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열차를 타면 10시간 이상이 걸려 도착하는 룩소르. 새벽에 몸을 실어도 나일 강에 석양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즈음에나 열차의 엔진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현지인들의 삶을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일부러 선택한 2등석 칸에서 감상하는 나일 강의 석양은 이집트 여행의 진정한 시작이자 끝이 된다. 석양은 나일 강 위에서 빠른 속도로 그 자취를 감추는데 마치 이집트를 통치했던 제왕의 혼령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순간, 난 스스로를 신으로 칭했던 파라오들의 숨결을 느끼며 눈으로는 나일 강의 폭과 길이를 잰다.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제왕들에게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도전하는 것처럼.
석양마저 고개를 숙이는 제왕의 권위 룩소르
( 사후에도 영원히 살려고 했던 이집트 제왕의 묘)




룩소르는 카이로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어서 카이로가 이슬람 성전의 첨탑과 바쿠시시(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주는 은전, 팁의 일종)의 메아리로 가득 차 있다면, 룩소르는 신과 전쟁을 벌이는 용감무쌍한 전사들의 함성과 신전 건설에 동원된 수많은 이름 없는 노예들의 신음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전사들의 함성과 노예들의 신음은 도저히 서로 어우러질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소리라서 그 두 소리를 어떻게 조합할 지는 나로서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나일 강만이 두 울부짖음을 머금은 듯 유유히 룩소르를 가로질러 흘러갈 뿐.
석양마저 고개를 숙이는 제왕의 권위 룩소르
(건축물 하나 하나가 아직도 제왕의 절대권력을 상상하게 만든다.)




멤논의 거상, 왕가의 계곡, 카르나크 신전, 핫셉슈트 여왕의 신전은 나를 고고학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게 하고, 전설로 영원히 남았을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가 발견된 파라오의 묘 앞에서는 다리에 힘이 빠졌다. 왜 많은 사람들이 500여 년간 수도로서 군림했던 룩소르를 보지 않고는 이집트를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지 그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룩소르야말로 이집트의 정신적 버팀목이며 핵심인 이유를 발견했다.
석양마저 고개를 숙이는 제왕의 권위 룩소르
(제국의 흥망성쇠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나일강)


남들보다 앞서기 위한 경쟁에서 지친 젊음에게, 남들보다 돋보이기 위해 치장하는 젊음에게 나는 신전의 도시 룩소르에 가볼 것을 권한다. 문명의 태동을 만든 유구한 나일 강가에 세워진 고대 도시가 스스로를 뒤돌아 볼 수 있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