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는 바꿔도 입맛은 못 바꾼다라는 속담 아닌 속담이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아내까지 바꿀 수 있는데 왜 입맛은 못 바꾸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난 태국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태국 통신 사업자와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일년 동안 태국에서 머물 때의 일이다.



“ 오늘은 정말 한국 음식을 먹어야겠어요, 아무리 멀어도 한국 식당에 가야겠습니다.”



“ 프로젝트가 계속 연기되고 있는데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태국 음식을 드십시다.”



난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엔지니어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매 끼니 때마다 벌어지는 동료들과의 논쟁에 난 지쳐가고 있었다. 아니, 지쳐간다기 보다는 태국 통신사업자의 요청 사항에 대응하는 속도가 점점 지연되는 것이 참으로 걱정스러웠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태국은 가히 교통지옥이다. 러시 아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차가 막힌다. 택시로 수백 미터를 가는데 무려 한 시간이나 걸리는 일이 다반사다. 택시에서 내려 걸어가려고 해도 습도가 높고 푹푹 찌는 무더위에서 수십 미터만 걸어도 온 몸이 땀으로 젖어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차가 막혀도 차 안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 프로젝트가 지연되니 오늘은 제발 태국 음식을 먹도록 합시다. 한국 식당에 가는데 한 시간, 오는데 한 시간, 식사하는데 한 시간, 한 끼를 먹기 위해 세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너무 낭비라고 생각해요. 우리 주말에 한국 식당에 가서 실컷 먹도록 합시다.”



“ 안돼요, 난 오늘 한국 음식을 먹지 않으면 힘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태국 음식은 냄새가 심해서 먹을 수가 없어요.”



다음 날도 난 동료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무려 세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태국 음식도 맛있기만 한데 한국 음식을 고집하는 동료들이 원망스럽기 까지 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프로젝트 리더인 나의 말이 이렇게 안 통한 적은 지금까지 없을 정도였다. 음식이 뭐길래 이렇게 심각한 갈등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난 망연자실했다.



물론 나도 얼큰한 김치찌개와 구수한 된장찌개를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가 많았다. 빈대떡도 먹고 싶고 김치가 그리웠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음식을 통해서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태국 음식도 참으로 맛있는 음식이다. 맛있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 속의 편견이 태국 음식을 먹어서는 안될 음식으로 여겨 버리는 것 같았다. 우리 스스로 태국 음식을 마음 속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 속으로부터 거부하고 있으니 음식이 입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토불이라는 고사성어를 실천하듯이 우리 마음은 한국 음식을 먹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훈련되어 가고 있었다.



비단 태국만이 아니라 해외로 장기 출장을 떠나게 되면 음식은 큰 골칫거리가 된다. 현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겨도 한국 식당을 찾는 것이 보통이다. 혼자라면 모르지만 팀으로 움직일 경우 식사문제는 팀웍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제 여러 나라의 문화가 서로 섞이고 어우러져 사는 시대가 되었다. 그것이 패션이던 건축이던 음악이던 한 나라의 문화만이 독야청청할 수는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입맛도 때에 따라서는 바꿀 필요가 있다. 현지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외국 사람이 한국에 와서 김치를 맛있게 먹는 것이 더 이상 신기한 일이 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현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당신이 다른 나라에 가서 한국음식만을 먹기를 고집한다면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없다. 그 누구도 당신이 원할 때 마다 당신에게 한국 음식을 가져다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현지 음식에서 나는 특정한 냄새를 싫어하는 것처럼 한국 음식의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좋아서 먹는다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아내마저 바꿀 수 있다는 우스꽝스런 속담을 되뇌이기 이전에 입맛부터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입맛을 바꾸기 이전에 현지의 음식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