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번 추석에는 못 내려가겠어요.”
“그래! 애가 고3인데 학교가 중요하지.”
“죄송해요. 어머니.”



얼마 전 대기업 인사담당자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신입사원을 뽑아서 지방 사업장에 배치하면 신입사원의 어머니들로부터 항의성(?) 전화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신입사원이 지방으로 가게 된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신입사원의 어머니가 촌지를 보내오거나 아니면 서울 주변 사업장이나 본사에 발령을 내달라는 하소연(?)을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필자가 아는 한 대학교수는 몇 년 전 자녀를 위해 1년간 휴직을 했습니다. 교직생활을 1년 동안 중지한 이유가 바로 자녀의 입시 때문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올해 필자는 고3 맘(Mom)으로 살고 있습니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1년 내내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막상 대한민국 고 3자녀를 둔 엄마가 되어보니 그 교수의 심정을 알겠더군요.



9월초부터 대학입학 수시 접수기간입니다. 이렇다보니 필자는 주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필자 아이가 어느 대학에 지원했는지, 경쟁률이 어떻게 되는지 등등 말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아이가 지원한 대학의 인지도에 따라서 필자가 자녀를 위해 얼마만큼 희생을 했는지, 나아가 일하는 엄마로서 자식 농사를 얼마나 잘 지었는지 등등 검증받는 느낌이었습니다.



3년 전 한 일간지의 기사 내용입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미국의 명문대학 즉, 아이비리그에 입학한 후 중도 실패한 확률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한 대학이 22년간 자료를 조사한 논문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중도 실패 확률이 44%로 1위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구나 가고 싶어도 아무나 못 가는 명망이 높은 대학을 들어간 학생들이 도대체 왜, 학업을 중단해야 했을까요?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사회적 배려가 부족하며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거나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 또는 토론하지 못하는 것으로 바로 자립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립심은 사전적 의미로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서려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런데 눈 여겨 볼 것은 ‘남’이라는 대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어느 기업이든 마찬가지로 상사들은 신입사원들을 보면서 한결같은 볼멘소리를 한다고 합니다. “상사나 동료에게 배려는 거의 없고 자기중심적”이라고 말합니다. 정작 직장에서 중요한 것은 배려와 조직 중심적 사고가 필요한데 자립심이 엉뚱한 곳에서 잘 발휘되는 것 같습니다.



모처럼 부모님과 자녀가 한 자리에 모이는 명절이 왔습니다.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살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녀에게 부모로서 어떤 자립심을 가지길 원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고3 자녀를 둔 워킹 맘으로 살아보니 자녀를 통해 제법 많은 것을 느꼈고 배운 점도 있습니다. 사실 자녀는 우리가 그저 바라만 보아도 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들에 있는 들꽃도 자생력이 있는데 우리네 부모들이 자기 몸을 뜯어 먹여 새끼를 살리는 가시고기처럼 사는 것은 아닌지요.



시인 나태주의 <풀 꽃>처럼 자녀를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20130917이지수