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모 방송사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제목이다. 쌍둥이로 태어난 형은 판사로 동생은 자손이 없는 친척 집으로 입양이 되어 부랑자로 살다가, 자리를 비운 형의 자리를 대신해서 판사 시보(試補)인 여주인공과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내용이다.

명리(命理)에서 쌍둥이의 사주는 비록 같은 시간대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각각의 명국(命局)은 엄연히 다르다. 먼저 태어난 선동(先童) 이는 자기 시(時)에 맞게 사용되며 후동(後童) 이는 다음 시(時)에 해당된다. 따라서 쌍둥이라 하더라도 서로의 삶은 당연히 다르기 마련이다.

드라마 말미에 어머니는 친척 집으로 입양을 보낸 작은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저 집안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너를 보낸 것뿐이니 어머니의 무지함을 탓하고 용서를 구하며 아들의 마음 상처를 달랜다.

# 남보다는 조금 늦게 쌍둥이 자녀를 본 어머니가 있다. 자신과는 성향이 너무나도 다른 첫째의 성격과 더불어 학업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대부분의 어머니가 그러하듯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라 성격 또한 유사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방식으로 키우다 보면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 자녀들의 성향도 같을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규정과 원칙 그리고 명분이 뚜렷한 성향이었다. 나이가 들어 어렵게 자녀를 둔 탓인지 모든 일의 일 순위도 당연히 자녀였다. 자신과 코드가 맞는 아이는 둘째인데 사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순종하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지시하면 따라오고 강요하지 않더라고 눈치껏 알아서 공부를 한다. 비슷한 명국(命局)의 유사성이 보여주는 어머니와의 좋은 궁합(宮合)의 예이다.

그러나 첫째는 이야기가 다르다. 큰 아이와의 다름은 어머니를 고민하게 한다. 행동으로 표현되는 어머니의 성격과 별개로 명국(命局)에 나타나는 오행 자리를 살폈을 때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자녀 자리가 약(弱) 하다는 것이다. 약(弱) 하다는 말은 부모로서 자녀를 다루는데 익숙하지 못하다는 말과 같다. 때때로 이러한 비(非) 익숙함은 반대로 타고난 자리의 익숙함을 더 고집(固執) 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다름을 알면 고민은 해결된다. 나름 심리(心理)와 명리(命理)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였지만 정작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도 내려놓지를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 의사이자 심리학자이면서 프로이트 제자로 더 유명한 칼 융은 주역(周易)을 연구하였다고 한다. 인간의 성격을 8가지로 분류한 성격유형은 주역의 8괘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칼 융은 그의 저서에서 ‘운명이란 무의식이 정하는 삶의 방향’이라고 하였다. 무의식에서 비롯되는 마음과 성격(기질) 이 인간의 운명과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이 정하는 삶의 방향’이란 결국 개인의 행동 양식이 된다. 동양철학에서는 오행(五行)의 생(生)과 극(剋) 순행(順行)과 역행(逆行)으로 행동 양식이 나타난다. 순행하는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을 하지만 역행하는 사람은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사실 언급한 사례의 갈등은 이러한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명심보감에 ‘年月日時(년월일시) 該載定(해재정) 하니, 算來(산래) 由命(유명) 不由人(불유인)’이란 말이 있다. ‘운수는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에 분명히 정하여져 있으니, 헤아려 보면 명(命)은 사람으로 인하여 이루어지지 않고 타고난 운명(運命)에 있다’라는 말이다. 年月日時 該載定이란 타고난 정명(定命)을 의미한다. 정명은 팔자(八字)라는 단어가 만들어 내는 삶의 방정식을 말함이니 방정식은 주어진 변수(變數)에 의해 풀이 과정의 난이도가 결정된다.

드라마 속 전자(前者)의 이야기는 작가와 감독이라는 변수로 인하여 어머니의 용서와 아들의 이해로서 화해(和解)라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후자(後者)의 이야기는 그리 쉽게 마무리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쌍둥이 가족에게 변수는 바로 어머니 자신이기 때문이다.



여동재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