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그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왜 이번엔 안 주는 거지요? 서운해요….”

“못 된 사람이군, 주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주질 않던가…”



뭔가를 줘도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슨 베짱일까?

주고 또 주면 고마워하기 보다 단 한번 주지 않은 것에 서운해 하고 나아가서 상대에 대해 기분까지 나빠지는건 그만큼 받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는 500원씩 나눠줬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앞에서 꾸벅 인사를 하며 고마워했다. 다음날에도 할아버지는 만난 아이들에게 500원을 나눠줬다.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만나면 500원을 받을 수 있다고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아이들이 귀엽고 재미나서 또 500원씩 나눠줬다. 일주일이 지나자 아이들은 3명에서 5명으로 늘어나고 다시 20명까지 늘어났다.



맨 처음에는 몇 푼 되지 않은 돈으로 아이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할아버지는 이제 모든 아이들에게 500원씩을 나눠주기 힘들어졌다. 이젠 푼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할아버지에게 500원을 받기 위해 모였고, 돈을 받지 못하자 왜 안주냐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들은 오히려 할아버지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결국 놀이터에 나가는 것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 고마웠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받는걸 당연시 했던 아이들은 나쁜 아이들일까?

아니다. 아이들은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대가 없이 받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린 대가를 치뤄야만 그에 해당하는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웃기지 않은 사실이 또 있다. 그건 몇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것 보다 오히려 더 많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똥배짱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성과를 내야 하지만 겨우 제 역할만 수행하는데 급급하면서도 더 많은걸 바란다. 땀 흘리지 않고 받기만 하려고 한다.



직장인들이 그렇고, 공무원들도 그렇고, 정치인들도 그렇다. 해주기 보다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가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 기업도 돌아가고, 나라도 돌아간다. 사실 그 몇몇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돌아간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무임승차하고 있다. 그것도 뻔뻔하게 받을 것만 생각하면서 말이다. 익숙해짐에서 벗어나야 한다. 받아야 하는 익숙해짐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고 받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도 그렇다. 나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식사때 마다 준비해 주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모르고, 조금만 늦어도 아빠를 걱정해 주고 퇴근하고 들어오면 반갑게 맞는 딸의 미소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식사시간이 조금 늦어도 투덜대고, 딸아이가 인사하고 미소짓지 않으면 서운해 한다.

나부터 바꿔야 겠다. 나부터 바꿔지면 혹시 세상도 바뀌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갖고 말이다.

우리 모두 그 동안 알게 모르게 만연했던 ‘당연하지’라는 악성 바이러스에 ‘고마워요’라는 백신을 맞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