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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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다니던 시절, 한자 ‘참 진(眞)’자를 쓸 때였다. 네모 칸에 맞춰 ‘눈 목(目)’자를 마칠 즈음 위에 붙은 ‘비수 비(匕)’를 ‘칼 도(刀)’로 잘못 쓴 걸 알았다. 글자에 얼른 빗금을 쳤다. 그래도 맘에 안 들어 동그라미를 계속 둘러쳐서 글자가 보이지 않게 시커멓게 칠했다. 지켜보던 아버지가 냅다 호통치며 그때 하신 말씀이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함부로 바꾸지 마라!”

아버지는 말씀이 길었다. 다리에 쥐가 나도록 꿇어 앉혀놓고 길게 말씀하셨다. 그날도 그러셨다. 아버지가 덧붙인 말씀을 알아들은 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쓰던 글자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 바로 고치거나 지울 일은 아니다. 시작한 글자는 틀린 대로 마무리해라. 틀린 글자는 정정 표시를 하고 제대로 된 글자를 다시 써라. 그래야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온전하게 알 수 있다. 저렇게 새까맣게 뭘 시도한 건지도 모르게 칠해놓으면 반성과 성장의 기회를 잃는다. 더욱이 너를 지켜보거나 따르는 이들은 우두망찰하게 된다. 가던 길을 갑자기 멈춰서서 없던 일처럼 해버리면 너를 따르는 이들은 뭐가 되느냐. 모름지기 언행은 한결같아야 한다.”

아버지는 고작 중학생인 내게 낯선 용어인 일관성(一貫性)을 말씀하셨다. 그날 이후에도 잔소리처럼 말씀하셔서 외우게 됐다. 일관성은 일이관지(一以貫之)에서 왔다.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온다. 공자(孔子)가 제자 자공(子貢)에게 한 말에서 비롯했다.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모두 기억하는 줄로 아느냐? 아니다. 나는 하나로 꿸 뿐이다[予一以貫之].” 공자의 사상과 행동이 인(仁) 하나의 원리로 통일되어 있다는 뜻이다. 논어 이인편(里人編)에서 공자가 증자(曾子)에게 한 말에도 나온다. “삼(參)아,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었느니라[吾道一以貫之].” 증자의 설명이다. “선생님의 도는 충과 서일 뿐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巳矣].” 충성과 용서가 곧 인을 달성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 후부터 손댄 일은 성사(成事)에 뜻을 두었다. 시작하면 반드시 끝을 맺었다. 그리고 매사에는 열정을 가지고 정성을 다했다. 그렇게 평생 지켜온 습성이 일관성이다. 오래 생각하되 쉬이 바꾸지 않는다. 믿음은 함부로 바뀌지 않는 데서 나온다. 내가 수시로 바뀌면 주변에서 다가오지 않는다. 자식과 손주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첫째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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