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백 속에 들어 있는 물건 가운데 진짜 보물은 웨지라는 사실을.
(퍼터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뱁새 생각은 조금 다르다)
뱁새는 골프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라이버 비거리를 제법 낼 줄 알게 됐다.
뱁새 드라이버 샷은 슬라이스가 나는데도 상당히 멀리 나갔다.
뱁새는 드라이버 샷을 할 때 한참 왼쪽을 겨냥하고 쳐서 볼이 부메랑이 날듯이 휘어 페어웨이에 떨어지게 하는 꾀를 내곤 했다.
그래서 얼마남지 않은 두번째 샷(파4 기준)은 짧은 아이언이나 웨지로 온 그린 하는 일이 많았다.
실력이 조금 늘면서 열여덟 홀 가운데 열일곱 번 레귤러 온을 시킨 일도 있을 정도다.
(그날 점수는 당연히 언더파였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면 안 된다. 열 일곱번의 찬스에서 버디는 하나도 못하고 딱 한 번 레귤러 온 못한 홀에서 칩샷 실수로 보기를 해서 1오버파를 쳤다. 흑흑)
그러니 그린 주변에서 웨지를 쓸 일이 별로 없었다.
(물론 70m 이상 장거리 웨지샷은 부지기수로 했지만)
당연히 그린 사이드 칩샷이나 피칭샷 벙커샷 따위는 연습도 거의 하지 않았고 칠 줄도 몰랐다.
막상 그런 샷을 만나면 운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뱁새는 어찌어찌 해서 첫 싱글을 기록하고 또 어찌어찌 해서 첫 언더파를 칠 수 있었다.
물론 화이트 티에서.
(꼭 은근슬쩍 자기 자랑을 하더라. 헉)
그리고 나자 한 칸 뒤로 가서 블루티에서 치는 일이 많아졌다.
드라이버는 오른쪽으로 휘고 롱아이언은 서툴고 그린 주변 플레이는 점병이인 뱁새가 말이다.
처음에는 내기 골프를 할 때 동반자들이 등을 떠밀어서 할 수 없이 블루티로 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뱁새가 도전 삼아 제 발로 가기도 했다.
블루티로 올라가자 뱁새가 레귤러 온 하는 비율은 현격하게 줄었다.
대여섯 홀 혹은 예닐곱 홀은 레귤러 온을 할 수 없었다.
롱 아이언을 잘 다루지 못하니 조금 긴 파4나 파3 홀을 만나면 부담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바로 그린 주변 플레이를 연습했냐고?
(뱁새가 그렇게 지혜 있었으면 고생을 덜 했게?)
티잉 그라운드 한 칸 차이가 주는 벽을 절감하고 뱁새가 한 일은 바로 '롱아이언'을 죽어라고 연습하는 것이었다.
5번 이상 아이언을 연습 꽤나 한다고 했는데도 실전에서 시원하게 치기까지는 한참 걸렸다.
롱아이언 기량이 조금 늘면서 블루티에는 그럭저럭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다 블루티에서도 좋은 점수를 내자 ‘주제도 모르고’ 풀 백 티로 가는 일이 가끔씩 생겼다.
(블랙티 혹은 챔피언티는 ‘빽티’라고 말해야 왠지 더 멀게 느껴진다는 사실. 흐흐)
호기롭게 올라서긴 했지만 그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롱아이언에 제법 자신이 붙었는데도 레귤러 온을 시키지 못하는 홀이 많았다.
온을 시켜도 ‘독도 온(겨우 온 그린 시켜서 홀까지 거리가 아주 많이 남은 경우를 말함)’인 경우가 많았고.
뱁새는 처음에는 롱아이언을 전보다 더 열심히 연습했다.
얼마나 무식하게 긴 채만 많이 휘둘렀는지 밤에 끙끙 앓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건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같은 일이었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도무지 점수가 나아지지 않았다.
분명 롱아이언 샷 기량은 늘어난 것 같은데도 말이다.
(저 잘났다고 배우지도 않고 혼자 엉터리로 연습했으니까 그랬겠지만)
그러다 '그린 주변 플레이를 연습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자 행운이었다.
그 전까지 뱁새 웨지 세 개(당시에는 52도와 56도 60도 웨지를 갖고 다녔다)는 밑바닥에 실기스 몇 가닥만 날 정도로 깨끗했다.
오히려 롱아이언 밑바닥이 더 많이 닳았다.
(지금 독자 여러분 웨지는 어떤가? 혹시 깨끗하다면 뱁새와 함께 반성해야 한다)
그래서 어느날부터는 웨지 3형제만 한 시간 내내 연습하는 일도 잦아졌다.
(뱁새가 그린 사이드 플레이를 연습한 것은 다음 회에)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ironsmithkim@gmail.com

제주도 모슬포 항에서 완도로 가는 바닷길. 작은 두려움을 줄 정도로 짙푸른 바닷물에 저절로 숨을 깊이 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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