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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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잘 못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벌 받은 기억은 생생해도 잘못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방 문을 박차고 달려나가 맨발로 도망쳤다. 아버지의 화난 음성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골목길을 뛰었다. 이젠 됐다 싶어 숨을 고르며 뒤돌아보니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뒤쫓아왔다. 골목을 빠져나와 밭길로, 논길로 내달렸다. 아버지가 따라오며 뭐라고 하셨지만, 똑똑히 듣질 못했다. 큰길로 들어섰을 때는 거의 잡힐뻔했다. 산 쪽으로 난 언덕을 숨차게 뛰어오를 때다. 뒤에서 쿵 하며 비명이 들려 돌아보니 아버지가 자전거와 함께 나뒹굴었다.

잘못됐을까 봐 어린 마음에 겁이 덜컥 나 달려가 일으켜 세웠다.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은 아버지는 내 손을 이끌어 앉혔다. 둘은 서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을을 내려다보고 나란히 앉았다. 그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남과 경쟁할 때 절대 먼저 포기하지 마라. 네가 지치면 마찬가지로 상대도 당연히 지친다. 먼저 포기한 쪽이 지는 거다.”

그때 말씀하신 것 중에 화살도 힘 떨어진다라고 하신 게 생각나 찾아봤다. 강노지말(强弩之末)이란 고사성어다. 힘센 쇠뇌에서 튕겨 나간 화살도 마지막에는 얇은 천조차도 뚫지 못한다는 말이다. 강한 군대도 원정(遠征)을 가면 지쳐서 군력(軍力)이 약화한다는 뜻이다. 한서(漢書) 한안국전(韓安國傳)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나라를 세운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한나라보다 몇 배의 군사력을 지닌 초()나라 항우(項羽)를 패배시킨 후, 흉노(匈奴) 정벌을 위해 출전했다가 포위되고 말았다. 이때 진평(陳平)의 묘책으로 포위망을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한 고조는 흉노와 화약을 맺고 해마다 공물(貢物)을 보냈다. 무제(武帝) 때 평화조약을 무시하고 북방을 번번이 침범하는 흉노족을 무력으로 응징하기 위해 대신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때 어사대부(御史大夫) 한안국(韓安國)이 무력응징을 반대했다. “강한 쇠뇌에서 힘차게 나간 화살이라도 최후에는 힘이 떨어져 노()나라에서 만든 얇은 비단조차 뚫을 수가 없습니다[强弩之末 不能入魯縞]. 마찬가지로 아무리 강한 군사력도 장도(長途)의 원정에는 여러모로 군사력이 쇠퇴하는 법입니다.” 이 고사는 세력이 강했던 것도 그 쇠퇴하는 시기에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걸 비유한다.

살기등등한 화살처럼 누구나 힘이 있고 누구나 마지막에는 지친다고 전제한 아버지는 모두 지쳐있을 때 승리하기가 쉽다. 일이 성사되는 것도 마지막 힘에서 나온다. 누구나 마지막 힘쓰기는 싫어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마지막 힘이란 뜻의 말은 많다. ‘온 힘을 쏟는다. 혼신(渾身)의 용기를 내다. 다부지게 마지막 기운을 내다. 다시금 힘을 모았다. 젖먹던 힘까지 냈다. 있는 힘을 다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그만큼 마지막 힘쓰기가 어렵단 얘기다. 아버지는 마지막 힘은 너를 넘어서는 힘을 말한다. 너의 한계를 뛰어넘어라. 당연히 어렵다. 어려울 땐 내가 이 정도밖엔 안 되냐?’고 소리쳐라. 그러면 너도 몰랐던 힘이 솟을 거다. 그렇게 너는 이길 거다라고 하셨다.

살아오며 힘들 때마다 즐겨 쓰는 말이다. 그러면 버틸 수 있었다. 그런 마지막 힘이 끈기라는 인성이다. 그 또한 손주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성품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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