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담은 인간의 역사와 동행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습니다. 소담(笑談, 우스운 이야기)의 하위 갈래로서 통속문학 가운데서도 저급이지만 ‘날 것’ 그대로 전해지는 편수가 적은 탓에 지금은 보존 가치가 큰 문화 자산이 됐습니다. 옛날 서민들은 단내, 살내 나는 걸쭉한 입담에 한바탕 웃으며 시름을 달랬고요. 파한잡기(破閑雜記)에 탐닉했던 사대부들은 송세림의 ‘주장군전’(朱將軍傳), 성여학의 ‘관부인전’(灌夫人傳)을 즐겼습니다. 모두 남녀의 성기를 의인화, 희화했던 내밀한 이야기들이지요. 

# 관부인의 아버지는 영음후요, 어머니는 음려화(陰麗華)라,
본적은 옥문(玉門)으로 기산의 양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고운 자색과 발그레한 얼굴, 붉은 입술을 지니고 있었으며
성품 또한 따사하고 부드러웠다.
부인은 언제나 말이 적은 편이어서 입은 늘 다물고 살았다.
또한 비구니를 동경하여 월삭(月朔, 초하루)이 되면 반드시 흰 옷을 입고
불경을 열심히 외워서 음이 성나도록 빌었다.
- ‘관부인전’  부분

# 조선 시대 한 선비가 남명 조식 선생을 찾아가 물었다. “寶之와 刺之가 뭐하는 것입니까?” 남명이 그 말을 듣고 화를 내며 내쫓자 선비는 퇴계 이황 선생을 찾아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에 퇴계는 寶之는 ‘걸어다닐 때 숨어 있는 것. 보배처럼 귀하지만 사고파는 것은 아니다’(步藏之者 而寶而不市者也), 刺之는 ‘앉아 있을 때 숨어 있는 것. 사람을 찌르긴 하지만 죽이지는 않는다’(座藏之者 而刺而不兵者也)고 말했다. 이를 보고 선비는 남명보다 퇴계의 덕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을 알았다.
-『기이재상담』(紀伊齋常談)에서

# 옛날에 한 여자가 극히 음란하여 남진(남자관계)을 무수히 하매, 제 본남진이 안타까이 여겼다. 하루는 남자가 시골을 간다고 하면서 제 아내를 발가벗기고 큰 뒤웅박을 얻어 거기에 씌우고 끈을 매어 단단히 봉한 후 소변 나올 정도의 구멍만 뚫어두었다. 남편이 나간 후 아내는 남진을 여러 날 참았다. 그런데 하루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뒤웅박을 깨고 나와 남진을 무수히 했다. 그러다가 남편이 돌아온다는 기별이 오자 아내는 꾀를 냈다. 교외 십 리쯤 떨어진 산골짜기에 나가 기다리고 있다가 남편이 오자 달려나가 허리를 안고 말했다.
“어어 내 사랑이야. 여러 달 그리워하여 눈에 암암하더니 이제야 만나니 이런 반가운 일이 어디 있으리.”
그러면서 남편을 안고 넘어졌다. 남편은 어찌된 일인지 모르고 진정이라고만 여겨 속으로 생각했다.
‘이년 *을 봉해두고 갔더니 나를 보고 이리 반기는군. 내 꾀가 무던한가 싶다’
남편은 이렇게 해서 아내를 그리던 정회를 폈는데 아내가 말했다.
“아까 당신을 보고 반길 적에 봉했던 뒤웅박이 깨졌으니 이런 안타까운 일이 없네.”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내가 왔으니 깨졌다고 무슨 상관이랴. 수고로이 풀지 않아도 되니 더 좋다.”
-『조선의 음담패설』(정병설 풀고 씀, 예옥, 2010)에서

# 오래지 않은 옛날에 부부 금실이 좋은 수말과 암말이 살았는데
그만 수말이 급사를 하고 말았능기라.
졸지에 서방을 잃은 암말이 앞발로 땅을 치며 히힝 힝, 통곡을 하는데
차마 눈 뜨고는 못 봐 주겠능기라.
이웃 마을에서 문상 온 수말들이 딴에는 위로의 말이라고 한 마디씩 건네는데
“할 말이 없습니더” 하능기라.
할 말(馬)이 없다고 그러자
통곡하던 암말이 대답하능기 또 걸작이라.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습니더.”

수말의 동생이
“형수요, 우야믄 좋겠습니꺼. 드릴 말이 없습니더.”

암말이 남편의 무덤에서
“여보, 당신이 죽고 없으니
아무 말이나 할 수도 없고 해 줄 말이 하나도 없습니더.
우야믄 좋겠습니꺼?”
그때 그 말을 들은 온 마을의 수말들이 떼를 지어 달려오니…
“여보, 할 말 안 할 말 모르겠습니더.
할 말 안 할 말 가리는 방법 좀 알려 주이소.”

결론,
“여태까지 한 말은 그야말로 말도 아니었다카이.”
- 소설가 OOO의 육담. 1996년 강원도 평창 ‘문학캠프’에서 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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