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 직후에 "서부발전" 사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보에 실었다는 얘기만 하고, 사보를 보내준다고 주소까지 물어보고는 보내주지 않네요. 요즘은 이런 곳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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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광고

중국 어느 도시의 전형적인 서민 가옥. 이른 아침 이제 갓 초등학교나 들어갔을까 싶은 여자 애를 어머니가 깨운다. 그렇게 일찍 일어나야 하는 아이를 보는 게 안쓰럽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아침 준비까지 마쳤다. 아침을 먹은 아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버스를 탄다. 준비운동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 어린이가 소녀로 자라나 대회에 참가하자 누구보다 열렬히 응원한다. 부진한 성적에, 또는 예기치 않은 부상에 좌절하는 딸의 등을 토닥이며 격려하는 것도 어머니의 몫이다. 마침내 세계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에서 경쟁하는 딸이 1위로 결승점에 닿는다. 어머니를 찾아 달려온 딸을 안으며 어머니는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P&G에서 이번 런던올림픽에 방영한 ‘어머니께 감사를(Thank you, mom)'캠페인 광고 중 한 편이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의 뒤에는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한 어머니가 있었다며, P&G는 수십개국에서 같은 형식의 광고와 다큐멘터리 형식의 동영상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배드민턴의 이용대, 리듬체조의 손연재 선수의 어머니가 주인공이 되었다. 한 편 한 편 모두 보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광고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어머니는 이렇게 애잔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로 마무리하는 삼성생명 ‘효(孝)’ 캠페인 ‘어머니 편’을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같은 캠페인의 아버지 편은 비슷한 감성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배경은 조금 달랐다. 한국 가정에서 아버지는 서커스단 내에서 철권을 휘두르는 서커스단장을 겸하는 피에로와 같은 역할을 해온 경우가 많았다. 수입과 운영을 책임지지만 그는 보통 서커스단 내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이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단원들이나 가족들과의 소통에도 젬병인 경우가 많다. 그것을 애써 예전 가부장의 권위로 포장을 하려니, 소통할 대상과의 거리는 더욱 넓어질 뿐이었다. 어느 정도의 경제발전과 전제적인 체제가 붕괴되고 사회 전체에 자유의 바람이 불면서, 한국인들은 그저 무섭기만 했고 그래서 피하려했던 아버지를 연민어린 슬픔과 결부시켜 쳐다볼 수 있는 감성을 갖게 되었다. 그 시각으로 아버지가 그려졌다. 아버지 역시 어머니와 비슷한 슬픔의 코드로 표현되었다.




감성 코드는 시대의 트렌드와 함께 변한다. 근엄하고 자기표현을 억제하는 아버지의 시대는 갔다. 대신 엉뚱하게 자기표현을 하거나, 젊은이들의 유행을 쫓으려다 웃음거리가 되는 중장년세대로 편입되어 광고에 나타난다. 어색한 몸짓으로 셔플댄스를 연습하는 포스코 기업광고의 부장님, 썰렁한 농담을 던지는 죠지아 커피의 상사가 대표적이다. 이는 사실 연예계와 사회 전반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연예 기자 하나가 한국 연예인을 보면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망가지고, 여자들은 더욱 우아해진다는 얘기를 했다. 여성의 위상 제고, 특히 나이가 들수록 올라가는 징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의미를 찾지 않고, 한없이 가벼워도 좋은 재미를 추구하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세태를 반영하여 광고에서 달라진 점 중의 하나로 광고 모델이 연예인에 국한되지 않고, 스포츠 스타나 일반인으로 다양하게 된 점을 들 수 있다.




올림픽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조사를 하나 실시했다. 참가한 한국 선수들 중 광고 모델로 각광을 받을 것 같은 선수들을 선정해달라고 했다. 리듬체조의 손연재 선수가 1위, 그 뒤를 체조의 양학선, 수영의 박태환, 펜싱의 신아람, 양궁의 기보배 선수가 뒤를 이었다. 손연재와 박태환은 이미 많은 광고에 출연했다. 젊음과 빼어난 외모가 큰 역할을 했다. 물론 국제무대에서 한국에게는 불모지와 다름없던 종목에서 거둔 성적이 기본이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두 선수는 스토리를 더했다. 곤봉을 놓치는 실수에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연기를 마친 손연재, 실격 판정과 그 번복이라는 엄청난 사태를 당해서도 감정을 자제하며 결국 은메달을 거머쥔 박태환은 감각기관인 눈만 즐겁게 하는 모델을 넘어서, 더 깊은 감성까지 자극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든 것이다.




양학선, 신아람, 기보배 선수도 모두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승부의 짜릿함과 성적을 떠나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할 요소들을 이번 올림픽에서 보여주었다. 결국 광고는 사람을 감동시켜야 한다.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한국의 TV광고들은 15초짜리이다. 그 짧은 15초에 마음을 움직일 요소를 전달하기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알려진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모델들을 쓴다. 비닐하우스와 너구리 라면으로 상징된 양학선의 가난. 폐막식 화면도 장식하고 해외에서까지 패로디물이 나온 런던올림픽 최고의 오심 ‘기나 긴 1초’의 주인공으로 펜싱 피스트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던 신아람. 그 상처를 이겨내고 자신의 힘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보여준 자존심과 뚝심. 애교 덩어리 막내지만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당황하게 하는 기보배. 그에 이어진 영화에서나 볼 법한 동료 궁사 금메달리스트와의 사랑. 꼭 광고를 떠나서라도 이들이 펼칠 경기장 내외에서 감성 퍼레이드 행진이 기대된다.




일반인이 모델로 출연한 광고는 광고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목적인경우가 많다. 톱스타 모델에의 동경과 선망이 구매욕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자신과 같은 일반인을 보며 동일시하고 감정이입의 상태로 접어든다. 바로 감동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감동은 억지로 만들 수 없다. 자연스럽게 느껴져야지 감동을 강요할 수는 없다. 화려한 수사나 그림을 떠나 진실한 마음이 감성을 자극하고 비로소 마음이 열린다.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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