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Specialist). 이 단어만큼 요즘 직장인들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단어가 있을까. 자신만의 분야에 독립성을 갖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으며 정년퇴직이 따로 없는 자리. 언제든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어 눈치 볼 일도 적고 그 자격만으로도 평생 먹고살 것이 보장된 위치.



게다가 언론들은 이제 전문가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라며 직장인들의 ‘전문가 콤플렉스’를 자극하고 있다.고시 준비를 다시 시작하는 회사원들이 있는가하면 미국 공인회계사(AICPA),미국 변호사 시험 응시생들과 각종 전문자격증 시험 수험생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우리 직장 사회는 전문가시대로 정말 가고 있는가.회사내에서 전문가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그런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가.냉정하게 한번 따져보자.



당신 회사의 CEO는 전문가인가. 임원 중 전문가라고 불러줄 만한 사람이 몇명이나 되나. 사내에서 전문직이라고 여겨질만한 것 가운데 소위 ‘출세코스’로 인정받는 자리가 많은가.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이나 전문기술업체가 아닌 경우, 답은 대부분 ‘No’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 전문가가 대접받고 전문가만이 살아남는다라는 말은 ‘헛소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서 ‘전문가’라는 개념 정의부터 명확히 할 필요성이 나타난다. 고도로 분업화된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필요로 하되 특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전문직이라고 정의해보자. 상식적으로 이런 전문직은 진입장벽이 높다. 누구라도 쉽게 자격을 얻을 수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합격자체가 쉽지 않은 고시, 많은 시간과 투자를 요하는 학위 등이 이런 전문직으로 가는 정규코스다.그렇다면 회사가 필요로 하는 전문가는 얼마나 될까.극소수다.사내 변호사,사내 의사,사내 회계사,사내 IT컨설턴트,사내 웹디자이너 등을 수십명씩 쓰는 일반 업체는 없다.사내변호사를 예로 들면 그 숫자는 제한돼있고 그들이 임원이 되고 사장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언제 잘릴 지 몰라 고시를 준비하고 자격증을 따는 건 자유선택이다.그러나 이건 회사를 떠날 경우를 대비한 생존전략이다.회사 내에서 살아남고 승진하고 CEO를 지향하는 정공법은 아니다.지금의 회사에서 승부를 낼 각오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문가 콤플렉스`에 시달릴 필요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언론이 떠들어대는 전문가 시대 운운은 정말 헛소리인가.그렇지는 않다.방향은 맞다.다만 애매모호한 구호에 그침으로써 직장인들의 콤플렉스만 자극하는 폐단이 있다.실제로 많은 이들이 전문성 없는 자신을 자책하며 불안해 한다.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괜한 자책이다.회사 내부를 돌아보라.누가 전문성이 있는가.아무도 없다.있다고 해도 위에서 말한 사내변호사 정도다.그는 사장후보가 절대 아니다.당신의 경쟁자가 아니다.



직장사회에서의 전문성은 그러니까 자격증이나 학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오히려 `대체 가능성`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당신 자리에 지금 동료를 앉힌다면 회사 일에 지장을 초래하는가.지장이 있으면 당신은 전문가다.없다면 당신의 직책은 전문성이 전혀 필요없는 자리이거나 당신이 이제껏 그런 위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당신이 없다면 회사에 지장이 갈 정도로 자신의 위치를 `전문적인`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그것이 언론들이 떠들어대는 전문가 시대의 함의다.



이 대체가능성이란 개념은 연봉제가 일반화된 미국에서 연봉 협상에 기초가 되는 개념이다.회사에 제시하는 자신의 연봉기준은 주로 이런 식이다.”내가 회사에서 나가면 회사는 나같은 사람을 찾는데 얼마, 그 사람을 찾아 직무교육을 시키는데 얼마가 더 들 것이다.그러니 그 비용을 내년 인상분으로 해달라”는 식으로 요구하게 돼있다.대체가능성이 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 수록 협상에서 우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반대로 대체가능성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실적이 좋지 않을 경우 회사측의 연봉 인하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회사에서 “지금 당신같은 실적을 올리는 사람은 얼마든지 즉시 구할 수 있다.그러니 20% 삭감하겠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대체가능성이 적은 전문성있는 회사원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물론 쉽지 않은 숙제다.그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자. 다만 중요한 것은 왜곡된 `전문가 콤플렉스`에선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개인에게도 자원은 한정돼있다.적재적소에 집중해 써야 효과가 극대화된다.그러니 지금의 일에 집중하자.내 일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성의 수준은 내가 가장 잘 안다.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된다.자격증은 잘리고 나서 따도 늦지 않고 지금 따도 전혀 빠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