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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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왼발 엄지발톱이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버지 재떨이를 들고 동생과 장난치다 떨어뜨려 다쳐서다. 대포 탄피 밑동을 잘라 만든 재떨이는 무거웠다. 검붉은 피가 솟구쳐 나오더니 발톱이 빠진 자리에 새 발톱이 나오지 않았다. 인젠 익숙해졌는데도 발톱 없는 왼발을 볼 때마다 그날이 떠오른다. 상흔(傷痕)이란 게 그렇다. 잊히질 않는다. 양말 벗고 있을 땐 언제나 왼발 위에 오른발을 올려 감추는 건 그때부터 가진 버릇이다. 해수욕장에서는 왼발 위에 모래를 얹어 감추기도 했다. 날이 추우면 왼발 엄지가 유독 시리다. 아버지는 전란 중에 오른쪽 다리를 잃었고 왼쪽 발가락도 새끼발가락을 빼곤 모두 잃었다. 그 새끼발가락 발톱이 파고들어 아플 때면 상처를 입던 그 날의 기억이 되살아나 아버지는 더욱 못 견뎌 했다.

손발톱을 깎던 아버지가 내 손발톱을 깎아줬다. 발톱 없는 왼발 엄지를 한참이나 만져줬다. 그때 뭐라고 알아듣기 어려운 말씀을 하셨다. 몇 년 지나 우리집을 지을 때 똑똑히 알게 됐다. 사연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지시한 대로 하지 않자 공사감독인 대목장과 심하게 언쟁을 벌였다. 앉아있던 아버지가 지팡이를 거꾸로 들어 손잡이로 서 있는 대목장 목을 잡아당겨 고꾸라뜨렸다. 그리고는 넘어진 이의 발목을 양손으로 잡아 몸을 뒤집어 무릎을 꿇렸다. 놀랄 틈도 주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대목장 지휘 아래 집이 완성되었으니 그날 일은 잘 마무리 지어진 듯했다. 그는 멍든 발목을 만지며 손아귀 힘이 무섭다고 엄살을 떨었다.

궁금증은 그날 밤에 아버지가 풀어줬다. “사람 발톱은 피부에서 돋아나는 부속기관이다. 뼈에서 돋아나는 동물 발톱에 비하면 형편없다. 그러나 발톱은 발가락을 보호하는 방탄복이다. 그 상흔은 오래 간다”라며 “다른 사람은 가졌는데 너는 없으니 단점인 건 분명하다”라고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때 쓴 고사성어가 ‘절장보단(絶長補短)’이었다.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에 보탠다는 말이다. 장점으로 단점을 보완한다는 뜻이다. 맹자(孟子) 등문공상편(滕文公上篇)에 나온다.

아버지는 재활훈련 중에 다리가 없어 부실한 하체를 보강하는 방법으로 상체를 단련했다고 했다. 서서 상대하지 않고 앉아서 서 있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호신술은 꾸준하게 연마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날을 기억하며 “지팡이 속에 예리한 칼을 숨겼으나, 너희들 태어나고부터는 무기를 버리고 나무를 손수 조각하듯 며칠이나 깎아 지팡이를 만드셨다”라고 기억했다. 아버지는 “신체는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한쪽이 부실하면 그걸 극복하기 위해 특정한 기능에 치중한 특화된 운동과 방법으로 다른 쪽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신체는 조화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쪽이 부실하면 다른 쪽이 강해져 기능을 대신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절장보단과 다른 말씀을 했다. “장점을 세상 누구보다 더 뛰어나게 강점으로 만들어라. 그러면 단점이나 약점은 묻힌다. 상대가 넘볼 수 없을 만큼 강하면 상대는 약점을 눈치채지 못한다”며 “맹자가 말씀하셨지만, 약점을 강점만큼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살아가며 포기한 약점이나 단점은 그걸 강점이나 장점으로 가진 이를 곁에 두면 된다”라고 아버지는 몇 번이나 강조했다.

살아가며 수포자처럼 약점을 더는 감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가진 강점을 찾아 남들이 넘볼 수 없을 만큼 만드는데 진력했다. 지금까지는 그게 옳았다. 그런 마음은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꿰뚫어 보는 분별력을 키워줬다. 손주에게도 물려줘야 할 인성이다. 세심한 관찰과 노력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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