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 때에 초등학생 조카가 비석의 한자들을 술술 읽어 내려갔다. 신기해서 물어보니 한자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했다. 반면에 몇 년 전 대학생 조카가 나를 보더니 반갑다는 듯 교재에 있는 한자에 한글발음들을 적어달라는 부탁을 해 왔다. 대학생이 교재를 읽을 수 없다니… 짐작은 했지만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을 접하고 한자교육폐지 시대에 학교를 다닌 세대들의 심각함을 다시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1971년부터 한자교육을 폐지했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 당시에 한글 옹호론자들의 주장이 강했고 찬반논란도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초 · 중등교실과 교과서에서 한자가 사라짐에 따라 이른바 ‘한자맹아’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한자들이 넘실대는 ‘한자 바다’ 에 떠밀려 빠진 것이다. 대학교재와 신문 등 일상에서는 한자가 계속 쓰여지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당시 일종의 국수주의 기류 탓에 아마도 ‘한글교육이 애국’이라는 편협논리가 반대여론을 이길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 피해는 교실 밖에서 많은 사람들을 상당기간 힘들게 했다. 한 예로, 40대 후반인 국영기업체의 홍이사가 신입사원 시절에 한자 때문에 애를 먹었던 이야기를 통해서 어려움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에는 기안문을 손으로 작성할 때였는데, 과장은 명사나 대명사를 꼭 한자로 써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기안지를 찢어버리는 방식으로 후배를 지도했다고 한다.

홍이사는 한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다 보면 기안지의 위아래 줄을 잡아먹고 글자들도 마치 오선지에 음계를 그려놓은 것 같이 들쭉날쭉했으므로 과장이 그걸 용납할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기안지를 찢기는 수모 때문에 한자책 몇 권을 뗀 후에야 결재가 원할했다고 한다.

공교육에서 한자교육이 철저히 외면당하던 그 시절에도 한자와 한자어는 사회지도층의 사자성어 사용이나 신문, 대학교재 등에서는 계속 쓰여졌고 중국여행이 자유롭게 허용됐을 때에도 한글교육방침이 바뀐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KBS 원로기자를 지낸 전 조순용님이 기자시절 서양화가 오지호 화백과 인터뷰했던 내용을 소개한 글을 보았는데, 오 화백은 ‘한자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젊은이들에게서 사유(思惟)공간을 빼앗는 것이고 고등사고를 할 능력을 배양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하면서 ‘사고능력이 떨어지는, 즉 생각이 모자란 채 그들이 어른이 되는 사회’를 걱정했다는 것이다.

결국 앞서 살았던 정책결정자나 자기분야를 강하게 주장했던 사람들이 남긴 편협성이 오랜 그림자를 후진에게 남긴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케 하는 사례 중 하나이다.

한자교육 폐지의 결과는 비문을 또박또박 읽어가던 초등학생 조카 녀석이 오늘도 아마 한자자격시험이라는 자기도 알 수 없는 이상한 틀에 메어 사교육비 들여 학원으로 끌려가고 있을지 모른다.

많은 학문영역과 분야, 기술과 기술이 융합 및 복합되는 통섭의 시대, Crossover의 시대라고 하는 지금, 한자교육의 필요성 논쟁을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최근 한자교육추진을 촉구하는 단체에서 신문에 낸 다음과 같은 퀴즈광고는 씁쓸하기만 하다.

사전을 찾지 않고 자신의 실력만으로 정답을 보내면 심사하여 30만 원 상당의 상품을 보내준다는 내용과 함께 응모 대상을 다음과 같이 한정했다. ①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사람 ② 光化門을 한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정부에서는 구제역( )을 하루속히 구제( )해야 농민들을
구제( )할 수 있지만 구제약( )으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