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새로운 길, 윤동주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새로운 길, 윤동주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태헌의 한역]
新康(신강)

濟川向林(제천향림)
越嶺向莊(월령향장)
昨日已去(작일이거)
今日將踉(금일장량)
吾前吾路(오전오로)
卽是新康(즉시신강)
地丁開花(지정개화)
喜鵲飛翔(희작비상)
少女行過(소녀행과)
天風徜徉(천풍상양)
吾前吾路(오전오로)
常是新康(상시신강)
今日亦然(금일역연)
明日亦當(명일역당)
濟川向林(제천향림)
越嶺向莊(월령향장)

[주석]
* 新康(신강) : 새로운 길. ‘康’은 보통 오달(五達)의 길, 곧 오거리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여러 군데로 막힘없이 통하는 큰 길을 가리키기도 한다. ‘길’을 의미하는 다른 한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글자를 쓰게 된 이유는 압운(押韻)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때문이다.
濟川(제천) : 내를 건너다. / 向林(향림) : 숲을 향하다, 숲으로.
越嶺(월령) : 고개를 넘다. / 向莊(향장) : 마을을 향하다, 마을로.
昨日(작일) : 어제. / 已(이) : 이미.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去(거) : 가다.
今日(금일) : 오늘. / 將(장) : 장차.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踉(양) : 가려고 하다, 천천히 가다, 급히 가다.
吾前(오전) : 내 앞, 내 앞의.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吾路(오로) : 나의 길.
卽是(즉시) : 바로 ~이다. ‘卽’은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地丁(지정) : 민들레. / 開花(개화) : 꽃이 피다.
喜鵲(희작) : 까치. / 飛翔(비상) : 날다, 날아다니다.
少女(소녀) : 소녀, 아가씨. / 行過(행과) : 지나가다.
天風(천풍) : 바람, 하늘에 높이 부는 바람. / 徜徉(상양) : 천천히 이리저리 거닐다, 서성이다. 원시의 <바람이> “일고”를 번역하면서 압운을 고려하여 선택한 역어(譯語)이다.
常是(상시) : 언제나 ~이다.
亦(역) : 또한, 역시. / 然(연) : 그렇다. 술어인 뒤가 생략된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충한 것이다.
當(당) : 당연하다. 술어인 뒤가 생략된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충하면서 압운을 고려하여 선택한 역어(譯語)이다. 뜻은 앞에 나온 ‘然’과 같다.

[한역의 직역]
새로운 길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 넘어 마을로
어제 이미 가고
오늘도 장차 갈
내 앞의 나의 길은
바로 새로운 길
민들레가 꽃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가고
바람이 서성이는
내 앞의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당연하리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 넘어 마을로

[한역 노트]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이 1938년 4월에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고 한 달 가량이 지난 후인 5월 10일에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식민지 조국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대학 생활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면서, “길”을 소재로 하여 앞날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노래한 시이다.

중국의 대문호 노신(魯迅)은 <고향(故鄕)>이라는 글에서,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것이 없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이 있으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길의 생성의 원리를 보여준 것이다. 이에 반해 윤동주 시인의 이 <새로운 길>은 길의 희망의 원리를 얘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얘기한 길은 ‘내가’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갈 길이다. 이 길을 가면서 만난, 오늘 핀 민들레는 어제 핀 그 민들레가 아니다. 그리고 오늘 부는 바람은 어제 불던 그 바람이 아니다. 길 위를 지나가는 아가씨나 길 위를 날아다니는 까치가 어제의 그 아가씨고 어제의 그 까치라 하더라도, 어제의 그 모습과 그 소리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오늘’은 또 ‘내일’의 어제가 된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길에서 만나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다. 길에서 만나는 것이 언제나 새로우므로 내가 가는 길 역시 언제나 새로운 길이 된다. 가야만 의미가 있는 이 새로운 길은 또 희망의 길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새롭기 때문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세숫대야에 새겨두었다는,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日日新 又日新]”는 잠언도 결과적으로는 변화라는 희망을 얘기한 것이다. “변하지 않으면 진보하지 못한다.”는 뜻의 중국 고대 문학 술어인 “불변부진(不變不進)” 역시 같은 맥락이다. 변한다는 것은 새롭다는 것이고, 새롭다는 것은 그만큼 진보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처럼 변함이 없어 좋은 것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변함없음”이 정체거나 답보거나 심지어 죽음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변화는 좋은 것이고, 새로운 변화는 곧 희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인에게 궁극의 “새로운 길”은 해방과 그 이상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해방된 조국의 “새로운 길”을 끝내 걸어보지 못하고, 침략자의 나라 차디찬 형무소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결국 해방도 해방 그 이상의 희망도 시인에게는 갈 수 없는 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시인에게 그러한 통한을 안겨주고 우리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자들이야 죽어서도 죽어 마땅하겠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일이 이 땅에서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그 최소한의 준비로 우리끼리의 소모적인 싸움만큼은 종식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 작은 길부터 시작하여 큰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할 우리의 여정이, 슬프게도 아직은 멀게만 느껴진다.

5연 10행으로 된 원시를 역자는 사언고시(四言古詩) 16구로 재구성하였다. 원시의 행수(行數)보다 한역시의 구수(句數)가 많아진 것은 원시 한 행을 한역시 두 구로 처리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원시에 쓰인 시어를 한역하는 과정에서 누락시키지는 않았지만, 원시에 없는 내용을 일부 보태기는 하였다. 원시의 1·2행과 9·10행은 내용이 동일하기 때문에 압운자 역시 같은 글자로 통일시켰다. 원시의 4행과 7행이 동일하게 “새로운 길”이라는 말로 끝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의 압운자 역시 같은 글자로 통일시켰다. 이 한역시는 짝수구마다 압운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莊(장)’, ‘踉(양)’, ‘康(강)’, ‘翔(상)’, ‘徉(양)’, ‘康(강)’, ‘當(당)’, ‘莊(장)’이다.

2021. 6. 22.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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