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하면 생각하는 것이 뭘까. 화려한 무대에 멋진 무선 마이크를 귀에 꽂고 발표를 마치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는 장면이 그 중 하나일 것 같다. 스타트업 붐을 일으키고 자신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의미가 있는 게 맞다. 발표를 마친 이들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더 잘하게 되고 자신감도 붙고 수상도 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감격에 차고는 한다. 좋은 PR이 되기도 하여 좋다. 특히 그게 해외무대면 더욱더 멋져 보인다. 글로벌 하면 뭔가 좋아 보인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고 스스로 감격하기도 하는 모습들을 많이 봐왔다. 그리고 영어 피칭을 전문적으로 훈련시키고 이를 위한 해외 프로그램들도 많이 진행을 해오는 기관들을 보아왔다.

그런데 영어 피칭을 죽어라고 연습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피칭을 하면 할수록 영어 피칭 실력이 늘어가는 모습들이 보이고 자신감 붙는 것도 다 좋은데 다들 착각들을 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어 피칭 연습들은 영어로 하는 피칭 능력만 향상되는 것이지 그들이 발표하는 내용에서는 큰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즉 영어 피칭 연습을 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전달할 것인지가 당연히 제일 중요한데 뭔가 영어 말하기 대회처럼 되가는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다. 2016년에 유럽으로 가서 현지에서 진행한 영어 피칭 연습 및 코칭 등을 진행한 한 기관이 기억난다. 며칠간 누군지도 잘 모르겠는 현지인들의 멘토링과 코칭을 받으면서 영어 피칭을 연습한 한국 스타트업들이 프로그램 마지막 날 현지 투자가들 앞에서 피칭을 했다. 그런데 제3자로서 전체 프로그램을 지켜보니 사실 첫날이나 마지막날이나 영어 피칭 내용 자체가 별로 달라진게 없다. 즉 영어 발표력은 당연히 연습을 하니 조금 나아진 게 맞지만 수익모델이라든가 스타트업이 팔려고 하는 서비스나 제품 등에 대한 내용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고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영어 발표하는 능력 키우려고 몇 천만원씩 쓰면서들 온 건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어피칭을 잘 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품이나 서비스가 얼마나 혁신적인지와 시장성이 있는지 그리고 수익모델 및 영업 전략 등이 핵심일 것 같은데 그런 건 향상된 부분이 전혀 없고 다들 영어 발표 연습들만 하고 가는 느낌이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당일에 온 소위 ‘현지 VC 투자가들’이었다. 양복과 양장을 입은 현지 백인들이 왔는데 이날 발표하던 한국 스타트업들은 모두 이들이 현지 VC 투자가들인 것으로 믿고 혼신의 힘을 다해 발표했다. 그런데 나중에 명함들을 주고 받으면서 보니까 실제 VC 투자가는 없었다. 그러면 도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하고 명함들을 자세히 보니 현지 스타트업들이거나 혹은 현지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진행하는 현지 직원들의 지인이거나 친구거나 하였는데 사실 스타트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는 현지 투자가들앞에서 한국 스타트업들이 영어 피칭을 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는 내용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기사가 난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해외사업 파트너들이나 투자가들을 만날 때 영어로 피칭조차 제대로 안된다면 말도 안되는 상황인 것은 당연하다. 다만 상식적으로 아무리 해외사업에 대한 경험이 없는 스타트업이라 할지라도 영어 피칭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하여 해외사업이 잘 될 거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따라서 해외 프로그램에 참가하더라도 단순히 영어 피칭에 대한 연습 정도로 멈추는 수준이라면 문제가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제품과 서비스, 기술 등이 정말 유료가치가 있는지 등을 고려해서 시장에서의 상품성을 더욱 올려가는 게 중요하다. 해외에 나가서 영어 피칭 교육을 받고 현지의 누군지도 정확히 모를 자칭 ‘전문가들’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정도로는 해외 사업에 대한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설사 뛰어난 해외 멘토를 만났다고 해도 피보팅(pivoting)을 할 수가 없거나 더 나은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거나 한 게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지를 고민해보길 권하고 싶다.

해외 투자가를 만나더라도 사실 본인이 가진 사업의 수익성이 없거나 당장 매출이 없거나 한 것으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스타트업들 중 일부는 늘 아직 매출이 일어나고 있지 않아서 투자를 못 받는다고 불평을 하는데 투자가들이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닌 경우가 많다. 투자를 못 받는 건 지금 당장 수익이 없거나 매출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익성이나 시장성이 향후 안 보이기 때문인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누가 봐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고 생각이 드는 기술이나 제품, 서비스를 갖고 있다면 해외 투자가들은 곧바로 인지를 한다. 왜냐하면 사업성이 있으니까 말이다. 올해 적자가 났는가 흑자가 났는가를 따지는 투자가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보다는 이 사업으로 돈을 정말 벌 수 있겠는가를 점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투자가들에게는 큰 매력이 있다. 대체로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안 보이기 때문인 것이고 혹은 스타트업 당사자가 제대로 설득을 못 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돈을 못 벌 것 같은데 투자를 할 리가 없지 않나. 해외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 정말 수익이 될 것 같고 사업이 될 것 같으면 영어 피칭을 잘 했냐 못 했냐가 아니라 해당 사업의 제품이나 서비스, 기술 등을 보고 판단을 할 것이고 즉각 투자 결정을 할 것이다. 따라서 영어 피칭 연습에 심혈을 기울일 시간보다는 정말 돈 벌 연구를 하고 시장성을 높이고 매출을 올리고 수익을 올릴 비즈니스 모델과 마케팅 전략 개발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

해외 투자가뿐만 아니라 현지 파트너들과 만날 때도 마찬가지이다. 대기업과 협업을 위해 만날 때도 마찬가지이다. 외부에서 해외 사업에 대한 준비를 시켜준다는 식으로 접근해오는 민간 액셀러레이터들이나 회사들을 보면 대체로 영어 피칭덱 및 피칭 연습을 시키는 것으로 많이들 준비해오고 심지어 영어권 원어민이 영어피칭을 더 잘 가르칠 것처럼 얘기해오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영어 자체만은 원어민이 가장 잘 지도하겠지만 그 원어민이 시장 전문가나 사업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는 한 비즈니스 모델이나 수익 모델, 마케팅 전략 등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떤 ‘멘토링’을 할 수 있을지 잘 고민해봐야 한다. 민간 액셀러레이터들 중에서도 해외 사업 하면 무조건 영어 피칭 지도를 하는 것으로 많이 기울고 프레젠테이션 수정해주는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사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들이 영어 좀 하면서 영어 피칭을 지도하는 것을 보면 너무 시간 낭비가 많고 돈 낭비가 많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단순하게 해서 해외 사업에 대한 준비가 될 리가 만무하다.

본인이 가진 제품이나 서비스, 기술이 시장성이 전혀 없고 유료화 될 가능성이 없고 돈을 벌 가능성이 없다면 그리고 사업성 자체가 없다면 영어 피칭을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달라질 게 있을까 자문해보면 좋겠다. 따라서 해외 프로그램을 맹목적으로 쫓아다니지 말고 기회비용을 생각하여 더 집중해야할 부분이 무엇인지 본인의 사업을 견고하게 할 수 있는 게 뭔지를 고민해야 한다. 피상적인 준비로 해외 사업을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위험한 듯 하다. 실질적인 사업은 결국 돈 버는 것 아닌지 고민해보길 바란다. 화려한 무대에서 박수갈채를 받는 것과 실제 돈 버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했으면 한다.

백세현

현) 스타트업 자문위원

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글로벌2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