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칼럼] "다시 시작합니다!"
“엄마! 이번 주 같이 놀아요.”

“그래. 근데 왜?”

“다음 주에 복학하잖아요! 이제 시간이 없으니 더 놀아야죠!”

“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준비하는 자’와 ‘준비하지 않는 자’ 다. 그리고 군인이 말하는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바로 ‘군인’과 ‘민간인’이다. 그만큼 생각과 생활이 다른 생존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이 민간인으로 돌아왔다. 군인에서 다시 학생 신분인 ‘복학생’이 됐다. 복학은 사전에 의하면 정학이나 휴학을 하고 있던 학생이 다시 학교에 복귀하는 것으로 다시 학업에 정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들이 복학 이후 학교생활에 대해 막연한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다. 다시 시작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며칠 전 지인이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몇 년 만에 온 연락이었다. 반갑기도 하고 그간 소식이 궁금했다. 그동안 먼 거리에서 몇 번 인사를 나누긴 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면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멀리서 보다가 만나서 얼굴 보니 좋네요!”

“더 젊어졌어요!”

“호호호.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녀가 들려준 사연이다. 결혼 후 25년간 전업주부로 살았는데 교회 봉사활동 중에 ‘구제 업무’ 보조를 했었다고 한다. 구제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는 사회복지 관련 일이다. 그런데 사회복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늘 안타까웠고 ‘제대로 돕지 못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경험을 통해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학해서 다시 공부하게 된 것이다.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가 있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 성악가 ‘테너 배재철’ 씨 이야기다. 제목에 있는 ‘리리코 스핀토!’ 는 서정적인 섬세함과 심장을 관통하는 듯 힘 있는 목소리를 함께 지닌 테너에게 주어지는 ‘찬사’라고 한다. 테너 배재철 씨는 유럽 오페라 스타다. 유럽에서 배재철 씨는 ‘아시아 오페라 역사상 100년에 한 번 나올만한 목소리’로 주목을 받은 한국인 성악가다.

 영화 내용은 대략 이렇다. 배재철 씨가 새 오페라 무대를 준비하던 중 갑상선 암으로 수술을 받는다. 수술 중 성대 신경이 끊어지게 된다. 당시 의사가 실의에 빠진 부인에게 말한 내용이다. “남편 목숨이 중요하냐. 목소리가 중요하냐!” 이에 부인은 당연히 “목숨이다!”라고 말했다. 수술 후 배재철 씨는 노래는커녕 말을 할 때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게 된다.

 배재철 씨에게 현실은 냉혹했다. 목소리를 잃은 오페라 가수는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사람에게 목숨과 목소리는 비교 불가하지만 가수에게 목소리는 ‘목숨’과 같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배재철 씨는 일본인 매니저의 도움으로 성대복원 수술을 받고 다시 노래를 하게 된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며칠 전 영화 주인공 테너 배재철 씨를 강의를 통해 만났다. 영화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아기가 태어나 걸음마를 하듯이 매일 매일 목소리 내는 연습을 하며 다시 노래를 한다.”

그리고 성대복원수술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성대복원 수술을 하려면 성대가 끊어진 후 최소 6개월이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숫자로 6개월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목소리를 잃은 오페라가수가 수술을 기다리는 하루는 마치 1년처럼 견디기 힘들었다.”

그 렇다면 6개월의 시간이 왜 필요했는가? 바로 성대가 완전히 무너져야 했다. 그래야 성대를 다시 세우는 성대복원수술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6개월은 성대가 완전히 무너지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배재철 씨가 노래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목소리를 완전히 지우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는 이제 ‘리리코 스핀토’가 아니다. 더 이상 ‘최고의 목소리’라는 찬사를 듣지 못한다. 목소리는 고음에서 허스키한 쉰(?)소리가 나온다. 한마디로 완벽한 오페라 가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배재철 씨의 노래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한다.

 그렇다. 감동은 ‘완벽’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전 보다 못하고 흠이 있지만 그 부족함을 무릅쓰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에 공감하고 감동하는 것이다.

 처음 시작은 누구나 같다. 누구나 태어날 때는 어머니의 산고로 이 땅에 태어난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인생경험이든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은 후는 다르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다시 태어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겪은 산고를 이제 자신이 산고를 겪는 것 같은 두려움과 기대감을 감당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봄이 돌아왔다. 봄은 얼었던 땅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마도 꽁꽁 얼어붙은 우리네 ‘겨울 살이’처럼 ‘인생의 겨울’을 보낸 사람은 ‘인생의 봄날’을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지수칼럼] "다시 시작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 다시 ‘봄날’을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보니 봄꽃과 풍경에 매료되어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 있다.

 봄은 다시 시작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왜냐하면 봄은 ‘파종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봄, 자연의 법칙을 다시 생각해보자. “뿌려야 얻는 것”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마침표(.)를 한 번이라도 찍어본 사람이라면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게 바로 ‘자연의 법칙’이다.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다. 그렇다면 다시 시작은 ‘온전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이든 일이든 건강이든 학업이든.  다시 시작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아낌없이 응원해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기다려 주어야 할 것이다.

“아무나 ‘시작’할 수 있지만 누구나 ‘다시 시작’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20190304이지수(jslee308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