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정치적 견해는 이성적 판단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일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나 논쟁을 보면 이게 단순한 시각의 차이는 아닐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보수와 진보는 소통이 잘 되질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정치적인 견해가 고도의 이성적 작용인 것 같지만 실은 아주 원초적인 본능적 반응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적인 사람과 진보적인 사람으로 가장 극적으로 나뉘도록 하는 기준은 위협에 대한 민감도입니다.

2008년 과학학술지 싸이언스(Science를 "싸"이언스라고 발음하면 "사"이언스라고 쓰지 말고 싸이언스라고 쓰는게 올바론 표기법!!!) 321호 5896호에 실린 "정치적 태도는 생리적 특질에 따라 다르다 (Political attitudes vary with physiological traits)"란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진보적인 사람보다 생리적으로 반응하는 위협민감도가 높다고 합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생리적인 수준에서 측정한 결과입니다. 

이 연구는 2012년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설명하는데 어느정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북한의 위협에 놓여 있습니다. 실질적인 무력충돌이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전면적인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이 북한의 위협은 정말로 심각한 위협일까요, 아닐까요?

싸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북한의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보수적 정치견해를 갖고, 북한의 위협에 덜 민감한 사람들이 진보적 견해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위협의 실체에 대해 양측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반응은 이성적 분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생리적 수준의 본능적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생리적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해 심각하게 느끼는 사람에게, "그것 그렇게 심각한 것 아니야"라고 아무리 자료과 근거를 제시한다고 그 위협에 대한 우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생리적으로 북한 위협 별거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에게 "그거 정말 심각해"라고 아무리 자료와 근거를 제시한다고 그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일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영원히 보수와 진보의 피곤한 이념논쟁에 시달려야 하는 것일까요? 아마도요. 북한의 위협이 없어진다고 해서 위협적이라고 여길만한 요인이 세상에서 완전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다만 논쟁을 하더라도 피곤하지는 않게 할 수는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우선, 서로의 차이가 본능적인 수준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지하고 이해하는게 필요합니다. 둘째, 사회를 꾸려가는데는 보수와 진보 모두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일 우리 사회에 보수적인 사람들로만 가득차 있다면, 우리 사회는 위협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고, 그만큼 우리는 보다 생산적인 부문에 쓸 자원을 위협에 대응하는데 쓰겠지요. 반면 진보적인 사람들로만 가득차 있다면, 위협에 둔감해진 나머지 어느 순간 우리 사회를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즉, 보수와 진보는 모두 상대를 "죽일 놈" 취급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각각 볼 수 있는 다른 눈을 갖고 있기에, 서로 의지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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