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태헌의 한역]
母兮姉兮(모혜자혜)

母兮姉兮住江畔(모혜자혜주강반)
庭前金沙色璨璨(정전금사색찬찬)
門外蘆葉聲漫漫(문외로엽성만만)
母兮姉兮住江畔(모혜자혜주강반)

[주석]
* 母兮(모혜) : 엄마!, 엄마야! ‘兮’는 호격(呼格) 어기사(語氣詞)이다. / 姉(자) : 손윗누이. 누나. /住江畔(주강반) : 강변에 살다. ‘畔’은 ‘邊(변)’과 같은 의미이다.
庭前(정전) : 뜰 앞. 원시의 “뜰에는”을 한역하면서 본래적인 의미를 고려하여 ‘前’을 보충하였다. / 金沙(금사) : 금모래, 금빛 모래. / 色(색) : 빛. / 璨璨(찬찬) : 밝게 빛나는 모양. 의태어로는 ‘반짝반짝’의 뜻.
門外(문외) : 문 밖. 원시의 “뒷문 밖”을 한역하면서 “뒷”에 해당하는 “後(후)”를 생략한 표현이다. / 蘆葉(노엽) : 갈잎, 갈대 잎. / 聲(성) : 소리, 노래. / 漫漫(만만) : 넘실넘실. ‘漫漫’은 보통 시간이나 공간이 끊임없이 이어져 긴 모양을 나타내는데 역자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옛날 사람들은 무엇인가 많은 모양이나 바람이 끝없이 부는 모양도 이 ‘漫漫’으로 표기하였다. 원시의 “반짝이는”을 의태어 ‘반짝반짝’을 뜻하는 ‘璨璨’으로 한역하였기 때문에, “갈잎의 노래”에도 의태어를 써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漫漫’을 택하면서 한글로는 ‘넘실넘실’로 옮겨보았다.

[한역의 직역]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에 살자
뜰 앞엔 반짝반짝 금모래 빛
문 밖엔 넘실넘실 갈잎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에 살자

[한역 노트]
오늘은 좀은 특별하게 역자의 옛날이야기를 적어가며 한역한 <엄마야 누나야>를 감상해 보기로 한다. 다 읽고 나면 아마도 그 이유를 알게 되시리라 믿는다.

‘김소월’하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학창 시절에 배운 시 제목이나 시를 노래로 만든 ‘가곡’ 제목이 먼저 떠오를 듯하다. 그런데 역자는 엉뚱하게도 재수생 시절이 먼저 떠오른다. 역자가 고향집이 아니라 결혼한 큰 누나가 살고 있었던 안양의 어느 독서실에서 몇 달 동안 재수 생활을 할 적에, 김소월의 본명인 ‘정식(廷湜)’을 역자의 ‘가명(假名)’으로 사용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역자는 역자의 본명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아무리 신경 써서 이름을 불러줘도 사람들이 한 번에 못 알아듣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고, 용케 알아들은 사람들도 꼭 중국사람 이름 같다며 한 마디씩 하는 게 마뜩하지가 않아 가명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김소월이 역자가 당시에 가장 좋아하였던 시인이었고, 또 그의 이력 역시 어느 정도 알고 있어, ‘폼 나게’ 그의 본명을 역자의 가명으로 사용해보게 되었던 것이다.

김소월이 20살 되던 해에 발표한 이 시 <엄마야 누나야>는 역자가 시로 외운 것이 아니라 노랫말로 외운 것인데, 초등학교 몇 학년 때 배운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 노래를 처음으로 배울 즈음에 역자는 이미, 당시 ‘국민학교’ 학생들에게는 부르는 것이 금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대중가요의 하나인 <강촌에 살고 싶네>를 부를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도 동요가 다소 시시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더랬다. 가수 나훈아씨가 부른 대중가요 <강촌에 살고 싶네>는 아마도, 우리집에 유난히 자주 놀러오셨던, 사촌 사이이자 친구 사이이면서 그 당시에 농촌 총각들이었던 당숙(堂叔) 두 분이 부르던 노래를 역자가 따라 부르다가 저절로 익혔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골에는 텔레비전은 고사하고 라디오조차 흔하지 않았던 그 시절이라 누구에게나 이와 비슷한 일들이 있었을 듯하다. 어찌 되었건 이 두 곡의 노래로 인해 어린 역자의 마음속에서는 ‘강촌’ 혹은 ‘강변’에 대한 로망이 싹텄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던 역자가 난생 처음으로 강이라고 부를 만한 큰물을 가까이에서 제대로 보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부모님께 무진장 떼를 써서 영주(榮州) 이모네 집에 놀러 가게 되었을 때, 이종사촌 누나 둘이서 나에게 물이 불은 내성천(乃城川)을 구경시켜 주었던 것이다. 짐작컨대 아마 장마 뒤였거나 태풍 뒤였을 당시에 역자는 넘실대는 큰물이 무서워 다리를 덜덜 떨었지만, 그 큰물에 대한 형언(形言)하기 어려운 느낌만큼은 오래도록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강마을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대략 이 무렵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안타깝게도 역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강이 보이는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뜰 앞에는 금빛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뒷문 밖에서는 갈대의 노래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김소월의 “강변”은 실재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평화롭고 행복이 넘치는 일종의 유토피아로 이해된다. 설혹 이 “강변”이 어딘가에 실재하는 공간이라 하더라도, 역자의 경우 “엄마”는 이미 저세상에 가신지 제법 되었고, “누나”들은 할머니 되어 자기 손자·손녀 돌보느라 여념이 없으니, 이 시점에서 이 노래를 다시 부르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제는 부르는 사람을 바꾸어 “여보야”, “얘들아”로 이 노래를 불러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일까? 어쨌거나 노랫말이 된 시 하나가 그 어린 시절 여린 꿈을 오래도록 가슴 속에서 살게 해주었으니, 역자는 이것만으로도 시인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멋진 시를 어설프게 한역한 것이야 역자가 부끄러워해야 할 몫이지만, 이 또한 사람의 일임을 저세상에 있을 시인 역시 모르지는 않으리라.

역자는 보통 4행으로 처리되어 소개되는 원시를 4구의 칠언고시로 한역하였다. 한역하는 과정에서 한 두 시어(詩語)를 가감한 것은 주석 부분에 자세히 기술해두었다. 원시의 제1행과 제4행이 동일한 관계로 역자는 부득이 매구마다 압운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의 압운자는 ‘畔(반)’·‘璨(찬)’·‘漫(만)’·‘畔(반)’이 된다.

2021. 8. 24.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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