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결정됐다는 언론기사를 보았다. 최초 신청자 경쟁률은 무려 3만6천대1 이었다. 그의 소감은 “지금 이 순간 너무나 행복합니다.”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최초, 유일’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가슴 떨리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일상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크고 작은 최초, 유일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다. 지금은 일상화가 되었지만 e-메일 도입 초기에 메일 주소를 명함에 기재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필자의 경우 소속 회사에서 최초로 명함에 e-메일주소를 기재했던 기억이 있다. 이 일이 회사 전체에 퍼져 직원들이 e-메일 계정도 만들었고 얼마 후 명함에 e-메일주소를 기재하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




회사 전체라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떤가, 우리 팀에서 최초로, 나의 역사에서 최초로 도전을 통해 얻는 작은 성공의 결실, 기쁨을 맛보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더 나아가 ‘최초’란 자신에게 삶의 긍정성을 돋우며 일상에서 충만한 자부심을 만끽 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기도 하다.




직장생활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 최초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사건들은 비일비재하다. 필자의 경우 직장에서 얻은 작은 최초의 기억들이 꽤 있다. 90년대 초반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소비자 중심의 국제규격 품질보증제도인 ISO 9000 시리즈 인증을 받기 시작했다. 필자는 이 프로젝트의 실무 책임자가 되어 총괄 진행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처음 접하는 일이라 낯설고 두려웠지만 열심히 준비하여 임무를 완수하게 되었다. 이 결과 조직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얻게 되었고, 사내에서도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광의의 개념에서 ‘일’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깨달은 소중한 기회였다.




직장에서 최초의 경험은 단지 기쁨을 주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 작은 최초들이 모여 작은 성공 체험을 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더 큰 성공을 가져다주는 지렛대 역할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도전의식이 체질화되어 처음 접하는 두려운 일이라도 과거의 성공체험으로 인해 과감하게 결행하는 의지력을 보이게 된다.




필자의 사례를 하나 더 언급하면 90년 초반 당시 국가표준인 한국산업규격(KS)은 일본산업규격(JIS)의 번역본 정도의 수준으로, 특히 한국 산업의 나가야 할 방향과 철학이 미비했다. 이런 현실을 목격하고 전체를 변화시키기는 힘들겠지만 작은 부분이나마 개선을 하고자 마음먹었다.




우선 정부기관의 관련 주무부서와 협의를 거쳐 필자의 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과 관련된 KS규격을 전면적으로 개정하는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동일 규격의 해외산업규격을 입수하여 번역을 하고 각 항목별로 국가별 대조표를 만들었다. 결국 수개월 작업 후 초안이 완성됐고 동종업체 관계자들의 협의와 기관승인을 거쳐 드디어 새로운 KS규격이 만들어 졌다. 기존의 일본식 산업규격에서 탈피하여 글로벌 표준의 철학과 방향을 담은 필자의 회사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감격스런 장면이었다. 이 일을 통해 주무기관 뿐만 아니라 동종업계에서도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확산이 된 계기가 되었다.




얼마 전 글로벌 투자전문가인 앙트완 반 아그마엘 이머징마켓매니지먼트 대표가 방한하여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적이 있다. 이 회사는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자문회사로, 아그마엘은 ‘이머징 마켓’이라는 용어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장본인이다.




1981년 뉴욕의 살로몬 브라더스 본사 강당에는 제이피 모건, 살로몬 브라더스 등 20~30명의 투자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뱅커스 트러스트 컴퍼니에서 은행원으로 시작해 10여 년간 아시아 경제와 기업을 집중 연구하던 앙트완 반 아그마엘은 그동안 준비한 ‘제3세계 사모펀드’에 대한 아이디어와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를 마치자 제이피 모건의 한 펀드매니저가 말했다. “흥미롭군요. 하지만 ‘제3세계 사모펀드’라는 타이틀로는 절대 장사를 할 수 없을 겁니다.”




아그마엘은 그의 지적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는 밤을 꼬박 새며, 새로운 용어, 새로운 콘셉트를 도출하기 위해 애썼다. 해가 떠오르자, 그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번쩍인 것이 있었다.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s)!” ‘제3세계’하면 왠지 침체되고 진부한 느낌을 주지만, ‘이머징 마켓’이라는 단어는 발전과 상승, 그리고 역동적인 느낌을 주었다. 아그마엘은 ‘이머징마켓 성장펀드’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으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의 일이다.




‘신흥 시장’이라고도 불리는 ‘이머징 마켓’이라는 용어는 이제는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경제용어가 되었다. 아그마엘의 도전과 용기가 없었다면 ‘이머징 마켓’이 지금처럼 21세기 지상 최대의 시장으로 급부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작더라도 최초의 성공사례를 만들어 보자. 작은 성공체험이 모여 크게 합치면 이렇게 세상을 바꾸는 역사의 주인공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출처) 머니투데이(2007.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