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낙엽, 공재동
<사진 제공 : 송태영님>

낙엽

공재동

가을
나무들
엽서를 쓴다

나뭇가지
하늘에 푹 담갔다가
파란 물감을
찍어 내어

나무들
우수수
엽서를 날린다

아무도 없는
빈 뜨락에

나무들이
보내는
가을의 엽서

[태헌의 한역]
落葉(낙엽)

秋日樹木修葉書(추일수목수엽서)
深浸樹枝天空中(심침수지천공중)
靑墨點來錄居諸(청묵점래록거저)

樹木淅瀝飛葉書(수목석력비엽서)
無人蕭條空庭上(무인소조공정상)
見送秋日葉書儲(견송추일엽서저)

[주석]
* 落葉(낙엽) : 낙엽.
秋日(추일) : 가을, 가을날. / 樹木(수목) : 나무, 나무들. / 修葉書(수엽서) : 엽서를 쓰다. ‘修’는 편지를 쓴다는 의미이다. ‘葉書’는 잎사귀에 쓴 글이라는 뜻으로 전통 시기에는 주로 불경(佛經)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는데, 근·현대에는 전하는 내용과 보내는 이·받는 이의 주소를 적을 수 있도록 만든 한 장으로 된 우편물을 주로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深浸(심침) : ~을 깊이 담그다, ~을 푹 담그다. / 樹枝(수지) : 나뭇가지. / 天空中(천공중) : 하늘 가운데에, 하늘에.
靑墨(청묵) : 파란 먹물. 역자가 파란 물감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 點來(점래) : (물감 따위를) 찍어오다. / 錄居諸(녹거저) : 세월을 기록하다. ‘居諸’는 해와 달, 또는 시간이나 세월을 가리킨다. 이 대목은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淅瀝(석력) : 눈·비·바람·낙엽 등의 소리. 쏴아, 우수수. / 飛葉書(비엽서) : 엽서를 날리다, 엽서를 보내다.
無人(무인) : 사람이 없다. / 蕭條(소조) : 쓸쓸하다. / 空庭上(공정상) : 빈 뜰 위.
見送(견송) : 보내지다, 받다. 원시의 “나무들이 / 보내는”을 간략히 하기 위하여 주어를 생략하고 피동형으로 재구성한 표현이다. / 儲(저) : 쌓다, 쌓이다.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한역의 직역]
낙엽

가을날의 나무들이 엽서를 쓴다
나뭇가지를 하늘에 푹 담갔다가
파란 먹물 찍어 와 세월 적는다

나무들이 우수수 엽서를 날린다
사람 없어 쓸쓸한 빈 뜨락 위에
보내온 가을의 엽서가 쌓여있다

[한역 노트]
역자는 ‘엽서’라고 하면 이상하게도 예전에 어느 책에서 보았던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에피소드가 무엇보다 먼저 떠오른다. 미국의 소설가 브렛 하트(Bret Harte)가 오랫동안 마크 트웨인의 답장을 기다리다 못해 편지지와 우표를 편지 봉투에 넣어 보내면서 답장을 독촉하였더니 얼마 후에 그에게 한 통의 ‘엽서’가 배달되었는데, “편지지와 우표는 잘 받았습니다. 봉투를 주셔야 편지를 부치지요.”라고 했다는 그 일화……

그런데 그 ‘엽서’는 이제 자주 만나기 어려운 우편 양식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남이 보면 안 되는 무슨 내밀한 사연이 특별히 많아진 세상이어서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방식 자체가 혁명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손으로 쓴 글을 봉투에 넣어 보내는 일반 편지조차도 극히 드문 세상이 되고 보니, 아무나 보아도 거리낄 것 없는 사연을 아무데서나 적어 보내고는 했던, 그 옛날 엽서 문화가 불현듯 그리워진다. 흘러가버린 것은 다 이렇게 그리워지는 걸까?

각설하고, 시인은 이 시에서 나뭇잎 자체를 엽서로 보았다. 그러므로 당연히 물이 들었을 나뭇잎은 세월을 기록한 엽서가 된다. 나무가 나이테로 세월을 기록하는 것이라면, 나뭇잎은 그 모양과 빛깔로 세월을 기록하는 것이다. 벌레에게 갉힌 나뭇잎도, 장난꾸러기 손에 찢어진 나뭇잎도 가을을 맞아 낙엽이 되기 전에 저마다의 사연을 기록했을 터다.

나뭇가지가 하늘에서 푸른 물감을 찍어 와 나뭇잎에 글을 쓰기는 하였으되, 글이 푸른색인 것은 아닌 편지가 바로 나뭇잎 엽서이다. 이 나뭇잎 엽서에 기록된 사연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엽서의 수취인이 되는 우리들 각자가 선택할 문제이다. 심지어 읽지도 않고 쌓아두거나, 어디에 버려도 누가 무어라고 할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깊어가는 가을에 나뭇잎 엽서의 사연을 읽으며 잠시나마 상념에 잠겨보라는 것이, 시인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그 엽서를 읽으라고 결코 강권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제 이 시의 제목인 “낙엽” 얘기를 해보기로 하자. 역자가 보기에는 모든 낙엽이 정원의 엽서가 되지는 못하니 낙엽에게도 운명이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에게 엽서가 되어 읽혀지거나 책갈피가 되어 사랑받는 낙엽이 있는가 하면, 쓰레기봉투에 담겨져 소각장이나 매립장으로 향하는 낙엽도 있고,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돌며 밟히다가 마침내 흙과 하나가 되는 낙엽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낙엽이 좋은 운명인지를 역자가 굳이 판단할 필요는 없겠지만, 같은 나무에서 생긴 꽃잎이라도 어떤 꽃잎은 방석(方席)에 떨어지고, 어떤 꽃잎은 측간(廁間)에 떨어지기기도 한다는 뜻의 추인낙혼(墜茵落溷)이라는 옛날 성어(成語)가 떠올라 마음 한 켠이 절로 짠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역자는 언젠가 신변에 이상이 있어 오랫동안 마주할 수 없게 된 벗을 생각하며 아래와 같은 두 줄 시, 곧 양구시(兩句詩) 하나를 지어본 적이 있다.

今秋已暮佳期邈(금추이모가기막)
葉上空書君姓名(엽상공서군성명)

올가을 이미 저물고 좋은 기약 아득하여
잎새 위에 부질없이 그대 이름 적어본다

요즘은 그 벗을 아주 가끔이나마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역자로서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몇 해 전 그 즈음을 다시 얘기하며 술 한 잔 하기에 딱 좋은 계절인 듯하다. 저 수북하게 쌓인, 세월의 엽서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지폐인 낙엽을 술값으로 대신 받아줄 술집은 어디 없는 걸까?

역자는 5연 15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3구로 처리된 칠언고시 2수로 재구성하였다. 굳이 2수로 구성한 까닭은 한역시의 구(句)처리가 용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2수의 한역시 모두 1구와 3구에 압운하였으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書(서)’·‘諸(저)’와 ‘書(서)’·‘儲(저)’가 된다.

2021. 11. 9.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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