왜 이런 맛(?)을 봐야 하냐고.”
이후 문자로 주고받은 내용이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처벌(?)했다고.

아들은 친구가 참 많다. 만나는 친구를 보면 그룹별 분류가 될 정도다. 가령 오늘은 중학교 친구, 내일은 고등학교 친구, 모레는 대학교 친구 또는 선배다. “그 다음은 누구냐?” 물어보면 교회 친구들이다. 심지어 아직 미혼인 목사님이나 전도사님과도 형, 동생 사이처럼 꽤 자주 만난다.
어떤 때보면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보다 더 사교모임(?)이 많아 정신없어 보인다. 저러다가 직장인이 되면 아들 얼굴 보기는 힘들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 ‘아들이 집이 싫거나, 필자가 싫어서 밖으로 도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좋게 말하면, 사람 좋아해 사교성이 좋은 것이고. 조금 삐딱하게 말하면 그냥 노는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여자 친구가 생겼다. 여자 친구는 직장인이다. 문제는 시간 많은 아들이 직장인 여자 친구를 배려해야 하고, 여자 친구가 시간이 날 때 마다 함께 한다. 그래서 매주 같은 날 하던 아들 알바가 매번 바뀐다. 이것이 ‘연애 전’과 ‘연애 후’의 큰 변화다. 이제 아들의 시간은 여자 친구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설명이 길었다. 대개 연애를 하면 연애세포가 생성되어 얼굴에 ‘사랑 꽃’이 핀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연애의 맛’을 제대로 못 본 사람들의 환상일까? 아무튼 아들 얼굴은 연애 전보다 더 시들었다. 많이 지쳐 보인다. 그만큼 연애에 쏟는 시간과 정성이 대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연애도 음식처럼 제대로 만든 맛을 내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해 보인다.
이것이 연애의 맛이 아닐지. 그런데 그 연애의 맛은 당사자만 맛보면 좋은데 그렇지만 않다. 필자가 바라던 바라지 않던 함께 본다는 것이다. 가령, 가족 모임과 행사 날짜를 결정할 때 아들은 여자 친구 일정을 먼저 알아본다. SNS 프로필 사진도 여자 친구다. 아들하고 문자를 주고받다가도 순간순간 놀란다. 지금 내가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지 싶다.
미세먼지 경보가 있던 날이다.
“미세먼지가 심하니 마스크를 꼭 착용해라.”
“네 엄마”
“엄마! 마스크 새것 하나 더 있어요?”
“왜?”
“여자 친구 주려고요”
“...”
‘이건 뭐지?’ 묘한 생각이 들었다. ‘있다고 해야 하나, 없다고 해야 하나’ 순간 머리를 얼마나 굴렸는지 모른다. 그래도 필자는 무심한 척 하지만 마음이 좀 넓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 엄마 책상 위에 있어. 갖고 가”
“네, 엄마 고마워요!”
새 마스크를 손에 들고 좋다고 뛰어 나간다. 아들 뒷모습을 보며 필자는 혼자 궁시렁 댔다.
“저 놈 보소. 지가 돈 주고 사지. 내 걸 갖고 가네...”
그래도 필자는 상훈이 엄마 상황에 비하면 ‘새 발의 피’ 다. 명품 가방과 미세먼지 마스크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솔직히 “이게 시작인가” 싶어 걱정이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들은 필자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워낙 ‘내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 성격인 필자. 즉 후한이 두려워서라도 ‘엄마의 물건’을 함부로 갖다 바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위로해 본다. (실은 혹시 몰라서 장롱을 열쇠로 잠그고 그 열쇠도 감추긴 했다!)
“연애의 맛은 니들끼리 봐라. 제발!” Ⓒ이지수201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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