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몸에 맞는 옷이 입기에 편하다. 자기 발걸음이 걷기에 편하다. 자기 안경이 보기에 편하다. 한데도 인간은 늘 남을 엿보며 산다. 남의 옷이 좋아 보이고, 남의 발걸음이 편해 보이고, 남의 안경이 멋져 보인다. 남의 떡은 언제나 크고 맛있어 보인다. 남의 것이 커보이면 내 것은 절로 작아진다. 여기서 불행이 자라난다.

전국시대 조나라 사상가 공손룡(公孫龍)은 언변이 뛰어나고 자의식이 강했다. 자신을 천하제일의 논객으로 자처한 그는 탁월한 변론으로 뭇사람들을 궁지로 몰았다. 그런 그에게 장자는 눈엣가시였다. 사람들의 입에 장자가 오르내리는 게 영 불편했다. 어느 날 위나라 공자 모(牟)를 찾아가 속마음을 털어놨다. “저는 어려서부터 선왕의 도를 배우고 자라서 인의에 밝습니다. 수많은 논객을 곤혹스럽게 하고 궁지로도 몰아넣었지요. 한데 장자 얘기를 들으면 좀 멍해집니다. 저의 논변과 지식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때문인지요.”

의도를 꿴 모가 우물 안 개구리, 좁은 빨대 구멍으로 세상을 보려는 자의 비유를 들며 그를 나무란 뒤 얘기 하나를 들려줬다. “자네는 조나라 수도 한단(邯鄲)에서 그곳 걸음걸이를 배우려던 시골 사람 얘기를 들어봤는가. 한단 걸음걸이를 채 익히기도 전에 고향 걸음걸이를 잊어버려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얘기 말일세. 자네가 이곳을 바로 떠나지 않으면 장자의 큰 지혜도 배우지 못하고 자네의 지혜마저 잊어버릴 걸세.” 공손룡은 모의 말을 듣고 황급히 조나라로 돌아왔다. 《장자》추수편에 나오는 얘기다.

한단의 걸음걸이, 한단지보(邯鄲之步)는 자신의 분수를 잊고 남만 따라하는 어리석음을 뜻한다. ‘맵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우리 속담과 뜻이 같다. “들보로 성벽을 부수지만 구멍을 막을 수는 없다. 크기가 다른 까닭이다. 천리마는 하루 천길을 달리지만 쥐를 잡는 데는 고양이만 못하다. 재주가 다른 까닭이다. 올빼미는 밤에는 벼룩도 잡지만 대낮에는 태산도 보지 못한다. 본성이 다른 까닭이다.” 역시 추수편에 나오는 이 구절은 ‘닮지 말고 답게 살라’는 장자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는다.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히는 월나라 서시(西施)가 자주 눈을 찌푸리는 것(顰 目)을 아름답게 본 동네의 못난 아낙들이 너도나도 눈을 찌푸리고 다녔다는 서시빈목(西施顰 目) 또한 줏대 없는 인간들을 겨냥한다. 효빈(效顰) 도 뜻이 같다. 자기를 잃으면 남의 단점조차도 장점으로 착각해 흉내내고 우쭐해한다.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분주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처지가 딱하다. 그중 남의 걸음걸이에 자기 보조를 맞추는 자의 처지가 가장 딱하다”고 했다. 프랑스 정신 분석가 자크 라캉은 “인간은 남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꼬집었다.

남의 것만을 탐하면 소중한 자신의 것을 잃는다. 새로운 것만 탐하면 오래된 것의 의미를 잊는다. 남의 발걸음으로 걸으면 수시로 비틀댄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다르니 삶이고, 다르니 인간이다. 미국의 재즈피아노 연주자 델로니어스 몽크는 “천재는 가장 자기 자신다운 사람”이라고 했다. 천재가 아니더라도 자기 색깔로 사는 삶이 아름답다. 남과 같아지기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당신답게 사는 데 그 시간을 써라.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작가/시인
[바람난 고사성어] 한단지보(邯鄲之步)-남의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