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워져서

등불 켤 무렵

벚꽃이 지네.

(人戀し燈ともしころをさくらちる)

                        -가야 시라오




두 사람의 운명이여

그 사이에 핀

벚꽃이런가.

(命二つの中に生きたゐ櫻哉)

                       -마쓰오 바쇼




밤에 핀 벚꽃

오늘 또한 옛날이

되어버렸네.

(夕ざくらけふも昔に成りにけり)

                  -고바야시 잇사




일본인에게 제일 사랑받는 꽃이 벚꽃이다. 고대 나라(奈良) 시대에는 매화가 최고로 꼽혔지만 헤이안(平安·현재의 교토) 시대부터는 벚꽃이 1위로 부상했다. 귀족들은 교토 곳곳에 벚꽃나무를 심어놓고 밤낮으로 즐겼다.

이때까지는 벚꽃이 새봄을 상징하는 처녀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극심한 내전으로 사무라이들이 득세하면서 벚꽃에는 피 냄새가 배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피고 순식간에 지는 벚꽃은 무사들에게 아름다운 삶과 죽음의 상징이었다. 가난한 서민들은 벚꽃나무 아래서 먹고 마시고 춤추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것이 일본식 벚꽃놀이의 시작이다.

가야 시라오의 ‘그대 그리워져서/ 등불 켤 무렵/ 벚꽃이 지네’는 사무치는 그리움과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노래한 하이쿠다. 봄날 긴 하루가 저물고 어둠이 깔리려 하는데 그대 생각이 간절하다. 집에 불을 켜려다 밖으로 나와 보니 어슴푸레 남은 저녁놀 사이로 벚꽃이 떨어지고 있다.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애틋하지만 만날 수도 없다.

어려운 표현이 없어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지만 깊이 있는 내면의 파동을 담아낸 수작이다. 중년의 우수와 아쉬움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마쓰오 바쇼의 시 ‘두 사람의 운명이여/ 그 사이에 핀/ 벚꽃이런가’도 가슴을 아릿하게 한다. 둘은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사랑했던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고 운명처럼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둘 사이에 핀 벚꽃은 수많은 사연과 운명의 나이테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더 애잔하다.

고바야시 잇사의 시도 그렇다. ‘밤에 핀 벚꽃/ 오늘 또한 옛날이/ 되어버렸네’는 삽시간에 지는 벚꽃과 인생의 시간대를 중첩시킨 시다. 그의 표현대로 벚꽃이 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오늘 핀 꽃이 내일이면 벌써 옛날이다. 지금 눈앞의 꽃도 돌아서면 추억이 돼버린다. 밤에 핀 벚꽃은 더 그렇다. 짧은 봄날과 더 짧은 벚꽃. 그 찰나의 삶이 꽃의 일생이기도 하다.

하이쿠는 동음이의어를 활용하거나 재미난 비유를 통해 고상한 정통 문학의 세계를 패러디하기도 한다. 초창기 하이쿠 시인 아라키다 모리타케의 ‘꽃(하나) 보다도/ 코(하나)에 있었구나/ 벚꽃 향기는’이란 시가 대표적이다. 꽃의 시각과 코의 후각을 아우르는 감각이 재미있다.

일본 벚꽃 명소 1위는 도쿄의 스미다 공원이다. 야스쿠니 신사 옆의 지도리가후치 공원을 비롯해 주쿠교엔, 메구로가와, 교토의 다이고지도 인기다. 해마다 봄이면 일본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행객들의 마음이 이곳에서 함께 일렁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