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조개 어획이 한창입니다.
보령의 오천항에서는 9월부터 물이 차가워지는 10월 말까지 많은 키조개가 출하됩니다.
키조개는 남해의 특산물이었지만 지금은 보령에서 잡히는 어획량이 더 많다 합니다.
장흥에서 나는 특산물(소고기, 표고버섯, 키조개)을 조합하여 개발한 음식인 장흥삼합을 천안에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곳에서도 표고버섯과 키조개, 질 좋은 한우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흥은 광화문을 중심축으로 줄을 그으면 정남쪽에 위치한다 하여 정남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바다와 산과 들이 조화를 이루는 장흥은 이청준, 송기숙, 한승원, 이승우, 김영남, 이대흠 등 한국문학에 비중 있는 문인들과 김선우 화백을 배출한 예향입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문학특구로 지정된 곳이며. 슬로시티(유치면)가 있고, 편백나무숲으로 유명한 우드랜드와 토산물을 파는 토요시장이 열리는 고장입니다. 청정해역인 득량만에서 전통의 방법으로 생산되는 장흥무산김과 매생이는 향이 깊고 맛이 좋아 미식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장흥은 청정한 자연경관과 먹을거리로도 유명하지만 <서편제>와 <눈길>을 쓰신 미백 이청준 선생님의 생가(회진면 진목리)가 있어 더 마음이 가는 곳입니다.
이청준 선생님의 작품에 기대어 제 삶이 지탱해왔지 싶습니다. 선생님의 첫 작품집인 <별을 보여드립니다>부터 마지막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까지를 읽으며, 힘들 때마다  제 삶을 반추해보고 다독이며 위로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생이 앓으니 나도 앓는다'는 어느 고승의 법어처럼, 작가는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독자 보다 먼저 헤아려 그것을 앓아낸 연후라야 좋은 작품이 잉태되는 까닭입니다. 文才만을 뻐기는 글은 생명력을 갖지 못합니다. 이청준 선생님은 문학적 성과나 인간적인 면모, 양면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다 생을 마치신 한국 문학의 큰산입니다. 폐암과 투병하시다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69 세로 生을 마감하셨으니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저지른 일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뉴스들이 연일 터져나오는 작금의 현실을 돌아보면, 존경할만한 어른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집니다.  

박완서 선생님은 이청준 선생님을 마음의 스승으로 모셨다 했습니다.
나이로는 당신이 선배이지만, 문학적 역량이나 인품 면에선 이청준 선생님이 당신 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계시다며 ' 인간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신사'라 칭송했습니다.
평론가 김윤식 선생님도 하늘과 땅, 그 끝이 아득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맨 먼저 찾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이청준의 소설이라 했고, 한양대의 정민 교수도 '겸허를 가르쳐 준 삶의 스승'이라 했습니다.

<눈길>, 마지막 부분의  구절은 지금도 가슴을 적십니다. 
"간절하다 뿐이겄냐, 신작로를  지나고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 목소리와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만 싶었제. 산비둘기만 날아 올라도 저 아그 넋이 새가되어 다시 돌아오는 듯 놀라지고, 나무들이 눈을 쓰고 서있는 것만 보아도 금세 저 아그 모습이 뛰어나올 것만 싶었지야.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것 혼자서 너를 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밟고 따라왔더니라."

어머니를 소재로 한 소설이 하고 많지만 그 중의 으뜸을 꼽으라면 저는 <눈길>을 떠올립니다. 가세가 기운 탓에 낳아서 가르쳐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모정의 아픔이 이보다 절절할 수 없습니다. 이청준 선생님은  당신의 문학을 지탱하게 해주는 자양분은 고향과 어머니라고  늘상 얘기하셨습니다. 그는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소설로 썼고, 그것을 애독해온 저는 회진과 선생님의 모친을 훤히 꿰고 있었습니다. 하기에 장흥 하면, 먼저 이청준 선생님을 떠올리게 되는 습성이 생겼습니다.

힐링이 화두가 된 세상입니다.
그만큼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문학(또는 그림)이 다친 영혼을 다독여주는 기제라 여겨왔습니다.
스토리는 교조적인 신앙 보다 자유롭고, 사변적인 논리 보다 더 따뜻하고 강력한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음을 터득한 까닭입니다.

밥상 또한 울고싶은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위안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정성과 사랑으로 차려낸 밥상을 대하면 울컥 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그 고생을 마다 않고 많은 분들이 고향길로 향하는 이유가 뭘까요.
고향과 어머니가 그리워서일 것입니다.

고향집에 가면 도시에서 쌓인 피로와 마음의 상흔에 새살이 돋아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주어진 삶을 살아낼 용기를 얻습니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시래기국에 밥을 말아 묵은지를 얹어 오물거리는 순간, 험난한 세상은 살아볼만한 공간으로 다시 바뀝니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접고 귀농하여 새로운 삶을 꾸려가고 있는 선배의 초청을 받아 장흥을 다녀 온 아이가 '장흥삼합의 맛'을 못 잊겠다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바로 장을 보고 저녁상을 준비했습니다.
현지에서는 익힌 삼합을 절인 깻잎에 싸서 먹는데, 저는 생야채를 준비했습니다.
고기와 관자 버섯은 살짝 구워 유장에 버무려 접시에 담고, 생된장을 곁들였습니다.
식사를 마친 아이가 장흥에서 먹었던 삼합에 비해 조금의 손색도 없노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주말입니다.
재료 구하기가 어렵지 않은  장흥삼합, 가족과 함께 만들어 드시면서 오붓한 시간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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