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春日(춘일), 姜聲尉(강성위)
<제자(題字) : 서예가 심산(心山) 강성태(姜聲泰)>

□ 코너 제목을 '한시공방(漢詩工房)'으로 개편하며

'한시공방'이라는 말은 대략 20여 년 전에 필자가 만들어둔 명칭이었다. 한시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코너를 운영하려고 하였던 애초의 계획은 준비 부족 등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지만, 그 생각만큼은 오래도록 머리맡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더랬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필자가 어느 월간 문학잡지의 한 코너를 맡아 이 '한시공방'이라는 명칭을 간판으로 내걸고 칼럼을 집필하게 되었기에, 한경닷컴 'The Pen'의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이 코너 제목 역시 여기에 맞추어 '한시공방(漢詩工房)'으로 개편하고자 한다. '한시공방'은 간단히 말해 한시는 한글 시로 번역하고, 한글 시는 한시로 번역하여 감상해보는 코너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이 쌍방향의 번역물을 가지고 칼럼을 진행하는 것은, 잘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될 칼럼 가운데 첫 번째는 국적(國籍)과 시대(時代), 작가(作家)에 제한을 두지 않고 한시로 작성된 원시(原詩)를 한글 시로 번역하고 주석을 단 뒤에 감상하는 칼럼이 될 것이다. 근·현대인의 한시는 물론 필자의 자작 한시까지도 간간이 선보이고자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유시든 시조든 동시든 관계없이 한글로 작성된 원시를 한시로 번역하고 주석을 단 뒤에 감상하는 칼럼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좀은 특별하게 산문 가운데 시적인 대목을 시처럼 행을 나누어 한시로 번역하는 일도 곁들여볼 예정이다.

한자로 작성된 한시는 그 어떤 시든 한글 시로 번역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작업은 아니다. 그러나 한글로 작성된 시 가운데 추상적이거나 상징적, 관념적인 시는 한시로 직역하기가 곤란하다 못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이는 기본적으로 필자의 저열한 능력 때문이겠지만, 한시의 언어 생리가 우리 현대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데서도 그 원인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 그리하여 필자가 한역하게 될 원시는 아무래도 서정적인 시나 서사적인 시들이 위주가 될 것이다.

이 두 방향의 칼럼이 한시에 관한 모든 것을 포괄하지는 못한다 하여도, 한시를 공부하거나 감상하는 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제 칼럼의 간판을 '한시공방'으로 고쳐서 달아본다. 이 순간에 설렘 못지않게 두려움도 자리한다는 것을, 새 간판을 달아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아실 것이다.

2022년 봄에 태헌(太獻) 강성위(姜聲尉) 삼가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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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공방(漢詩工房)] 春日(춘일), 姜聲尉(강성위)

春日(춘일)

姜聲尉(강성위)

草生堤堰上(초생제언상)
鳥盡野雲中(조진야운중)
行路隨江漠(행로수강막)
杏花曲曲紅(행화곡곡홍)

[주석]
春日(춘일) : 봄날, 봄.
草生(초생) : 풀이 생겨나다, 풀이 돋다. / 堤堰(제언) : 강 언덕. ‘堤堰’은 필자가 강 언덕이라는 의미로 쓴 한자어이다. / 上(상) : 위, 위에.
鳥盡(조진) : 새가 사라지다, 새가 날아가 버리다. / 野雲(야운) : 들녘 구름, 들 구름. / 中(중) : 가운데, 가운데로.
行路(행로) : 가는 길, 가야할 길. / 隨江(수강) : 강을 따라, 강 따라. / 漠(막) : 아득하다.
杏花(행화) : 살구꽃. / 曲曲(곡곡) : 굽이굽이. ‘마을마다’로 이해해도 좋다. / 紅(홍) : 붉다, 붉게 피다.

[번역]
봄날

풀은 강 언덕 위에서 돋아나고
새는 들 구름 속으로 사라졌네
갈 길은 강 따라 끝이 없는데
살구꽃이 굽이굽이 붉게 피었네

[시작 노트]
신고식을 겸하여 한시공방(漢詩工房)으로 제목이 바뀐 이 코너의 첫 한시로 필자가 20대 초반 어느 봄날에 지은 졸시를 골라보았다. 이 시는 필자가 나름의 목적성을 가지고 쓴 시임을 이 자리를 빌어 솔직하게 고백한다. 길을 가야하는 행자(行者)와 꽃의 관계에 유의하면서 이 시를 감상하다 보면 한 청년의 고뇌가 어느 정도 그려지기도 할 것이다.

필자는 어느 여학생을 대학시절 제법 유명했던 강의 시간에 알게 되었다. 당시 필자는 그 과목의 청강생이었고, 그 여학생은 정식 수강생이었다. 그 강의실은 좌석이 다소 부족하여 출석한 학생이 많으면 몇몇 학생들은 서서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짐작컨대 필자와 같은 청강생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청강생인 필자가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자니 한 여학생이 필자 옆에 서서 강의 내용을 무지 열심히 받아 적고 있었더랬다. 필자는 어느 정도 아는 내용이라 받아 적을 게 그리 많지 않았는데, 청강생이면서 그냥 앉아 있자니 문득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두어 차례 사양했던 그 여학생을 굳이 앉히고 필자는 서서 수업을 들었더랬다. 놀랍게도 그 다음 수업 시간에도 똑같은 일이 또 생겨, 필자는 이런 게 인연이라는 것일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제법 여러 날을 두고 혼자 이것저것 생각해보다가 마침내 한시를 지어 주자는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의 이 졸시가 엮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꽃은 행자의 가는 길을 더디게 하는 존재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강변에 핀 아름다운 꽃을 그냥 지나칠 행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내가 너로 인하여 갈 길이 더뎌질지도 모르겠다는 필자의 뜻을 담은 이 시를, 그리고 이 시가 일종의 ‘작업시’라는 것을, 안타깝게도 그 당시 그 여학생은 알지를 못하였다. 아니 알고도 모르는 척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답신으로 받은, 몇 줄의 한글시를 곁들인 간략한 편지가 있었지만 오래도록 보관하지는 않았다. 그해 가을이던가, 그 여학생이 어느 잘 생긴 남학생과 교정에서 팔짱끼고 다니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는 어쩌다 우연히 마주쳐도 가볍게 인사만 하고 눈을 맞추지 않았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도 사랑이라면 사랑이라 할 수 있겠지만, 마음속에만 잠시 담아두었을 뿐이니 사랑이라 하기엔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필자는 해마다 봄이 되면 이 시가, 그 시절 그 여학생의 얼굴이 불현듯 떠오르고는 한다. 세월은 가도 이렇게 시는 남아 상념에 잠기게도 하니 시란 좋은 물건임에 틀림이 없는 듯하다.

습작기의 작품인 필자의 이 시는, 전적으로 경치만 읊은 시이므로 이른바 ‘전경시(全景詩)’에 해당된다. 그러나 전경시라 하더라도 그 경(景) 안에 정(情)이 있어 ‘경중유정(景中有情)’의 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필자의 이 시 역시 시 속에 모종의 뜻을 담은 것이므로 경중유정의 일례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에 어떤 뜻을 담아도 상대방이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제법 오래도록 비애에 젖었던 청년 시절의 그 기억이 아직껏 또렷하기만 하다.

아래에 첨부한 번역은 그 당시에 작성한 것으로 필자의 옛 시집인 ≪감비약 처방전≫에 그대로 수록되었다. 한껏 멋 내기를 좋아하던 시절이어서 번역이 아니라 재창작에 가까운 번안이 되고 말았지만, 이 역시 빛바래어도 정겨운 흑백사진과 비슷할듯하여 부끄럽게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바이다.



봄풀 아늑히 강언덕 드리우고
새는 나랠 저어 구름 위로 치솟다
가는 길 강따라 끝이 없는데
맑은 물 구비구비 어리는 살구꽃!

오늘 소개한 필자의 한시는 오언절구(五言絶句)이며 압운자가 ‘中(중)’·‘紅(홍)’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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