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요. 예쁜 집, 편리한 집, 해가 잘 드는 집, 전망 좋은 집,동문에 남향집.... 첫째 요건이야 물론 "똥집같아도 내집"이라는 것일 테고, 둘째는 온가족 오손도손 정겹게 모여사는 집이어야 한다는 걸 겁니다. 햇볕 잘들고 전망 좋고 편리하고 예쁜 건 그 다음일 테지요. 그래도 기왕이면 예쁘고 편리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각설하고, 이사했습니다. 94년 서울에서 경기도 일산으로 떠난 지 만 9년만입니다. 작은 녀석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서울로 가야할지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돈도 돈이고, "친구들이 있는 일산에서 다니겠다"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일산에서 그냥 살기로 했는데 배정된 학교가 멀어 조금 가까운 곳으로 이사한 겁니다.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살던 집을 팔기 전에 살 집을 계약했는데 하자 마자 이라크전과 북핵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집을 보러 오는 사람도 없고..."잘못된 선택"인가 싶어 밤잠을 제대로 못잤습니다. 결국 정든 집을 시가보다 싸게 팔아야 했을 때는 정말이지 속이 많이 상했지요.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새집에 들어갔습니다. 살림살이 몇 가지를 새로 장만했는데 뭔가 구입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어떤 물건이 좋은지 돌아다니면서 비교할 수가 없고 급한 마음에 사고 나면 다른 게 왜 그렇게 좋아 보이는지요. 그래도 "어떻게 되려나" 싶어 가슴이 벌름거리던 상태는 면했습니다. 심란했던데다 짐을 정리하느라 고생한 덕분에 좀체 꼼짝않던 몸무게도 2㎏이상 빠졌구요.




새집은 아파트가 아니라 주거형 오피스텔입니다. 완공된 지 1년반쯤 된 새 건물이지요. 베란다와 욕조가 없는 대신 건물 안에 헬스센터와 식당 미장원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좋습니다." 9년동안 도배 한번 못하고 살던 헌집에서 새집으로 왔으니까요. 거실과 안방 전면에 푸른 산이 펼쳐져 있는 만큼 전망도 썩 괜찮고, 큰길 바로 앞인데도 조용하고, 거실 바닥도 모노륨에서 나무로 바뀌었습니다. 베란다가 없어 "빨래를 어떻게 말리나"하던 걱정은 건조 겸용 세탁기로 해결했습니다.




주차장이 건물 안에 있어 비오는 날에도 우산 쓸 일이 없습니다. 이사하던 날은 물론 이후 식사준비를 제대로 못하는 날도 반바지 차림으로 건물 안 식당에서 해결했습니다. 중국집과 회집 김밥집 등이 있어 입맛대로 고를 수 있고 밤12시가 넘도록 문을 열어놓는 곳도 있습니다. 수영장과 사우나가 포함된 헬스센터도 있구요. 강남의 `주상복합`이 왜 인기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들이지요.




내부구조도 처음 봤을 때보다 요모조모 쓸모있습니다. 안방이 독립돼 있는데다 거실에서 주방이 곧바로 보이지 않는 것도 장점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화장실 정리장이 벽에 탕탕 부딪칠까봐 타일벽에 실리콘을 붙여놓는 등 세심한 구석이 있는 점입니다. 주방과 화장실 수납공간도 나름대로 꽤 쓸모가 있구요.




물론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세상에 다 좋은 게 어디 있을라구요. 모노륨에서 나무마루로 바뀐 거실과 주방 바닥은 깔끔하고 촉감이 그만이지만 조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원목이 아니라 합판에 무늬목을 살짝 붙여놓은 것이어서 물을 엎지르거나 물걸레를 오래 놔두면 윗부분이 떨어져 들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용지침 때문입니다.




원목이면 좋겠지만 비싸서 웬만한 아파트나 오피스텔은 모두 이처럼 짝퉁원목 시공을 한다는 겁니다. 덕분에 설거지를 하다 물이라도 떨어지면 닦기 바쁩니다.




그럴 때면 기왕이면 원목으로 해주지 하는 마음과 함께 아무 거나 떨어져도 걱정 없던 모노륨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행여 무거운 걸 떨어뜨려 바닥에 흠집이 생길까도 걱정입니다. 먼지가 뭉쳐 굴러다니는 것도 청소에 신경쓰지 못하는 입장에선 난처한 일입니다.




"에잇" 싶은 일은 또 있습니다. 전기콘센트의 구멍이 가로가 아닌 세로로 돼 있는 겁니다. 무슨 차이가 있나 할지 모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가로로 돼 있어야 꽂기 편하고 멀티탭을 끼우기도 좋으니까요. 세로인 경우 멀티탭을 꽂으면 두 개인 콘센트를 하나밖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멀티탭이 아래나 위쪽을 가리니까요.




도대체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전기공사를 할 때 무심했거나 한번 그렇게 해놓은 뒤 다시 시공하기 싫어 그대로 밀고 나간 까닭이라고밖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용자는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요.




집만 그럴까요. 모든 일을 할 때 담당자가 조금만 신경쓰면 사용자나 수용자가 편하고 기분좋게 쓸 수 있는데 무심코, 혹은 한번 잘못된 걸 고치기 귀찮아 그냥 밀어부친 탓에 많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불편을 겪는 일이 수두룩해 보입니다.




좀더 신경써줬으면 하는 일은 한가지 더 있습니다. 에어컨 설치에 따른 배관문제지요. 베란다가 없는 만큼 작은방에 실외기박스가 딸려 있는데 실외기로 연결되는 배관공사는 안방과 거실에만 해놨습니다. 안방 대신 아이들 방에 에어컨을 달자니 배관공사가 안돼 있어 대책이 안서는 겁니다. 더욱이 복도쪽 방엔 에어컨을 달래야 달 수가 없습니다. 이사하면서 공부하기 좋게 꼭 에어컨을 달아주겠다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알아봤더니 강남의 주상복합아파트엔 각방에 천장에어컨을 설치해준다고 했습니다. 실외기 설치를 못해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는 문제같은 건 없다는 얘기지요. 40-50평대의 경우 수입 벽걸이TV 하나 값 정도면 시공할 수 있답니다.




물론 만만한 값은 아닙니다. "거실에 한대 놓으면 됐지 방마다 무슨 에어컨?" 하거나 "전기료를 무슨 수로 감당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방 대신 아이들이나 부모님 방에 에어컨을 놓을 수도 있는데 안방에만 배관을 해놓으면 다른 식구들은 어쩌라는 것인지요.




"억울하면 비싼 데 가서 살아라" 하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같은 분양가라면 에어컨 설비를 제대로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천장 에어컨의 경우 공사가 끝나면 하기 어렵다고 하는 만큼 시공할 때 해주면 여러 모로 편리할 겁니다.




"좋은 집"의 중요 요건은 아무래도 따뜻하고 시원하고, 살면서 잔신경 안써도 되는 집 아닐른지요. 우리 건설사들이 겉치레보다 내실, 모양뿐만 아니라 기본설비에 좀더 잘 신경써줄 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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