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풍경 달다, 정호승
풍경 달다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태헌의 한역]
掛風磬(괘풍경)

雲住有臥佛(운주유와불)
往謁將歸來(왕알장귀래)
君胸簷牙端(군흉첨아단)
吾掛風磬回(오괘풍경회)
風自遠處到(풍자원처도)
假使磬聲聞(가사경성문)
須知吾心子(수지오심자)
懷君自訪君(회군자방군)

[주석]
* 掛風磬(괘풍경) : 풍경을 달다.
雲住(운주) : 운주사(雲住寺). 전남 화순(和順)에 있는 사찰 이름. / 有(유) : ~이 있다. / 臥佛(와불) : 와불. 운주사 경내에 있는, 누워 있는 불상을 가리킨다.
往謁(왕알) : 가서 뵙다, 가서 찾아뵙다. / 將(장) : 장차, ~을 하려고 하다. / 歸來(귀래) : 돌아오다.
君胸(군흉) : 그대 가슴, 그대 마음. / 簷牙端(첨아단) : 처마 끝.
吾(오) : 나.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서 생략된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回(회) : 돌아오다.
風(풍) : 바람. / 自遠處(자원처) : 먼 곳으로부터. / 到(도) : 이르다, 도착하다. ※ 이 한역시 구절을 직역하면 ‘바람이 먼 곳으로부터 <불어>오다’가 된다.
假使(가사) : 만약. / 磬聲(경성) : 풍경소리. ‘風磬聲(풍경성)’을 줄인 말이다. / 聞(문) : 듣다, 들리다.
須知(수지) : 마땅히 알아야 한다. 원시의 “알아라”를 한역한 표현이다. / 心子(심자) : 내심, 마음. 아래 구에서 이어지는 내용을 고려하여 역자가 선택한 한역어(漢譯語)이다.
懷君(회군) : 그대를 그리워하다. / 自(자) : 스스로, 저절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訪君(방군) : 그대를 방문하다. ※ 이 구절은 “보고 싶은 내 마음이 / 찾아간 줄”을 다소 의역하여 표현한 것이다.

[한역의 직역]
풍경 달다

운주사에 와불이 있어
가서 뵙고 장차 돌아올 적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나 풍경 달고 돌아왔다
바람 먼데서 불어와
만약 풍경소리 들리면
내 마음이 그대 그리워
절로 그대 찾은 줄 알아라

[한역 노트]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로 시작되는 가곡 “성불사의 밤”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학창시절에 배운 이 노래에서도 만날 수 있는 풍경소리는 목탁소리, 독경소리와 함께 산사(山寺)에서 들을 수 있는 대표적인 소리인데, 이 풍경소리야말로 무시로 들을 수 있는 ‘산사의 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고즈넉한 산사에 운치를 더하는 이 소리는, 애초에 수행자의 방일(放逸)이나 나태를 깨치게 하기 위하여 단 것이지만, 산사를 찾는 객들의 상념을 빗질하기도 하니 고마운 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풍경(風磬)은 바람이 없으면 소리를 내지 못한다. 바람이 만드는 것이 어찌 소리뿐일까만, 바람이 없으면 소리가 없는 수많은 존재물에게는 바람이 아마도 영원한 사랑이 될 듯하다. 바람이 없다면 풍경은 무엇으로 자기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 수 있겠는가!

역자가 처음으로 이 시를 마주했을 때 무엇보다 이 시의 제목에 눈길이 오래도록 머물렀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제목을 ‘풍경소리’로만 해도 무난할 텐데, 다소 생소하게 “풍경 달다”라고 하였으니 그도 그럴 밖에…… 여러 번 읽고 한역(漢譯)을 마치고서야 이 시의 제목이 “풍경 달다”가 될 수밖에 없었을 시인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된 듯하다. 이 시의 경우는 제목 역시 ‘용심처(用心處:심혈을 기울인 곳)’의 하나로 보인다.

제목 “풍경 달다”는 이 시가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하여 지어졌을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시인이 실제로 사찰 건물의 추녀 한 모퉁이에 풍경을 달고 있을 때 지금은 곁에 없는 “그대”가 불현듯 떠올랐을 것이다. 그제쯤 시인은 “그대 가슴”, 곧 그대의 마음을 하나의 집으로 생각한 위에 그 마음의 집 추녀 끝에 풍경을 다는 것이라는 상상을 더하게 되었을 것이다. 먼데서 내 그리움이 바람처럼 달려가 그대 마음의 집 추녀 끝에 있는 풍경을 울리면, 그대를 보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달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절절한 그리움의 표현인가!

그런데 그대 마음의 집 추녀 끝에 있는 “풍경”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내 그리움이 아무리 세차게 바람처럼 달려간들 그 풍경을 소리 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그리움을 상대가 짐작할 수는 있어도 속속들이 알아 반응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자가 보기에는 “그대”가 혹시라도 마음 한 켠에 쓸쓸함이 일어 저만치서 내 그리움이 서성이는 것이 느껴지기라도 할 때면, 그제야 그 풍경은 찾아간 “내 마음”을 맞아 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내 그리움의 행선지는 “그대”라는 사실이다.

운주사의 와불이 부부불(夫婦佛)이라는 것과 풍경과 바람, 그리고 그대와 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짝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시에 동원된 소품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사랑’이라는 주제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천 년 세월 동안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누워서 기다리고 있는 “와불”들과 오늘도 바람을 기다리는 추녀 끝의 “풍경”, 그리고 그대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내 마음”이 서로 어우러져, 이 빛나는 계절에 짝할 만한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가 되었음에, 역자는 그저 시가 고맙기만 하다. 시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계절의 뒷모습처럼 자꾸만 비어가는 마음의 들녘을 채울 수가 있겠는가! 그 허허로움을 달랠 수가 있겠는가!

역자는 연 구분 없이 8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8구의 오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짝수 구마다 압운하였지만 전반 4구의 운과 후반 4구의 운을 달리하였다. 그리하여 이 시의 압운자는 ‘來(래)’·‘回(회)’, ‘聞(문)’·‘君(군)’이 된다.

2021. 10. 19.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