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客至(객지), 杜甫(두보)
[한시공방(漢詩工房)] 客至(객지), 杜甫(두보)

客至(객지)

杜甫(두보)

舍南舍北皆春水(사남사북개춘수)
但見群鷗日日來(단견군구일일래)
花徑不曾緣客掃(화경부증연객소)
蓬門今始爲君開(봉문금시위군개)
盤飧市遠無兼味(반손시원무겸미)
樽酒家貧只舊醅(준주가빈지구배)
肯與隣翁相對飮(긍여인옹상대음)
隔籬呼取盡餘杯(격리호취진여배)

[주석]
客至(객지) : 손님이 오다.
杜甫(두보) : 시성(詩聖)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성당(盛唐) 시기의 대시인으로 자(字)는 자미(子美), 호(號)는 소릉(少陵) 또는 두릉로(杜陵老)이다.
舍南(사남) : 집 남쪽, 곧 집 앞. / 舍北(사북) : 집 북쪽, 곧 집 뒤. / 皆(개) : 모두, 다. / 春水(춘수) : 봄물.
但見(단견) : 다만 ~이 보일 뿐이다. / 群鷗(군구) : 떼를 지은 갈매기, 갈매기 떼. / 日日(일일) : 날마다. / 來(래) : 오다.
花徑(화경) : 꽃길. / 不(부) : ~을 하지 않다. 아래의 ‘曾緣客掃(증연객소)’를 부정하는 말이다. / 曾(증) : 일찍이. / 緣客掃(연객소) : 손님으로 인하여 <길을> 쓸다. 손님이 온다고 하여 길을 쓴다는 말이다.
蓬門(봉문) : 쑥대로 만든 사립문. 가난한 사람의 집이나 자기 집을 낮추어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 今(금) : 지금, 오늘. / 始(시) : 비로소, 처음으로. / 爲君開(위군개) : 당신을 위하여 열다. 여기서 ‘君’은 손님으로 온 ‘최명부(崔明府)’를 가리키는데, 명부는 현령(縣令)의 이칭이다.
盤飧(반손) : 소반(小盤)의 밥. / 市遠(시원) : 시장이 멀다. 이 두 글자는 ‘盤飧無兼味(반손무겸미)’ 사이에 삽입된 말이다. / 無兼味(무겸미) : 맛을 곁들일 것이 없다. 밥을 맛있게 먹을 반찬이 없다는 뜻이다.
樽酒(준주) : 술동이에 담긴 술. / 家貧(가빈) : 집이 가난하다. 이 두 글자는 ‘樽酒只舊醅(준주지구배)’ 사이에 삽입된 말이다. / 只(지) : 오직, 다만. / 舊醅(구배) : 오래된, 거르지 않은 술. 곧 묵은 술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새로 빚은 술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보잘것없는 술이라는 뜻이 된다.
肯(긍) : ~을 수긍하다, ~에 동의하다. / 與隣翁(여인옹) : 이웃 노인과 함께. / 相對飮(상대음) : 서로 마주하여 <술을> 마시다.
隔籬(격리) : 울타리 너머, 울타리 너머로. / 呼取(호취) : 부르다, 불러와서. ‘取’는 동사 뒤에 붙는 어조사로 쓰였으며 뜻이 없다. / 盡餘杯(진여배) : 남은 술을 다 비우다.

[번역]
손님 오심에

집 앞이며 집 뒤가
모두 봄물이라
그저 보이는 건
날마다 오는 물새 떼 뿐
꽃길도 여태
손님 때문에 쓴 적 없고
쑥대 사립문도 당신 위해
오늘에야 비로소 열었답니다
시장이 멀어 소반의 밥은
맛 곁들일 것도 없고
집안 궁색하여 동이 술도
그저 오랜 동동주뿐이지만
이웃집 노인과 마주하여
마시는 것도 괜찮으시다면
울타리 너머로 그를 불러
남은 술 다 비워 보지요

[번역 노트]
누가 무어라 하던 두보(杜甫)는 율시(律詩)의 지존(至尊)이다. 두보가 세상을 떠난 뒤로 무려 12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종합적으로 따져 두보를 능가하는 율시를 지은 시인은 여태 없었다. 심지어 두보와 함께 당시(唐詩)의 양대(兩大) 봉우리를 이루었던 이백(李白)조차도 율시만큼은 두보에게 적수가 되지 못하였다. 그러니 후대의 숱한 사람들이 앞 다투어 두보의 율시를 배우려고 애썼던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바로 그러한 두보의 율시 가운데 명편으로 칭송되는 이 시는, 당나라 고종(高宗) 상원(上元) 원년(760)에 두보가 성도(成都)의 초당(草堂)에 거처하고 있을 때 지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두보로 하여금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쓰게 한 그 ‘손님’은 누구일까? 두보 스스로가 이 시의 원주(原注)에서 ‘손님’을 최명부(崔明府)로 밝히고 있고, 두보의 외숙(外叔)이 명부라는 벼슬을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손님’을 두보의 외숙으로 간주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더욱이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또 다른 율시인 「빈지(賓至)」의 ‘賓’이 손님을 깍듯하게 예우한 것이라면, 「객지(客至)」의 ‘客’은 손님을 친근하게 일컬은 것이므로 아무래도 ‘손님’을 두보의 외숙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두보가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꽃길도 쓸지 않고, 쑥대로 만든 사립문도 오랜만에 열게 되었을 정도로 고적하게 봄날을 보내고 있을 즈음에, 결코 어렵지 않은 ‘손님’이 찾아와서 기쁨이 배가(倍加)되었을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빈 골짜기에 반갑게 울리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라는 뜻의 공곡족음(空谷足音)이라는 성어가 이 무렵 두보의 심사에 딱 들어맞지 않았을까 싶다.

두보가 가난을 말하기는 했지만 슬픔이 없으므로 그 가난조차 오히려 아름답게만 보인다. 가진 자들이 산해진미를 곁들이며 값비싼 술을 마실 때, 오래된 동동주라도 마실 수 있는 삶이라면 그럭저럭 만족스럽지 않겠는가! 그리고 두보가 이웃 노인네를 술친구로 청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손님’에게 물은 것은,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이 “말 술 있거든 이웃을 부르라![斗酒聚比隣]”고 노래한 뜻과 맥락이 어느 정도 닿아 있다. 한둘만이 누리는 즐거움도 때로는 필요하겠지만, 술은 대개 여럿이 함께 할 때가 좋은 법이다. 궁즉통(窮則通)이라 했던가! 코로나로 인해 대면 술자리가 부담스러워지자 급기야 문명의 이기(利器)를 빌어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얼굴을 보면서 술을 마시는 새로운 풍류(風流)까지 등장하였으니, 코로나가 참 여러 가지를 많이도 달라지게 하는 듯하다.

역자는 개인적으로 두보의 율시 가운데 이 시를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시로 생각한다. 역자가 비록 깊이 있게 읽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두율분운(杜律分韻)』이라는 책을 통하여 두보의 율시 전체인 777수를 완독하고, 그 3분지1 정도를 간단한 주석을 곁들여 번역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감히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두보의 일생 가운데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던 초당(草堂) 시기였기에 이처럼 아름다운 시가 지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이런 따스함과 편안함이 나왔다는 사실 때문에 역자는 오래도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손톱 밑에 한 푼 길이도 안 되는 가시만 박혀도 온 신경이 곤두서서 안절부절못하는 역자에게는 두보의 그 따스함과 편안함이 인품의 무게로도 느껴진다. 전쟁과 가난이라는 절체절명의 처지에서도 시 쓰기를 멈추지 않고 오히려, “말이[시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못한다면 죽어도 쉬지 않으리라.[語不驚人死不休]”는 의지를 천명한 두보를 생각해보자면, 역자의 게으름은 그 어떠한 언어로도 변명할 수 없을 듯하다.

오늘 소개한 두보의 이 시는 칠언율시(七言律詩)이며 압운자는 ‘來(래)’·‘開(개)’·‘醅(배)’·‘杯(배)’이다.

2022. 4. 26.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