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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설산하면 대개 강원 山群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번 겨울의 강원 산간지역 강설량은 야박한 편.

小雪과 大雪이 언제 지났는지 모를만치.

추위 또한 예년에 비해 독하지 않은 듯. 적어도 지금까진.

뭐 간간이 춥다고 호들갑 떠는 이들도 있긴 하나 겨울 한복판인 冬至도, 실제 가장 춥다는 小寒 조차 밍밍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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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산꾼들은 겨울설산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그나마 눈이 더 내린 중부 이남지역의 高山을 찾고 있다.

그중 단연 인기는 덕유산인가 보다.

티비 뉴스를 보니 덕유산은 초만원이다.

덕유산 향적봉 코앞까지 곤도라를 이용할 수 있어 발품을 덜 팔고도 高山雪景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雪山이 고파? 찾은 거창 남덕유산


그래서 올 첫 산행지로, 북적대는 덕유산 보다 조금 비껴나 있어 덜 붐빌 것 같은 남덕유산을 택했다.

12월엔 바쁜 업무와 잦은 송년모임 탓에 遠行은 피해 서울 근교산을 찾았다.

연말 끝날까지 이런저런 모임에 휘둘려 삭신은 쩔어 있었다.

결국 개인적으로 새해 첫날 의례인 일출산행도 제쳤다.

올 첫 설산행이라 덩달아 설렘도 갑절이다.



산행이란 게 늘 그렇다.

정상에서의 쾌감보다 그 과정이 즐겁다.

배낭을 챙기는 것부터 가슴이 뛴다.

산꾼들과 편한 만남도 더없이 좋다.

목젖까지 차오르는 숨가쁨 조차 즐길 수 있으니…



겨울 배낭은 꼼꼼히 챙겨야 한다.

스패츠와 아이젠, 썬글라스는 필수다.

산중 휴식 때 필요한 여벌의 방한재킷, 모자(비니,넥워머,바라클라바), 장갑, 양말, 매트, 그리고 비상용 로프(10m)와 구급키트(상비약, 압박붕대), 보온물통과 먹을거리 등을 넣다보니 배낭은 빵빵하게 각이 잡힌다.

이른 새벽, 배낭을 둘러메고 집문을 나서면 차디찬 공기는 애오라지 기다렸다는 듯 기분 좋게 폐부로 스민다.



집결장소인 지하철 7호선 군자역 5번출구로 나왔다.

해오름이 늦은 겨울이라 사방은 아직 어슴푸레한데도 산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낯익은 얼굴들이다.

수인사를 나누며 새해 덕담을 주고 받느라 수런거린다.

이 역시 산행을 위한 하나의 프로세스이기에 즐겁다.



만석(滿席)이다. 아니 오버다. 통로에 간이의자를 두개나 펴야 했다.

그만큼 설산행이 고팠던? 모양이다.

나눠받은 산행지도를 펼쳤다.

산행지는 거창 남덕유산(1,507m), 산행 코스는 영각사를 출발하여 영각재를 지나 남덕유산 정상을 찍고 월성치를 거쳐 황점에 도착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雪山이 고파? 찾은 거창 남덕유산


그러나 현지사정에 따라 나들머리가 바뀌기도 한다.

산악회 팀장이 마이크를 들었다.

“들머리로 잡은 영각사 쪽에 산악회 버스들이 몰려 지체된답니다. 하여 코스를 거꾸로 진행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버스가 도착한 곳은 황점(경남 거창 북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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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선 산객들은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손놀림이 익숙하다.

스패츠와 아이젠을, 목토시와 방한모를, 장갑 그리고 썬글라스까지 일사불란하게 차고, 끼고, 쓴 다음 산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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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눈(眼)이 시리게 맑았다.

응달진 골짜기에 쌓인 눈(雪)은 해쓱했다.

황점에서 월성재로 가는 골짜기가 ‘바람골’인데 바람은 없다.

대신, 줄지어 오르는 산객들의 뜨거운 숨소리와 바닥을 찍는 아이젠의 차가운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어우러져 골짜기의 적막함을 깨운다.

雪山이 고파? 찾은 거창 남덕유산


완만하던 길은 다시 가파른 설사면으로 이어진다.

눈에 묻힌 나무계단을 치고 오르자, 비로소 칼바람이 세차다.

목토시를 턱끝까지 올리고 반으로 접어 쓴 비니를 내려 귀를 덮었다.



월성재를 0.8㎞ 앞둔 지능선에 섰다.

들머리에서부터 3㎞, 정상까진 2.2㎞를 남겨놓은 지점이다.

땀을 훔치고 호흡을 가다듬고 나니 비로소 설경이 눈에 들어온다.

눈 속 산죽이 바람에 살랑댄다. 오가는 산객들에게 엄동설한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비방을 일러주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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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죽군락지를 지나고 다시 돌계단을 힘겹게 올라서니 ‘월성재’다.

백두대간 능선길에 이른 것이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1.4㎞만 가면 남덕유산 정상, 오른쪽 능선을 따라 2.9㎞를 진행하면 삿갓봉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산객들이 자신의 신체 조건과 체력에 적합한 등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경사도, 거리, 노면상태, 소요시간 등에 따라 ‘매우 쉬움’, ‘쉬움’, ‘보통’, ‘어려움’, ‘매우 어려움’ 등 5개 등급으로 나눴다.

들머리 황점에서 이곳 월성재까지는 각 2km씩 ‘보통’과 ‘어려움’이 교차하는 구간이다.

남덕유산 정상에서부터 영각사 방향 900m는 ‘매우 어려움’ 등급이며 다시 1km 지점까지 ‘어려움’이, 이 외엔 ‘보통’으로 정해진 코스다.

雪山이 고파? 찾은 거창 남덕유산


월성재에서 배낭을 내려 눈밭을 다졌다.

산행 중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산중오찬을 위해서다.

요즘 겨울산행의 대세는 간이 비닐텐트?인가 보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비닐 속에 먹을거리를 놓고 둘러앉은 풍경이 이제 낯설지 않다.



땀에 젖은 채로 3~40분을 앉아 있었더니 한기가 장난 아니다.

뜨거운 라면국물로 속을 데우긴 했으나 그때 뿐이다.

젖은 셔츠가 체열을 앗아간 탓이다.

이런 상태로 좀 더 머물면 저체온 현상이 염려된다.

옆 일행의 비닐막이 몹시도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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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서둘렀다. 갈 길이 멀어서가 아니라 단지 ‘추워서’다.

1,507m 남덕유산 정상에 이르는 백두대간 길은 은빛 찬란했다.

겨울햇살은 상고대 만발한 나뭇가지에 닿아 보석처럼 눈부셨다.

겨울왕국 속 환상의 꿈길을 거니는 기분이 이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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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꿈을 꾸듯, 홀린 듯 남덕유산 정상(1,507m)에 닿았다.

남덕유산은 전북 무주, 장수군과 경남 함양, 거창군 등 2道 4郡에 걸쳐 있다.

북덕유산에서 무룡산(1,491m)과 삿갓봉(1,418m)을 거쳐 남덕유산에 이르는 주능선 길이만 20㎞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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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山頂의 정상표시석 앞엔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많은 산객들이 줄을 서서 대기 중이다.

렌즈를 향한 얼굴 표정이 한결같이 맑고 밝다.

팍팍한 일상에서는 좀처럼 지을 수 없는 표정들이다.

여기서 저멀리 북덕유 최고봉인 향적봉까지 거리는 15km다.

끝없이 이어진 날 선 능선을 따라 마냥 내달리고 싶다.

남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가야할 능선길이 만만찮다.

가파른 벼랑의 철계단에 산객들이 올망졸망 붙어 있다.

계단 폭이 좁고 가팔라 교행이 쉽지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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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간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정한 탐방로 5등급 중 ‘매우 어려움’ 등급으로 분류된 코스이기도 하다.

山頂에서 10여 미터나 내려 디뎠을까?

몇 발자욱 앞서 걷던 일행이 아차하는 순간, 설사면에서 미끄러졌다.

매우 가파른데다가 설질은 물러 있어 미끄럼틀을 탄듯 40여 미터를 거침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
까마득한 벼랑 바로 1미터 전 나무 밑동에 사타구니가 걸려 천만다행으로 멈춰섰다.
주변을 오가던 산객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코앞에서 벌어진 위험천만한 실제상황을 목도한 터라 이후 ‘매우 어려움’ 등급의 가파른 철계단길에 이르러서는 너나없이 ‘조심 또 조심’하는 모습이다.

흘려듣던 말, ‘방심은 금물’, 이젠 각성하고 새겨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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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암봉에 설치된 철계단은 발디딤판이 좁은데다 곧추서 있어 철사다리나 다름없다.

눈이 얼어붙은 발판 또한 뒤꿈치 쪽으로 쏠려 있어 바짝 긴장하며 한 발 한발 내려딛다보니 하체 마저 후덜덜~

雪山이 고파? 찾은 거창 남덕유산


설산에 대한 허기를 그렇게 채우고 영각공원지킴터로 하산……. ‘아구찜’으로 마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