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실칼럼] 새해, 명품자존감 디자인
2019년 새해, 한 뼘 더 행복해지려면

행복은 자신의 잘못된 착각을 버리면 버릴수록 가까워진다. 누구나 착각 속에 산다. 학창 시절 한 친구는 언제나 전교 1등을 도맡아 했다. 성적이 그렇게 좋으면 성격은 좀 모나도 될 것 같은데, 그녀는 성격까지 다정다감했다.
그러니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건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을 수밖에. 요즘 말로 엄친녀인 셈이다. 엄친녀는 결혼도 잘해 신랑과 알콩달콩 잘 살았는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애 아빠도 머리가 좋고 나도 머리가 좋은데, 얜 누굴 닮아서 공부를 못하는지 모르겠어. 진짜 속상해 죽겠어”
“공부를 못해? 몇 등이나 하는데?”
“전교 3등”
그 말을 듣는 순간 친구가 안타까워 보였다. 친구의 기준에서 전교 1등이 아니면 공부를 못하는 거였다. 자기는 학창 시절에 전교 1등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는데, 왜 자기 뱃속에서 나온 아이는 그걸 못해내는지 이해가 안 된단다.
자신은 완벽한 사람이라는 착각, 더불어 내 자식 역시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 또한 부모만의 착각이다. 이런 착각을 버린다면 그녀의 새해는 작년보다 조금은 더 행복에 가까워질텐데…

돈이 더 많다면 행복할까?

행복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볼 만한 일화 중 알렉산더 대왕과 철학자 디오게네스와의 만남에 관한 게 있다.
알렉산더대왕은 알다시피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대제국의 왕이다. 당연히 무소불위를 권력을 가진 자였다. 하지만 이런 대왕을 소 닭 보듯 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가난한 철학자 디오게네스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 정벌 후 고국으로 돌아오자 모든 학자들이 그를 알현하기 찾아와 고개를 조아렸으나, 단 한 사람 디오게네스만은 그러질 않았다. 그러자 대왕은 직접 그를 찾아갔다. 그때 디오게네스는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난 알렉산더 대왕이다. 뭔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 내가 그대를 도와주겠다”


왜 막연한 행복을 기다리는가?


디오게네스는 큰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데, 다만 옆으로 약간 비켜 서 주겠소? 당신이 지금 내 태양을 가로막고 있잖소? 난 보다시피 일광욕 중이오.”
모든 걸 다 가진 걸로 착각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순간 디오게네스 앞에서 자신이 걸인처럼 느껴졌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데, 나는 온 세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욕심을 내고 있구나.’
“나도 당신처럼 만족한 삶을 살고 싶소.”
대왕이 말하자 디오게네스가 답했다.
“그럼 이리 와서 벌거벗고 누워보시오. 미래를 잊고 과거를 떨쳐버리면, 그 어떤 것도 그대의 행복을 막지 않을테니.”
이 말을 듣고 알렉산더는 무슨 생각을 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대 말이 옳다. 그러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내가 승리자가 되었을 때, 내가 온 세계를 정복했을 대 그때 다시 와서 배우겠다. 그리고 이 강둑에, 그대 곁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오. 지금도 여기 누워서 편안해질 수 있는데, 왜 막연한 미래를 기다리는가?“
알렉산더는 이 심오한 말에 자신이야말로 욕망에 사로잡혀 행복을 버리고 있는 듯 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행복의 기준은 무지개처럼 다양하다

결국 알렉산더의 전 생애 동안 디오게네스의 망령은 그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지 못했고, 결국 죽을 때야 비로소 누구나 빈손이 되는 것을 깨달았다.
참 신기한 것은 알렉산더와 디오게네스는 같은 날 죽었는데, 알렉산더는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잃고 거지로 죽었고, 디오게네스는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그대로 가지고 죽음을 통찰하면서 황제로 죽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근거 없는 착각이다. 행복의 기준은 무지개처럼 다양하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준이 타인인가? 자신인가?

여성들이 많이 하는 착각 중의 하나는 명품 옷을 입거나 명품백을 들어야 자기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 남의 눈에 그럴듯하게 보일 거라고 착각한다.
어느 날 인터넷에 감동적인 글이 올라와 있었다. 한 네티즌이 올린 글이었다.
“우리 아내는 명품백 같은 걸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당신은 왜 명품백 타령을 안 해? 라고 물으니까 저희 아내가 하는 말이 ‘내가 명품인데, 굳이 명품백을 들 이유가 있을까?’였답니다. 아, 명품 같은 내 아내, 저는 오늘부터 이 보석을 진짜 존경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글쓴이의 아내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분명 당당하고 멋있는 여자일 거다.
명품백을 들어도 그게 명품인지 통 티가 안 나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명품백 안 걸쳐도 은은하게 빛나는 여자가 있다.

명품처럼 빛나게 만드는 사람들의 비밀

아는 동생 A는 오래간만에 명품백 하나를 장만했노라고 말했다. 백화점에서 맘에 드는 가방을 발견하고 어깨에 쓱 하고 매 보았는데, 제법 맵시가 나더란다. 하지만 가격표를 보고선 속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살까, 말까’
머릿속으로 복잡한 계산이 시작되었다.
월급과 카드값을 저울질하던 그녀. 그런데 그때 그녀가 짝사랑 중인 회사 동료 김대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에게 예뻐 보이고 싶은 맘이 쑥 올라오자, 용기가 불끈 솟았다.
“이 가방, 포장해주세요”
마침 다음날엔 사내 회식이 있었다. 그녀는 김대리 옆자리에 앉아 보란 듯이 백을 그와 그녀의 사이에 얌전히 내려놓았다.
그런데 짝사랑의 대상인 김대리가 ‘그 가방 짝퉁이죠?’라고 묻더란다.
아는 동생은 그 순간 자신이 짝퉁처럼 느껴졌고
자신 때문에 진짜 명품의 가치가 떨어진 것 같다며 괴로워했다.

명품 자존감을 먼저 장착하자

자존감의 부족이다. 자신의 모습에 늘 불만스러운 상태에서는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다. 우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스타일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패션코드를 찾아가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코드도 없이 무조건 명품만 걸친다고 해서 스타일이 사는 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스타일이란 비단옷이나 가방으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취향, 성격, 가치관 등 나를 나타내는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때 드러나는 컬러다. 나의 총체, 그것이 곧 스타일이란 뜻이다.
이렇게 자기 컬러를 찾은 사람들은 옷이나 신발, 가방을 고를 때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게 어떤 건지 정확히 알고 있다. 명품관이 아닌 시장 골목에서도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 티셔츠 한 장을 고를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떨 때 빛이 나는지 잘 아는 그들은 당연히 행동이나 말투도 자연스럽고 당당하다. 그런 사람들은 무엇을 입거나 걸쳐도 스스로 빛이 난다.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스타일 찾기

자기 스타일이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다 단점과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면서 자기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 스타일이 없는 사람은 아직 찾으려는 노력을 덜 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이다.
나이 들수록 멋스러운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한결같이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지 않던가.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온 시간과 자신이 자신다운 것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다.
은은하면서도 튀지 않는 품격이 있는 사람들, 그래서 뭘 입어도 늘 맞춤옷처럼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스타일이 느낌이 있기에 빛이 난다.
그 근본적인 스타일은 바로 내면 깊숙이 중심을 잡고 있는 빛나는 자존감 영향이다. 남을 질투할 시간에 자신에 대한 믿음의 씨앗을 키워보자. 우리 모두는 움츠리기보다 활짝 피어나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새해 계획에는 명품을 사는 것보다는 자존감을 높여서 자신을 명품으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박영실칼럼] 새해, 명품자존감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