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어찌 만든 나라며 어떻게 쟁취한 민주주의인데 이런 하찮은 여자가 감히 꼭두각시를 내세워 제멋대로 이 나라를 쥐락펴락 했단 말이야? 4년 동안 말도 안 되는 불행과 불편함들에 이 여자가 있었단 말이야? 그동안 박씨는 뭐했어? 이들의 농간에 놀아난 나는 뭐지? 우리는?’

지난겨울 1천 5백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나라가 이렇게 썩어 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삶의 무게 때문에 방치했다는 죄책감과 현실의 처참함으로 인해 살을 애듯 추운 거리로 나섰다. 시간이 갈수록 밝혀지는 최씨를 둘러싼 내용들은 엄청난 수치와 굴욕이었다. 참으로 암담한 심정에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시민들은 일과에 지치고 삶에 지치고 가치에 지쳐서 참으로 힘든 겨울을 보내야만 했다.

그렇게 맞이한 문재인 정부출범 19일이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시민들의 기대는 높다. 지난겨울 시민들은 시민의 의미와 국가의 의미를 깊이 새겼고 다시는 이런 굴욕은 경험하지 않겠다 결의를 세웠기 때문이다. 지금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인선을 보고 있다. 잘 한다 칭찬일색이며 수치스러웠던 지난 세월을 다 잊을 수 있을 만큼 만족스러워 한다. 주변에서도 모두 잘하고 있다며 기막힌 인선이라고 말하고 나 또한 당파를 초월한 새로워진 인선에 대해 감격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늘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나의 지켜봄은 ‘잘하나 어디보자’가 아니다. 그런 태도는 비난과 판단을 전재로 한 부정적 의미라면 나의 ‘지켜봄’은 부딪히는 난관들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며 거기에 나의 몫이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에는 ‘사람은 사람을 다 알지 못 한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백 마디 말보다 더욱 그 사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그가 살아온 삶이다. 그 사람의 행실은 그 사람이 어떤 가치로 세상을 살았는지를 반증한다. 과거가 중요하듯 과거가 되는 오늘도 중요한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5대 비리 관련자 원천 배제 원칙’이 있다. 5대 비리는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이라고 못 박았다. 문재인 정권의 변화를 기대하는 시민들은 내각 구성에 촉각이 곤두서 있고 국무총리를 필두로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비리는 드러났고 이낙연 국무총리 내정자는 진땀을 흘렸다. 털어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며 덮고 가자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약속을 지키라는 사람들도 있고 과거 그 시대는 대부분 그렇게 살았다며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평가는 매 정권마다 있어왔고 그 대상에 선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 말도 바뀌었다.

물론 이런 말들도 일리가 없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약속’이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지키지 못 할 일이라면 약속하면 안 된다. 더구나 공식적으로 지키겠다고 선언한 약속은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지키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이율배반이 되는 것이다. 적폐청산을 선언한 문재인 정권에 대한 기대는 촛불 시민들과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까지도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부정을 정의로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모두 정의가 무엇인지 안다. 하지만 그가 그 위치에 서지 못하는 것은 그 만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내세운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를 들어 설득이나 또 다른 방식으로 약속을 비튼다면 결국에는 그들과 다를 바 없어 진다. 설득은 또 다른 설득을 불러 올 것이며 그러한 방식은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끝내 둑을 무너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이 있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도 있고 인사가 만사라는 말도 있다. 이런 말들은 그냥 생겨난 말들이 아니다. ‘아닌 것은 아니다’ 결단하지 못하면 앞으로 더욱 큰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리더의 결단이 요구되는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