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71번 버스, 기억 – 우동섭


1년 전 어느 날, 나는 고속버스 안에서 죽어 갔었다. 원인 모를 공황과 신체변화로 시작된 죽음의 시작은 급격한 경련 끝에 온 전신마비와 힘겨워진 호흡으로 이어졌고 나는 살기 위해 몸부림 쳤었다. 나는 스러져갔고 스러지고 말았다. 시신경은 이상을 일으켰고, 나를 암흑 속으로 밀어 넣었다.

코마(Coma)는 나를 잡아 먹었다.

‘그렇게 가는 거지’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가 <제5 도살장> 주절대던 그 한마디는 내 것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다.

애석하게도 그 후, 버스는 공포의 공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홍대 입구역 4번 출구앞 중앙 버스 전용 정류장에서, 271번 버스 타기를 주저하는 것은 그 공포 때문이다.

R.E.M의 Nightswimming을 들으며 감정을 누른다. 멜로디에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Nightswimming deserves a quiet night

The photograph on the dashboard, taken years ago

Turned around backwards so the windshield shows

 Every streetlight reveals a picture in reverse

 Still it’s so much clearer

 I forgot my shirt at the water’s edge

 The moon is low tonight



271번 버스 도착 3분전. 지금은 저녁 8시. 버스를 타기 전에 뒤를 돌아 본다. 홍대 입구역 9번 출구, 알록달록한 인파 뒤로 KFC가 보인다.

‘스마트 초이스’

한 10년 전이었다. 나는 저 곳에서 그녀와 ‘스마트 초이스’ 하나를 시켜놓고 반나절 동안 음악이야기를 나누었다. 비틀즈(The Beatles)부터 오아시스(Oasis)까지. 히식스부터 언니네 이발관까지. 가슴 한 켠에 보관해 놓고 있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그녀의 눈을 보았었다. 까만 눈동자가 구슬처럼 빛난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눈동자 깊은 곳에 있는 그녀의 내밀한 세계가 입을 타고 나에게 전해져 왔다. 알 수 없는 떨림으로 그녀를 응시했었다. 그녀가 뱉어내는 세계. 그 우주. 그 아름다움. 머리를 쓸어 넘길 때마다 나의 후각을 뒤덮은 향기로움.

그때는 왜 몰랐을까.

상념에 잠기다 보니 271번 버스가 도착한다. ‘스마트 초이스’를 생각하며 망설임 없이 버스에 탔다. 목적지는 없다. 버스 출구 바로 옆 좌석에 앉아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마신다.

버스를 탄 목적은 바람이다.

“The moon is low tonight”





#1

이번 정류장은 신촌. 신촌입니다.

민들레 영토. 향 음악사. 맛의 진미.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신촌이다. 하이퍼텍스트처럼 이어진 그 것들 사이로 나의 기억이 끼어있다.

버스가 신촌 5거리를 지나가면서 연세로가 보인다. 연세로를 질러가면 향 음악사와 맛의 진미가 있을 텐데 아직도 그대로일까.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보너스트랙이 들어있다던 The Verve의 Urban Hymns 일본 수입음반을 애타게 구하던 그녀가 Bitter Sweet Symphony를 입으로 흥얼거리던 그 거리엔 그때의 흔적이 없어 보인다. 버스전용차로로 변한 도로 옆으로 넓어진 인도가 펼쳐졌고, 손을 맞잡은 연인들이 그 위를 걸어간다. 나도 한때 속했던 저 무리는 디오라마나 아바타 같다. 아. 홍익서점. 60년대부터 장사하고 있다던 그 서점은 그대로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어보라며 어깨를 툭툭 치던 그녀의 환영. 그 환영이 저 파란 간판 아래 존재 할 것 만 같다. 그 환영을 따라 창천교회 옆길을 따라 있던 민들레영토를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때의 나도 그녀도 민들레 영토도.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안개 끼듯 흐려진다. 민들레영토에서 받았던 시집이 빛에 바랜 것처럼. 버스 안에서 빛에 바래 점점 짙어지는 나를 발견한다.

271번 버스에서 멀어지는 신촌을 바라보면서

“멀어짐. 흐려짐. 사라짐.”

그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시간의 흐름처럼 나의 얼굴을 때린다. 바람이 얼굴에 묻을 때면 거짓말처럼 바람은 사라진다. 다가올 바람이 체화 되면 ‘현재’가 되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 턱을 괘고 바람을 맞으면 생각에 잠기는 것은, 바람이 세계를 먹고 다가 오기 때문이다.

나는 세계를 먹고 있다.





#2

271번 버스는 충정로를 지나 경향신문사 사옥을 향한다.

보인다.

경향신문사 오른편으로 나있는 2차선 도로는 정동길이다. 정동길은 남도식당, 덕수궁 돌담길, 배제학당으로 연결되어 있다. 의식의 흐름 속에 이어진 그 길 위로 그때의 나와 그녀가 지금도 있을지.

그녀와 함께 먹었던 남도식당 추어탕의 맛은 지금도 그대로일까. 새빨간 글씨로 <추어탕> 이라고 쓰여진 간판 속에는 개량 한옥이 있었다. 그 한옥은 식당이었다. 여름에 진이 빠지면 이걸 먹어야 한다며, 안으로 들어가던 그 모습. 식당 어귀 그림자 안에 그대로 환영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국물이 머리카락에 닿을 까봐 고개 숙여 머리를 묶고 있던 그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가냘픈 손으로 움켜쥐던 그 머리카락이 움직일 때마다 나는 그 얇은 실선에서 눈을 떼지 못했었다.

연인이 같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덕수궁 돌담길은 미신에 불과하다던 나. 원래 서울가정법원이 이곳에 있어서 그런 이야기가 떠돌았던 것인데, 지금은 가정법원이 없으니 미신에 불과하지 않냐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던 나. 우리는 친구일 뿐이잖아. 자신들도 몰랐던 그 의미. 그 이야기를 군소리 없이 듣기만 했던 그녀. 그때 스치던 서로의 손과 그 따듯한 온기. 그 사이를 맴돌던 부드러운 바람. Elliott Smith의 Waltz #2를 들으며 걷던 그 거리. 같이 걸었던 그 길 속에서, 나의 신발에서 떨어졌던 먼지들이 아직도 보도 블럭 사이에 끼어 있을지. 그 먼지들이 아직도 그때의 정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지, 더럽혀진 손으로 그 먼지를 만지면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지.

I’m never gonna know you now, but i’m gonna love you anyhow. – 난 지금 당신을 결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당신을 사랑하겠지요.


정동길 초입을 지나가는 5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많은 기억과 생각들이 나를 스쳐지나 간다. 생각과 기억은 시간의 절대성을 허물어 버린다. 가끔은 기억이 인식을 사로잡아, 비현실과 현실을 구분 짓지 못하게 한다.

버스의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환각으로 빠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환기 시켜준다. 나는 잠시 창을 닫고 바람이 몸에 닿지 않기를 바란다.

서울 271번 버스, 기억 – 우동섭




#3

271번 버스는 세종로를 거쳐 종로로 들어간다.

청진동. 그 기억. 그 향기. 그 장면을 기억한다. 광화문, 미진메밀, 청진식당. 먹고 나면 걷다가 들어간 교보문고. 이제 그 흔적은 없다. 나는 그 기억을 되짚으려 종로1가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버스와 자동차들이 지나가면서 만들어진 바람은 내 몸을 때린다. 지나간 바람. 이것은 현재가 과거가 되면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나는 거리에서 과거를 맞는다.

Manic Street Preachers의 Motorcycle Emptiness를 들으며 거리를 걷는다. 음악은 느린 박자로 일정하게 흘러간다. 부표하는 기타 스트링의 찰랑임은 블루스(Blues) 톤의 무거움을 거부한다. 그 속에서 멜로디는 시간을 거슬러 간다. 이 노래를 듣고 있었던 모든 순간을 소환하는 멜로디, 나는 청각 피질의 신경작용 속에서 슬픔과 희열을 동시에 느낀다. 멜로디 속에 표류하는 기억은, 과거 미화 속에서 미소를 짓다가도 네온 싸인과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서 현실 속의 도시의 욕망에 몸서리 친다. 꺼져가는 나의 시간은 그 속에서 눈동자를 관통하고 나는 정신 없이 거리를 쏘다닌다.

 혼수상태와 같이 흘러가는 자아는 치밀어 오르다 잠식되고 잠식되고 잠식된다.


네온 싸인의 공허아래, 오토바이의 공허함 아래.


 교보문고. 그 곳에서 많은 책들을 그녀와 만났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제인 에어>, <순수의 시대>, <테스>. 특히 그녀가 사랑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대심문관 때문에 3번 완독했다는 그녀의 말소리가 이명처럼 들린다.

 명심하시오, 난 당신이 두렵지 않다는 점을, 명심하시오. 나도 광야에 있어봤고, 메뚜기와 풀뿌리로 연명해 봤으며, 당신이 인류에게 축복을 내렸던 그 자유에 나도 축복을 내렸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도 수를 채우려는 열망을 갖고서 당신이 선택한 사람들 속에, 강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 속에 포함되고 싶은 열망 때문에 애썼던 적이 있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대심문관 중에서


 그녀가 메고 있었던 검정색 숄더백의 향기가 생각난다. 머스크향 머금은 손길이 닿았던 가죽 숄더백은 가죽과 머스크향과 그녀의 체취가 섞여 있었다. 그녀가 립글로즈를 덧바르기 위해 솔더백을 열고, 그 속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행복의 정복>이 담겨져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지적 관능이 배어있는 종이 향기가 섞여져 나왔었다. 어디서도 맡을 수 없는 향기였다. 나는 향에 취해 그녀의 손을 보았었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책을 만지며 나던, 책과 손이 스치는 소리가 그녀의 손과 같이 앏은 소리를 냈다. 하얗고 고운 손.

그때 느꼈던 모든 감각이 서점을 가득 채운 사람 사이에 묻어있는 듯 하다. 그녀와 같이 보았던 책들은 여전히 같은 제목으로 교보문고 책장에 꽂혀있다. 서점을 가득 채운 연인들, 가족들, 친구들 그 인연들은 미지근함과 뜨거움 사이의 온기로 이어져있다.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 책과 책 사이에서 자신들을 기억 하지 않을까.





#4

교보문고에서 광화문 거리를 걷고 싶어 걸어간다.



그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도 하고, 침묵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우리에게 없었습니다.

그대여,

그대와 더불어 침묵하기를 내가 더욱 사랑했던 까닭입니다.

 칼릴 지브란 <사랑은 자유하는 삶입니다>

 

그때 그 침묵을 기억한다. 광화문 거리. 둘만 걷던 그 어둠. 그 어둠의 밀도 만큼 우리는 가까이 붙어 걸어갔다. 걷는 길에 우리의 팔이 조금씩 부딪힐 때면, 나는 그녀의 체온을 느꼈다. 체온 속에서 숨쉬고 있던 그녀의 생명력, 관능, 여성성, 부드러움. 슈트로엘리의 작품 <어머니와 아이>와 에곤 실레의 작품<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이 양립하는 그 모성애와 관능적 퇴폐를 그녀의 따스한 팔에서 느꼈었다. 여자만이 가진 그 따스함.

그녀가 그 거리에서 건넨 칼릴 지브란의 <사랑은 자유하는 삶입니다>를 기억한다. 그 책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손으로 책을 건넬 때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던 모습도 기억한다. 빛이 눈동자에 반사되어 반짝일 때 그 빛은 내 눈동자를 향했다.

그 눈동자를 기억한다.

아스라히 꺼져갔던 눈동자의 빛. 그빛은 나의 눈동자에 맺혔다. 우리는 같은 빛을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속에서 휘날리던 머리칼. 무언가 말하려는 듯 살짝 벌어진 입술. 입술 사이로 뻗어있던 무한한 어둠 사이로 그녀는 어떤 말들을 숨겨 놓았었던 것인지.

그녀가 주었던 <사랑은 자유하는 삶입니다>의 의미를 지금에서 알아 버린 것은, 바람이 가져다 주었던 과거의 기억 때문이다. 버스가 지나가면서 내 몸을 때렸던 그 바람. 그 바람이 광화문 앞에서 불어온다.

나는 계속 불어오는 바람에 지쳐 다시 271번 버스를 타러 종로로 향한다. 그녀의 피아노를 연주를 따라 노래하던 R.E.M의 Find the River를 들으며 걷는다.


Me, my thoughts are flower strewn Ocean storm, bayberry moon. I have got to leave to find my way. Watch the road and memorize This life that pass before my eyes. Nothing is going my way. The ocean is the river’s goal, A need to leave the water knows We’re closer now than light years to go.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 유난히 하얗던 그 손.



다시 홍대입구역으로 향하는 271번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돌아갈 때도 버스출구 옆 자리에 홀로 앉아 창문을 연다. 불어오는 바람은 아무리 몸을 때려도 더 이상 현재로 환원되지 않는다. 더 이상 바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서울 271번 버스, 기억 – 우동섭


#5

나는 버스 안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생각한다.



실패자. 낙인. 패배감.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삶은 부조리다.



1시간의 ‘서울 271버스 방황’은 나에게 부조리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시간이 허물어진 틈을 따라서 그 속에 잠깐 머물고 말면 모르핀을 맞는 것처럼 환각에 빠지고, 환상이 끝난 자리에 현실이 다시 자리한다는 사실은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271번 버스에서 내리며, 다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매연 섞인 바람이 불어온다. 도시의 빛을 멍하니 바라보며 집으로 향한다.



‘ 나는 당신을 그리워 하지 않아요. 나는 당신이 머물렀던 그때를, 시간속에서 조각난 기억속의 그때를 그리고 있을 뿐입니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십년이 지나면 지금 이순간은 어떻게 기억에 남을까. 지금 돌아본 당신이 머물렀던 그때는 당신의 기억속에 미화되어 남아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참 힘들었습니다. 미래도 희망도 없었어요. 절망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그때를 떠올리면 당신을 그리는 것 처럼 아련함이 다가올까요? 영원회귀를 믿나요? 난 믿지 않아요. 난 이 세계속에서 나의 모습이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되풀이 된다는 그 끔찍한 상상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영원회귀가 궁극적으로 말하는 순간의 조각들. 그 단일성과 중요함을 믿습니다. 당신이 있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거에요. 같은 삶을 살지도 않을 거고요. 난 당신과의 그 기억속에서는 영원회귀를 꿈꾸지만, 선택의 기로에 섰던 기억속에서는 새로운 운명을 선택 할겁니다. 난 지금이 끔찍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10년후 오늘을 기억할때에 나는 또 다시 오늘을 그리워 할 겁니다. 지금 이순간의 행복이나 아름다움이 괴로움을 덮을테니까요. 먼훗날 내가 죽어갈때, 나는 나의 인생을 뒤돌아 보게 되겠죠. 그때 나의 인생은 모두 아름다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눈물 흘리겠죠. 미칠듯한 그리움으로 말이죠.’



머리를 가득 채운 독백을 통해,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다.

나는,

집으로 조용히 들어간다.


글,사진 – 우동섭(xyu2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