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세상에서 불공평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 불공평을 스스로 극복하여야만 한다. 불공평을 극복하였어도 그 것을 즐겨서는 않된다.



난 왜 재벌집의 자식들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난 왜 김연아처럼 운동을 잘하지 못할까?

난 왜 서울대 박사들처럼 공부를 잘하지 못할까?



우리 딸들, 아빠가 원망스러울 때가 많지? 가장 많은 것을 해주어야 할 때 별로 해준 것이 없으니까. 그러면서 너희는 참 많은 것들이 불편해하겠지. 엄마아빠한테 책을 읽기만하면 딱 이해가 가고, 외워지는 천재적인 머리를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살 수있는 부자도 아니고.



참 세상은 불공평한 것같지. 그리고 그 불공평함의 원인이 아빠인 것도 그렇고. 아빠가 어렸을 때는 몰랐는 데, 할아버지로부터 독립을 해서 결혼하고 너희들을 키우다보니 부모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구나. 그런 거 보면 할아버지는 많은 것을 아빠에게 해주신거야. 이전에 당연히 할아버지가 해주셨던 것들, 이 사회가 당연히 해주어야 할 것들, 내가 당연히 누려야 했던 것들을 어느 순간 너희는 아빠가 누린 만큼 누리지 못하는 것을 보니 참 가슴이 아프다. 아빠도 그런 불공평함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어.
(경제에세이)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런데 너희가 느끼는 불공평이라함은 무엇이 있을까? 사람은 초코파이처럼 ‘맛있다’라는 하나의 평가기준만 있는 게 아니거든. 그 것은 학교에서의 역할이 다르고, 집에서의 역할이 다르고, 친구들과 만났을 때의 역할이 다르고…….. 누구나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거기에 따라 자신의 위치도 달라지기 때문이야. 그 것은 아마도 인간을 한두가지면만 보고 평가하기에는 인간은 다양한 능력과 역할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마이클 포터의 경쟁론에 의하면 기업은 경쟁자들에 비하여 어떻게 하면 차별화를 이루었는 가와 수익성이 얼마나 높은 가로 평가를 받지.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우선 인간은 어느 하나로 포지셔닝하기가 쉽지 않다. 보기 쉽게 맥킨지식 전략평가 매트릭스로 표현해보자. 언뜻 생각해보아도 몇 가지로 포지셔닝이 되지? 그리고 사회적인 역할이 많아질 수록 포지셔닝해야 하는 역할도 많아지고, 거기에 따른 평가가 높은 부분도 있고 낮은 부분도 있겠지.



그리고 그 역할을 잘할 때 본인은 그 것을 불공평하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못할 때는 잘하는 사람과 비교하여 불공평하다고 느끼게 되는 거지. ‘신자유주의’를 말할 때처럼 김연아선수가 피겨스케이팅에 대하여 누구에게 불공평하다고 느끼지 않고, 박태환선수가 수영에 대하여 불공평하다고 느끼지 않지. 재벌 집 자식들은 남들이 항상 자신을 돈으로 평가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고, 서울대 박사는 박봉의 시간강사를 벗어나고 싶어할 수도 있어. 본인들의 노력이 분명히 있었지만, 남들이 갖지 못한 타고난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불공평한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장애’인 것일거야. 건강이 나빠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말이야. 그런 점에서보면 우리 가족은 정말로 복받은거야. 아무도 아프지 않으니까. 물론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돈이 없어서 느끼는 불공평을 많이 느끼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 걸 보면 세상은 참 여러모로 불공평하다. 그리고 불공평은 항상 남과 비교하였을 때 느끼게 되는 상대적인 것이고 말이다. 만일 나만의 세계에서 혼자 산다면 난 누구에게도 열등의식이나 불공평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겠지.



그리고 다행인 것은 우리가 느끼는 많은 불공평중에서 어떤 것들은 스스로 극복이 가능하다는 점이야. 예를 들면 공부를 못하더라도 춤을 잘춘다거나 사진을 잘찍는다거나 미각이 발달해서 요리를 잘한다거나. 그 것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루어 질 수있는 부분이 많지. 현대의 정주영회장도 애초부터 잘 살았던 것은 아니고, 아빠 친구들중에는 교수가 많은 데 그들이 모두 다 학교다닐 때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야. 나중에 철이 들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하면서 노력을 한거지. 그게 중요한거야. 사회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불공평을 주지만, 그것을 극복한 사람에게는 더 많은 보상을 주는 시스템이야. 예를 들면 아빠 친구중에 소아마비이면서 건축사로 성공한 사람이 있어. 만일 그가 소아마비라는 것에 비관을 해서 스스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성공을 했을까? 그는 그가 할 수있는 것을 찾아냈고, 엄청난 노력을 해서 지금은 누구나 알아주는 학교설계분야의 으뜸이 되었어. 그러자 학교이외의 분야에서도 그에게 설계요청이 들어오고. 하두 바빠서 술먹자고 해도 얼굴보기도 힘들정도야. 그래도 그는 그 것을 즐기고 있어. 나름대로 아름다운 학교를 만든다는 자부심도 있고.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네가 느끼는 불공평이 많으면 많을수록 네가 사회에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이야. 예를들면 장애인들이 얼마나 불편을 느끼는 지 휠체어를 타고다니다보면 그게 단순히 계단만이 아니라, 버스도 지하철도 고쳐야 할 점이 많이 보이지. 게다가 그들이 할 수있는 일자리라는 게 훨씬 폭이 좁아지잖아. 그리고 어렸을 때 네가 했던 많은 것들이 아빠의 실패로 누리지 못하는 것들, 맛있는 것을 많이 먹지 못하고 해외 여행도 가지 못하고, 공부해야 할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성적이 잘 나오지 못하고. 실제로 아빠도 그런 불공평을 많이 느껴. 정말 불공평한 것을 느낄 때는 내가 사회의 시스템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느낌을 받을 때이지. 잘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난해졌어. 그럼 그 순간부터 항상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졌던 것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지. 예를 들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가난하기 때문에 이자도 더 내야하고, 가난해서 집을 못샀는 데 집값이 올라서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지고. 실제로 아빠도 그런 신분의 상승과 하강을 서너번 겪다보니 사회의 시스템중 많은 부분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되었지. 애초부터 당연하게 여겼던 들에 대한 생각이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시스템 때문에 불편해졌으니까. 다행히도 아빠는 다시 회복하여 보았고, 지금도 회복하고 있는 중이지. 아빠는 그렇게 여러 번의 실패를 겪고도 다시금 기회를 잡을 수있었고, 지금 너에게 이런 글을 쓸 수있는 것도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부여받은 혜택이라고 생각하지. 실제로 사업에서 실패한 많은 사람들은 단 한번의 재기의 기회도 부여잡지 못하고 끝난 경우가 많거든. 그런 사람들이 아빠와 비교한다면 굉장히 불공정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그런 불공평의 상당부분은 어떻게 느끼는 가의 문제도 있고, 남들이 못느끼는 불공평을 네가 느끼고 있다면, 너는 다른 사람보다 더 넓고 깊은 안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런 불공평이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못할 장벽이 아니라, 네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극복해야 대상으로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너희와 아빠가 같이 노력을 해서 우리가 겪었던 많은 불공평을 머지않은 장래에 극복할 날이 올거야.



그런데 ‘그걸로 끝!’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럼 이 사회가 발전이 없잖아. 그리고 네가 부딪치는 장벽이 없다는 것은 이미 너희 발전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그 불공평이 한때는 너에게 주었던 좌절을 남들이 여전히 겪고 있는 데, 너는 창문안에 앉아서 그걸 즐긴다?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하겠지. 왜? 넌 너의 노력으로 극복했으니까, 스스로 그 보상을 받아도 된다고 여긴다면 말이다. 아빠는 너희가 극복했던 그런 불공평을 하나하나 없애려는 노력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하는 그런 멋진 딸들이 되었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