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건물 내에서 관리권이라는 명분하에 단전단수조치와 같은 횡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전단수조치와 같은 조치를 관리주체측에서 어렵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이런 행위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지난 대법원 판결의 영향이 적지않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즉, 대법원 1994. 4. 15. 선고 93도2899 판결에 의하면, 어떠한 행위가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인지는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서 합목적, 합리적으로 가려져야 할 것인바, 정당행위를 인정하려면 첫째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상당성, 둘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셋째 보호이익과 침해이익과의 법익균형성, 넷째 긴급성, 다섯째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피고인이 시장번영회의 회장으로서 시장번영회에서 제정하여 시행 중인 관리규정을 위반하여 칸막이를 천장에까지 설치한 일부 점포주들에 대하여 단전조치를 하여 위력으로써 그들의 업무를 방해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피고인이 이러한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가 단전 그 자체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위 관리규정에 따라 상품진열 및 시설물 높이를 규제함으로써 시장기능을 확립하기 위하여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시행한 것이고 그 수단이나 방법에 있어서도 비록 전기의 공급이 현대생활의 기본조건이기는 하나 위 번영회를 운영하기 위한 효과적인 규제수단으로서 회원들의 동의를 얻어 시행되고 있는 관리규정에 따라 전기공급자의 지위에서 그 공급을 거절한 것이므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것이고, 나아가 제반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행위는 법익균형성, 긴급성, 보충성을 갖춘 행위로서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는 것이므로 피고인의 각 행위는 형법 제20조 소정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인정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시장번영회 회장이 이사회의 결의와 시장번영회의 관리규정에 따라서 관리비 체납자의 점포에 대하여 한 단전조치에 대해서도 업무방해죄의 무죄로 선고된 바 있다(대법원 2004. 8. 20. 선고 2003도4732 판결).

이런 무죄판결이 잇다르자, 관리주체로서는 단전조치를 가벼이 생각하는 마음을 은연중에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위 사안들에서는 비록 결과적으로 무죄가 선고되기는 했지만, 형법 제20조의 정당성 요건 즉, 법익균형성, 긴급성, 보충성을 모두 갖춘 경우에 예외적으로 단전조치가 허용된다고 대법원이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 이후에 선고되고 있는 일련의 판결 역시 이런 기준을 분명히 하고 있다. 관리주체의 관리권 남용과 관련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단전단수조치의 불법성 여부에 대해 엄격한 판단을 하고 있는 최근의 판결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 대법원 2005. 3. 10. 선고 2004도341 판결
임대차계약의 내용에 따라 임차인이 영업하는 점포를 임대인이 임의로 자물쇠로 잠그고 임차인의 간판을 철거해 버린데 대해 업무방해죄로 기소된 사안에서 명도판결을 거치지 않고 일정한 경우에 임의로 명도하기로 하는 계약(합의)의 유효성 여부에 대한 논란에 대해, “--강제집행은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사법권의 한 작용을 이루고 채권자는 국가에 대하여 강제집행권의 발동을 신청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을 뿐이므로, 법률이 정한 집행기관에 강제집행을 신청하지 않고 채권자가 임의로 강제집행을 하기로 하는 계약은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민법 제103조에 의하여 무효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여, 임의명도계약자체를 무효라고 판단



■ 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5도8074 업무방해 사건
임대차계약서에 근거한 임대인의 일방적인 단전조치에 대해, 임대차계약상의 근거가 있다 하여도 이러한 피해자(임차인)의 승낙은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사건에 있어서와 같이 피해자측이 단전조치에 대해 즉각 항의하였다면 그 승낙은 이미 철회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 다음, 차임이나 관리비를 단 1회도 연체한 적이 없는 피해자가 임대차계약의 종료 후 임대료와 관리비를 인상하는 내용의 갱신계약 여부에 관한 의사표시나 명도의무를 지체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종료일로부터 16일 만에 피해자의 사무실에 대하여 단전조치를 취한 피고인의 행위는 그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다른 적법한 절차를 취하는 것이 매우 곤란하였던 것으로 보이지 않아 그 동기와 목적이 정당하다거나 수단이나 방법이 상당하다고 할 수 없고, 또한 그에 관한 피고인의 이익과 피해자가 침해받은 이익 사이에 균형이 있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으므로, 이 사건 단전조치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사무실 임대를 업으로 하는 피고인이 위와 같은 사정에서 일방적으로 취한 단전조치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오인한 것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


■ 대법원 2006.6.29. 선고 2004다3598,3604 판결 【채무부존재확인및손해배상·채무부존재확인등】

특별승계인인 원고가 체납된 관리비 중 공용부분 관리비를 승계한다고 하여 전(前) 구분소유자의 관리비 연체로 인한 법률효과까지 승계하는 것은 아니어서, 원고가 낙찰로 인해 구분소유권을 취득하였다는 점만으로 원고가 승계된 관리비의 지급을 연체하였다고 볼 수 없음은 분명한 것이므로, 원고가 구분소유권을 승계하였음에도 전 구분소유자에 대해 해 오던 단전·단수 등의 조치를 유지한 것은 관리규약에 따른 적법한 조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나아가 단전·단수 등의 조치가 적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조치가 관리규약을 따른 것이었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그와 같은 조치를 하게 된 동기와 목적, 수단과 방법, 조치에 이르게 된 경위, 그로 인하여 입주자가 입게 된 피해의 정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어 위법성이 결여된 행위로 볼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 할 것인데, 이 사건의 경우 원고에 대하여 행하여진 당초의 단전·단수 등의 조치가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원고가 이를 다투며 관리비 지급을 거부하였다는 것이므로, 그런 와중에 3개월이 경과됨으로써 3개월 이상 관리비 연체라는 관리규약상의 요건이 충족되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종전부터 계속되어 오던 피고의 위법한 단전·단수 등의 조치가 그 시점부터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는 행위로서 적법행위로 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2007. 1. 11. 선고 2005가합90730호 판결

전 임차인이 행한 상가 공용부분 훼손행위 (화단이축, 출입구설치)에 대하여 점포 소유자 및 현 임차인에게 관리단규약에 따른 제재금을 부과하고, 이를 납부하지 않자 단전조치를 감행한 사건에서, 점포 소유자는 제재금을 부담할 의무가 있음을 인정한 반면, 현 임차인은 제재금을 부담할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다음(집합건물법 제42조에서 정한 바에 따라 점유자도 구분소유자와 동일한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점유자가 부담하는 의무라는 것은 점유기간 중의 사용에 대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라고 판시), 단전단수 등의 조치가 적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으려면 그 조치가 관리규약을 따른 것이었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그와 같은 조치를 하게된 동기와 목적, 수단과 방법, 조치에 이르게 된 경위, 그로 인하여 입주자가 입게 된 피해의 정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어야 하는데, 제재금은 전기료나 기타 순수한 관리비에 비하여 그 체납에 의하여 공동생활유지에 지장을 주는 정도가 크지 않고 그 납부를 강제할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 반면, 단전조치로 인하여 발생한 피해는 심각한 것이었으므로, 단전단수조치는 현 임차인은 물론 점포 소유자에 대해서도 상당성을 결여한 위법한 것이다.


<참고법령>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2조 (규약 및 집회의 결의의 효력)
①규약 및 관리단집회의 결의는 구분소유자의 특별승계인에 대하여도 효력이 있다.
②점유자는 구분소유자가 건물이나 대지 또는 부속시설의 사용과 관련하여 규약 또는 관리단집회의 결의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와 동일한 의무를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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