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자유계열 블로그 뉴스, 허핑턴 포스트(The Huffington Post)가 얼마 전 ‘죽기 전에 반드시 가야할 전 세계 50개 도시’를 게재했다. 2주도 안 걸려서, 백 만명의 페이스북 사용자가 ‘좋아요’를 누른 이 기사에는 이탈리아의 베니스, 스페인의 세빌리아, 중국의 라사(옛 티벳의 수도)와 같이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유서 깊은 도시와 미국의 뉴욕, 일본의 도쿄 등의 현대적인 대도시들을 볼 수 있다.

아쉽게 이 50개 도시 중에서 한국의 도시는 한 군데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일 년에 한번 해외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해당 50개 도시를 여행하는 데에만 50년이 걸릴 것이며 그 50년 동안, 전 세계 관광객들이 한국에 오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한국에 일본 교토와 같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도시가 없고, 싱가포르처럼 고층건물이 많은 대도시가 없어서일까? 지금 만약 당신에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어떤 도시로 갈 것인가?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옛 도시’이자, 오래된 항구 도시인 베트남의 호이안으로 떠날 것인가? 아니면, 거기가 거기인 한국의 어촌으로 갈 것인가?

브랜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브랜드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상점의 정체성 또는 상표로서 사용되었다. 1980년대의 세계화와 경쟁의 증가로 인해서 회사들은 브랜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브랜드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브랜드 전문가라고 하지만, 브랜드와 마케팅을 혼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브랜드란 브랜드를 대표하는 이름, 로고, 슬로건, 디자인과 같은 것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이미지와 아이디어의 집합체이다. 재화와 서비스를 대변하는 무형자산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인 브랜딩과 달리 마케팅은 재화와 서비스의 판매를 위한 촉진활동이다. 브랜딩과 마케팅은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 측정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본적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브랜딩 전문가들에게 매출 증가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무언가를 팔기 전, 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브랜딩인 셈이다.

이제는 재화와 서비스만 넘쳐나는 시대가 아니다. 저가항공시대의 도래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비용이 줄어들고, 여행의 도착지가 되는 도시들이 넘쳐나고 있다. 구두와 가방만이 아니라 여행을 가고 싶은, 심지어는 공부하고 싶고, 일하고 싶고, 살고 싶은 도시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이다. 때문에 많은 도시들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거주자와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그 사전 단계로 다른 도시들과 자신들의 도시를 차별화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도시를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하여 도시를 브랜딩하고 있다.
한국의 도시들, 브랜드처럼 매력적일 수 있을까?

<사진왼쪽부터 사진1.프랑스 파리 에펠타워, 사진2. 영국 런던 템즈 강의 타워 Photographed by 오하니>


2008년 파리는 2012년 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런던에 패배했다. 그 이유로 버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파리가 객관적인 ‘제품’(제안 자체)으로는 앞섰지만, 파리의 ‘브랜드 이미지’는 런던만큼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분석을 발표했다. 런던 시장의 경제 고문 존 로스는 세계적인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런던은 더 이상 파리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으며, 뉴욕을 이기기 위해 런던의 강점을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낭만적인 파리보다 창의적인 역동성이 느껴지는 런던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프랑스가 산업부문 브랜드로 ‘크리에이티브 프랑스(Creative France)’가 된 것은 어쩌면 이런 맥락을 기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국제 행사의 유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행사장과 같은 기능적인 하드웨어가 아니라, 도시 브랜드와 도시 이미지와 같은 무형의 자산에도 큰 비중이 있음을 이미 10년 전 세계는 깨달았다.
한국의 도시들, 브랜드처럼 매력적일 수 있을까?

<사진왼쪽부터 사진3.뉴욕시내에서 판매 중인 뉴욕시 슬로건 ‘아이러브뉴욕’티셔츠, 사진4.뉴욕시 별명 ‘빅애플’안에 들어간 슬로건 사진5.뉴욕시 타임스퀘어 야경. Photographed by 오하니>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도시 브랜딩이 필요하다.

당연한 이야기이건만, 유독 이 사실이 통하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사회이다. 이 말만 꺼내면, 한국 특히 관공서에서는 어렵다는 비관적인 답변만 돌아온다. 물론 안타깝게도 국가 예산 35~36억을 들여 만들고, 도입 1년만에 공식 폐기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Creative Korea)’라는 사례도 있다. 그런 쓰라린 기억을 제외하고도, 현재 관공서에서는 1년 단위 성과위주로만 예산이 집행되니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브랜딩이 어렵다. 브랜드란 기능적인 특징을 넘어서도, 그 정체성이 확립되는데에는 대중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1년 동안 출시된 수많은 상표 중에서 1년 안에 브랜드로 여겨지는 것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설령 1년 안에 브랜드가 되었다고 해도 그 브랜드를 사람들의 생활에서 브랜드로 살아나가게 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는데, 운이 좋아 히트친 제품들이 그 다음 해에도 브랜드로 살아있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단위의 계획만이 수립된다면 한국의 도시들이 사람들의 인식선 상에서 브랜드로 여겨지게 되기란 참으로 어려울지 싶다.

  1971년부터 전문가들과 함께 시작한 뉴욕의 도시 브랜딩,

1977아이러브뉴욕런칭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도시 브랜딩과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산타크루즈의 사회학 조교수인 미리암 그린버그는 1970년대의 뉴욕시는 파업, 재정 부실, 낙서 덮인 지하철에서 급증하는 범죄로 불안한 도시였다고 언급한다. 더욱이 유명한 영화 “미드나잇 카우보이” (1969), “택시 드라이버” (1976), “프렌치 커넥션” (1971) 속에서 범죄의 온상지로 그려지면서, 공포스럽고 위험한 도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1971년 ‘더 나은 뉴욕을 위한 협회(the Association for a Better New York)’에서는 뉴욕의 별명인 ‘빅애플’을 활용한 캠페인을 실시하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1977년, 뉴욕 주 상무부의 여행국은 필요한 조사를 (주)컨슈머 비헤이비어에 의뢰했다. 조사결과를 통해 최초 캠페인에 필요한 430만달러(한화 약 44억)를 얻어냈다. 다음 단계로 뉴욕의 광고 회사 웰스, 리치, 그린과 디자이너인 밀턴 글레이저에 프로젝트가 맡겨졌다. 그 결과, ‘아이러브뉴욕’ 캠페인이 수립되고, 로고가 디자인되었으며, (주)컨슈머 비헤이비어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TV 광고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활용하여 마케팅을 실시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아이러브뉴욕’스카프를 착용하기에 이르렀다. 마케팅 결과, 1971년부터 오늘날까지 도시 브랜딩과 마케팅을 실행하고 있는 뉴욕시의 경우 2002년에는 약 3,530만명,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던 2012년에는 약 5,280만명의 관광객(내국인과 외국인 합계, 2002년대비 약 50%증가)이 방문했다. 2012년 방문객이 뉴욕시에서 사용한 금액은 약 36.9조원에 이른다. 이는 같은 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약 29조원과 비교했을 때보다도 약 27%가 높다. 도시 브랜딩과 마케팅의 장기적인 혜택을 가늠해볼 수 있다.

  헬싱키, 에든버러, 홍콩 등은 최소 2년 이상 도시 브랜딩을 준비하다.

Skål 국제 헬싱키 조직의 대표이자 헬싱키 관광과 컨벤션의 마케팅 수장인 카리 할로넨은 2002년부터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의 브랜딩 연구를 시작했으며, 2004년 가을부터 컨설팅에 들어갔다고 밝힌다. 영국 에든버러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80만 파운드(한화 약14억)의 스코틀랜드 정부기금을 받아 2005년 5월에 ‘영감을 주는 수도 에든버러‘를 발표했다. 홍콩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브랜딩 작업을 진행하여, 홍콩을 ’아시아의 국제도시‘로 포지셔닝을 하였다. 비록 현재 한국사회에서 실현이 어렵다고 해도, 성공적인 브랜딩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피력하는 바이다.

  브랜딩과 브랜드 마케팅과 같은

무형자산에 제대로 된 지원이 필요하다.

얼마 전 국내의 한 도시에 새롭게 개장한 전망대에 올라간 적이 있다. 공중파 방송에서 인기몰이를 한 드라마 촬영지와 함께 수평선을 만끽할 수 있는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전망대층에 들어선 순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통유리로 만들어진 전망대 유리창의 반이 토지이용계획도와 사진들로 가려져 있었다. 통유리창을 통해 방문객들이 그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전경을 즐길 권리를 빼앗아간 것이다. 담당자님께 이 설치물은 없애는 것이 낫겠다고 제안을 드리니, 700만원을 들여 설치한 것이지만 똑같은 지적을 받아 곧 철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어떻게 전망대라는 구조물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방해하는 설치물을 만드는 곳에 예산을 집행할 수가 있었던 것일까?

브랜드가 결정되면 디자인 매뉴얼이 정리된다. 브랜드 정체성을 뒷받침해주는 스토리가 개발되고,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수립된다. 그에 따라 글과 사진, 영상 등 이미지에 대한 방안이 수립된다. 해당 사항들에 대한 밑그림 작업이 완성된 후에 게시판이든, 조형물이든 제작에 들어간다. 도시에 브랜드를 적용하는 경우에는 보다 정교한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 그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 기간을 건너뛰고 캐릭터는 캐릭터대로, 브랜드 로고 디자인은 디자인대로 별도로 움직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브랜드 정체성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이 도시의 매력을 전달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정리되기가 어렵다. 길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모르고, 지도도 없으니 일단 길부터 만드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무작정 길을 만들고 나서 보니 역시나 그 길이 아니니 이제는 열린 길을 닫기 위해 돈을 쓰게 되는 것이다. 무형 자산인 브랜드, 그리고 그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브랜딩과 정교한 마케팅 전략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관광객들에게 방해가 되는 유형의 게시물을 만드는 데에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지금의 의사결정자들에게는 쉬운 일인 듯 싶다. 그러나 설치하는 것도 비용이지만, 철거하는데에도 비용이 발생하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 모든 것은 세금으로 진행되니, 이런 의사결정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동안 한국에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0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지난 자료를 인용해보겠다. 2004년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전국 250여개 지자체 CI의 절반 이상이 교체 대상일 정도로 대부분의 지자체 CI는 촌스럽거나 특색 없는 것들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볼 수 있다. 2013년 4월 월간디자인은 200여개의 지자체 캐릭터를 모아서 분석한 결과, 품위 있는 문화유산의 감상을 방해하는 디자인이라고 평한 후 ‘지자체 캐릭터에게 필요한 것은 혹독한 구조 조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성공한 캐릭터,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도시를 브랜딩하는 트렌드에 편성하여 의미없는 슬로건과 캐릭터를 만들어내기만 했을 뿐이다. 단순히 상표의 이름과 로고를 만드는 것은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님을 정확하게 알아야만 한다.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전문가 집단에 의한 프로세스 점검없이 집행되었으니, 결국에는 집행된 예산만 낭비된 셈이다.

뉴욕시가 공을 들여 브랜딩을 하고, 다양한 촉진활동을 통해 50%의 관광객증가를 이룬 지난 10년 동안 한국, 그리고 한국의 도시들은 무엇을 한 것일까? 이미 도래한 지식산업시대, 우리는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지 다시금 짚어봐야할 때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일본의 일본정부관광국은 도쿄와 같은 대도시 이외에도 에노시마, 사이타마 등 작은 도시들의 이미지를 정리하고, 마케팅하고 있다. 브랜딩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사람들이 가고 싶게 마케팅을 하고 있다. 전 세계의 눈이 도쿄로 쏠리게 되는 그 때에 일본을 들렀다 잠시 여유를 내 한국을 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또는 죽기 전에 반드시 가야할 도시로 선정될 수 있을 만큼 한국의 도시들이 브랜딩되고, 마케팅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래야 10년이 지난 어느 날에는 한국의 도시들도 조금은 매력적이 되어 전라남도 진도, 경상남도 욕지도를 찾아가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오하니(Hani Oh)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향수 프로듀서
현) 한국법제정책연구회 도시정책컨설팅센터장
현) 한국향문화연구소 대표
현) 뷰티, 패션, F&B, 도시 등 다수의 브랜딩 및 컨설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전) 인큐 브랜드 이사
< 여우야, 뉴욕가자> 저자
뉴욕 패션스쿨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패션 머천다이징 매니지먼트 전공
뉴욕 F.I.T. 이미지 컨설팅 수료
프랑스 파리 퍼퓨머리 향수 제작 워크샵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