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종종 시비에 휘말릴 때가 있다. 사실 처음 시비의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상대가 자신에게 행한 언행인데, 그가 자신에게 막말을 했다거나, 비난을 했다거나, 거짓을 말했다거나, 무시하는 언행을 했다거나 등이다. 그래서 시비를 잠재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비가 붙은 그 처음 상황에서의 시발이 되는 그것! 에 주목하면 해결은 쉬워진다. 문제가 된 언행에 대해 사과하고 그 사과를 받아들이면 갈등은 오히려 쉽게 해소할 수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타이밍이다. 문제요인이 발생했을 때를 기점으로 최대한 빠른 시간에 그 문제 언행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 앞서 그 언행은 잘 못 되었다. 생각이 부족했다. 상처 받지 마시고 너그러이 용서해 달라’고 한다면 그 문제는 100%는 아니더라도 90%이상은 해소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신속하고 구체적으로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10%의 불편함은 남는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그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언행을 했을까? 내가 정말 그 사람이 말한 것처럼 하찮은 인간인가?’ 라는 생각들로 시작해서 그 언행을 한 사람의 외모, 능력, 추산되는 재산정도, 지위 등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자신의 자존감 정도에 따라 상대에게서 비난할 거리를 찾거나, 혹은 자신을 향한 비하거리를 찾는다. 물론 대부분의 갈등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미 갈등이 시작된 사람이라면 그러한 생각은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어 처음 상황의 단순성을 넘어 복수의 감정으로까지 스스로를 몰아갈 확률이 높아진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것도 자신을 방어하는 방식으로 집요하게 생각한다. 그 방어는 언어적, 심리적, 사회적 폭력으로 변질되어 끝내 처음 촉발된 그 감정을 집어 삼키고 나중의 감정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인식되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감정이 악화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외적 폭력으로 어떤 이들은 우울적 내적 폭력(자학)의 양상으로 나타기도 한다.

안희정과 김지은! 이들의 사건도 처음으로 돌아가면 지극히 단순한 한 가지 언행이 문제의 촉발제다. 법원의 선고문에 나타난 재판부의 예에서“피고인이 맥주를 들고 있는 피해자를 포옹하며 ‘외롭다 안아 달라’고 말했다. 이 행위를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라고 적시했다. 여기서 재판부가 ‘피의자 안희정의 언행이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것에 초점을 두고 시시비비를 따진 것 자체가 잘 못된 출발이다. 문제의 촉발 원인은 피의자 안희정이 피해자를 ‘포옹하며, 외롭다 안아 달라’고 한 바로 그 언행에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안, 김의 문제를 바라보는 재판부의 의도한 시각(?) 에 의문을 품게 된다.

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법관들의 딜레마는‘그들이 찾고자 하는 형태의 증거’에 치중하다가 본질을 왜곡한다는 점이다. 모든 갈등에는‘시작’이라는 것이 있다. 안희정은 왜? 자신의 여자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직원을 포옹했으며, 안희정은 왜? 자신의 여자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직원에게 “외롭다 안아 달라”고 말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며 핵심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의 시작에는 반드시 답도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희정의 죄가 확실한 것은 그가 선택한 언행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그것이 증거다.

그 언행 이후에 나오는 수많은 말들은 유희적 언어도단일 뿐이다. 그 문제의 언행 이후에 주고받는 언행들이야 말로 권력에 의한 위계적 행위를 입증하는 증거들이며, 안희정이 스스로의 과오를 덮기 위해 만들어 내는 왜곡된 내적 과장이며, 자신을 속이는 거짓된 지적 포장의 표현들일 뿐이다. 문제는‘내적 욕망’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김지은의 선택적 첫 행위가 지탄의 대상이며 갈등을 촉발시킨 요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성폭력이든, 직장 내 성희롱이든 여성의‘성적자기결정권에 자율적 선택을 부여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안희정이 혹은 피의자가 처음 그런 언행을 했을 때 김지은은 왜? 그런 행동을 선택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이 부분은 민감한 부분이다’라며 논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인간의 문제를 다룰 때‘대의’라는 명분을 중요시한다. 그 대의에 포함되는 혹은 대상이 되는 사람은 대부분 약자로 치부되는 사람들이다. 사실이 많은 부분들은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사례는 따로 다루더라도 지금 여기 이 문제에 집중한다면 안희정과 김지은 중에 강자와 약자를 판단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기준이 그들을 구분 짓는가? 하는 문제다.

왜? 왜? 김지은이 약자고 안희정이 강자일까?
아니면
왜? 안희정이 약자고 김지은이 강자일까?
그 강함과 약함은 누가 결정하는가?
그 강함과 약함이 항상 그렇게 강하고 약하다고 판단되어 지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다.
권력을 가지면 모두 강자인가? 피고용인은 무조건 약자인가?
성적자기결정권 앞에서도 이 공식은 항상 공정한가?
위계에 의한 성폭력?
혹시
김지은이 약자의 위치를 선택해서 안희정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싶었다면 어떻게 되지?

이런 문제로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면 문제는 본질을 흐릴 확률이 높아진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문제의 핵심은 안희정의 언행에 집중하는 것이다.‘안희정이 비서를 안고 외롭다고 말한 그 순간’이미 성폭력은 자행되었고 성폭행 범이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성폭력 특례법에 명시 된 대로‘타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안희정은 김지은을 포옹했고 김지은이 그 상황에 대해 불편한 기억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희정은 성폭행 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