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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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섯 살 때다. 남동생까지 낳은 뒤 분가한 아버지는 산을 개간(開墾)해 밭을 일구셨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녘까지 몇 날을 땀 흘려 일하신 부모님은 우리 다섯 식구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큰 밭을 마련했다. 분가한 뒤 태어난 돌 지난 여동생을 업고 점심으로 감자를 삶아 밭에 갔던 기억이 새롭다. 동생과 돌멩이를 골라 밖에 내다 버리며 개간 일을 도운 기억도 또렷하다.

일이 거의 끝날 무렵, 무슨 일 때문에 아버지가 화가 몹시 났는지는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 다만 아버지가 뒤에서 내 다리를 양손으로 잡고 들어 올려 큰 나뭇가지를 잡으라고 한 기억은 생생하다. 내려다보니 떨어지면 죽을 것처럼 높았다. 아버지는 나무에 매달린 나를 두고 말리는 어머니를 끌다시피 산을 내려가 버렸다. 땅과 부모님을 번갈아 쳐다보며 큰 소리로 울었다. 사방이 어두워졌을 때는 무서워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울음이 더는 소용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나뭇가지 잡은 팔을 힘껏 당겨 다리를 나무에 걸쳤다. 그렇게 팔다리를 움직여 몸을 밀어 나무를 내려왔다. 집에 돌아온 나를 본 어머니는 울기만 했고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곤한 잠을 자다 잠결에 누군가 내 팔다리를 만진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때 맡은 아버지 담배 핀 입 냄새는 지금도 기억난다.

아버지는 ‘절벽을 잡은 손을 놓는다’라는 뜻의 ‘현애살수(懸崖撒手)’ 고사성어를 자주 쓰셨다. 그때마다 어릴 적 나뭇가지에 매달리게 했던 기억이 되살아났지만, 아버지는 거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당신의 자식이 외울 수 있을 만큼 여러 번 설명했다. “여러 불경에 나오는 말이다. 손 떼면 죽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생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소한 것에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다. 절벽에서 미끄러지다 간신히 움켜쥔 나뭇가지에 연연하면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 성어는 여러 곳에 나온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중국 송(宋)나라 선사 야부도천(冶父道川)의 금강경(金剛經) 해설을 시로 표현한 ‘게송(偈頌)‘이다. “나뭇가지 붙잡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라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대장부로다[得樹攀枝未足奇 懸崖撒手丈夫兒].” 결단력이 부족함을 일깨우려고 알려준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한 백범(白凡) 김구(金九)의 좌우명으로도 유명하다.

아버지가 특히 강조하신 말씀이다. “살면서 닥치는 위기는 수없이 많다. 걱정이나 근심만 하면 길이 보이지 않는다. 궁리해라. 그래야 살길이 보인다. 무언가 잡고 있으면 의지하게 마련이다. 집착하기만 하고 더 위로 오르려고만 하다가는 가진 것마저 잃는다. ‘망설이는 호랑이는 벌보다 못하다.’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이 한 말이다. 주저하지 마라.”

그날 나뭇가지 잡은 팔을 당겨 다리를 나무에 걸칠 걸 생각한 것은 지금 되돌이켜 봐도 신통하다. 팔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다리를 걸칠 의지는 ‘할 수 있다’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무릇 자신감은 간절함과 끈기에서 비롯된다. 자신감에서 결단의 용기와 상황을 돌파할 힘이 나온다. 그런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큰 인성이 신중성이다. 행동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숙고하는 경향인 신중함은 매사를 성공으로 이끄는 성실성의 원천이다. 손주에게도 무엇보다 먼저 가르쳐주고 싶은 인성이다. 현애살수는 신중성을 되뇌게 해줘 내 삶을 이끈 고사성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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