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대하여
– 딸에게 보내는 경제편지
저출산에 대하여
이 이야기만 나오면 엄마하고 아빠하고는 웃는다. 왜 그런지 알아? 우리는 이미 둘이나 낳고도, 10년이 지나니 까마득하게 잊고서는 셋째를 낳았는 데, 남들은 어떻게 알고 낳아보지도 않고, 아이를 나면 힘들다는 걸 알고는 하나도 낳지 않는 게 신기하다는 거지.



지금의 아빠 세대만하여도 대략 20대 후반에 결혼해서, 당연히 두명의 자식을 낳아서 결혼은 불가분하게 부모노릇과 연결되어 있었지. 그런데 요즘은 안 그래? 왜 안 그럴까? 그건 분명히 경제와 관계가 있지. 산업화하기 전에는 보통 3세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 제도였고, 아이들은 가족의 새로운 미래였고 행복의 요소였지. 그런데 산업화되고 핵가족화되었다가, 이제는 디지털시대로 들어서면서 가족의 유지가 옛날처럼 쉽지 않게 되었되잖아. 전에는 가계계승과 노후에 부양받을 것이라는 기대에 자녀를 중요시했지만 부부중심, 여성 위주의 가족 생활이 심화되면서 자녀관이 달라졌어. 장남위주의 가계 세습 풍속이 많이 희미해졌지. 또 여성의 사회활동이 증가하면서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독신, 이혼, 별거, 낙태가 증가하는 현상도 저출산율의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게다가 아이를 갖는 것의 이점들은 점차 사라지고, 대신에 그에 따른 비용이 증가되었지. 심지어는 ‘축복받은 자식에서 짐스러운 자식으로’라는 말도 있지 (우리는 너에게 절대로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가끔 속썩일 때는 빈 말로 한 적이 있어도 ……). 최근의 저출산율은 이처럼 가치관의 변화에서 비롯된 사회적 흐름이라 피임확대와 저출산 가정에 대한 지원등 정부의 강력한 인구억제 정책으로 낮아졌던 1960-1970년대와 달리 정부개입으로 출산율을 올리기는 쉽지 않아 보여. 너희도 들어보았지. 할아버지 세대에는 ‘셋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가 있었다가, 아빠세대에는 ‘둘도 많다’였거든. 그런데 요즘은 뭐라하니? ‘혼자는 싫어요, 동생을 갖고 싶어요’라고 하지. 정부에서 아무리 ‘많이 납시다, 더 많이 납시다’해도 안 낳지. 특히 천연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는 과거 경제성장 원동력이 젊고 건강한 노동력이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다른 나라보다 더 심각해질 수있어.



이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슬픈 이야기야!

삶이 불안정해지고, 나아지지 않다보니 결혼을 미루고 아이를 미루는 거잖아. ‘생존본능이 종족유지 본능’을 억누르고 있는 거지. 분명히 각 개개인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한 거라고 볼 수도 있어. 왜냐하면 현재의 경제적 상황이 아이를 갖기에는 쉽지 않게 되어있고, 그 중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한거니까.



그런데 개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반드시 사회 전체에서 보았을 때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걸, 이 저출산 현상이 보여주고 있지. 자 봐봐~, 출산율이 급락하니 아이가 줄어들고, 아이가 줄어들면 장래의 생산인력인 경제활동 인구가 감소하고, 그런데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자꾸만 늘어나니 노인연령은 늘어나지. 그럼 어떻게 해야되? 줄어든 청년들이 많아진, 노인들을 부양해야 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아, 너는 엄마아빠하고 할머니만 부양하면 된다고. 게다가 너희는 형제가 3명이니 걱정없다고?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자고. 이제는 네 친구들중에도 형제가 거의 대부분 2명, 드물게는 3명, 4명은 거의 없고, 흔치않게 형제자매가 없이 혼자인 친구들이 많지. 혼자인 친구를 예로 들면, 부모님에 친가뿐만 아니라 외가까지 부양해야 할 일이 생기지. 이런 일이 사회 전체적으로 벌어진다고 생각해봐. 과거에는 항상 청장년층이 많고, 노인연령은 일찌감치 돌아가셔서 더 많은 자식들이 한두분의 부모님을 모시는 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는 데, 이게 이제는 거꾸로 되었지.



자, 이제까지는 기성세대의 경제학자 이야기였고, 그럼 요즘 여성들의 이야기도 들어보아야지. 내가 보기에는 이 저출산의 문제를 풀려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야해?

1) 아이를 낳아서 키우기에 부담이 너무 큰 데 그걸 어떻게 줄여줄 것인가?,

2) 아이를 낳으면 잘 살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줄 수있는가?



그런데 사실 위 두가지 문제를 해결할 만한 대책은 어느 나라도 갖고 있지 않아. 여성의 출산문제를 고민할 때 가장 자주 나오는 사례중의 하나가 스웨덴이나 핀란드같은 북유럽인데, 그 나라들도 만만치 않아. 내가 겪어본 핀란드는 가임연령의 여성의 채용을 꺼리는 데, 임신을 하면 정부의 보조금도 있지만 기업에서 부담해야 할 부담이 만만치 않거든. 물론 신문지상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이미 취업을 한 상태에서 아이를 가진 엄마들의 이야기이지. 일단 어느나라나 공통적으로 나오는 해결책을 둘러보면 출산비지원, 육아시설 확보, 다자녀 세제혜택, 교육비 지원, 육아휴직 활성화, 여성들을 위한 탄력적 근무제 실시등이 있지.



그 다음으로 아이를 낳으면 잘 살 수있는 바탕을 만들어 줄 수있는 가의 문제인데, 내가 보기에는 이게 더 어려운 것 같아. 기왕에 낳은 아이는 현재의 경제상황으로 상당부분 감당이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앞으로도 일자리가 늘어난 다는 보장이 없다는 거야. 게다가 미래의 일은 인간의 손을 필요로 하는 작업들이 더 줄어들 것으로 보는 미래학자들이 다수이지. 따라서 미래에 젊은 층이 많다고 해서 노년층을 부양할 수있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가 없는 상황이지.



이런저런 면을 보면 세상은 아이를 낳기에 쉽지 않은 환경이지. 그렇지 않아도 요즘의 직장체계가 과거보다 이동이 잦아져서 더욱 그렇지. 그래서 더해지는 걱정이 부모가 출산 여부를 결정할 수있게 됨에 따라 우수한 인력들이 사회적 성취감 때문에 아이를 적게 가질 것이라는 우려감이야. 하지만 아빠는 그건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 현재의 능력이 남보다 낫다고 해서 반드시 아이를 위하여, 그리고 사회적으로 좋은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거든. 아이를 낳고자 하는 부모야말로 생에 대한 의욕과 이타심이 있는 부모로서, 아이의 기본적 소양에 대단히 유익한 조건이야. 뛰어난 능력이 있지만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하여 부모가 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다면, 스스로의 삶에 대하여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다양성 보장되는 이 사회에서 사회적 필요를 이유로 강요하기는 어렵지. 그 들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해. 대신에 정부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식을 갖게 하여 교육의 부담을 늘리는 것보다는, 이 세대를 이끌어 갈 세대를 위하여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부모들을 위한 보상으로‘양육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게 아빠의 생각이야.



아빠는 너희들도 가능한 한 많은 아이를 낳았으면 해. 그러면서 엄마아빠가 너희한테 받았던 고통과 재미를 너희도 느꼈으면 하지. 그게 살아가는 재미라는 걸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게 아빠의 기대이지. 물론 너희가 그런 재미를 충분히 느낄 만한 여건들을 같이 만들어 가도록 하자.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qkdaltnr777/30088878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